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 예고 없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핵심 참모들을 소집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연내(年內) 답방'과 관련한 준비 상황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날 '반차'를 쓴 임 실장은 급히 청와대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예정됐던 비서실장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와 기조회의 등 내부 정례 행사도 줄줄이 취소됐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등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직후 김정은이 12월 12~14일 서울을 방문토록 요청하는 공식 초청장을 북한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최근 답방과 관련해 수차례 남북 접촉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북측으로부터 연내 답방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안보실은 이날 주한 미국 대사관의 고위 관계자와도 김정은 답방 일자와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 답방이 임박했다는 시그널이 이날 곳곳에서 감지됐다"고 했다.

美선 강경화·폼페이오 회담 -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이 6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강 장관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조문 사절단 단장으로 미국을 방문 중이다.

이날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으로부터 소식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권(與圈) 안팎에선 "김정은 답방 일자가 사실상 정해졌지만 경호 문제 등을 고려해 남북이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북한으로부터 (답방 제안에 대한) 소식이 (아직) 안 왔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주가 답방의 분수령이라고 보고 경호와 행사 등 모든 분야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월 중순~연말이라도 김정은이 (답방을) 결심하면 올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며 "내년으로 답방 시기가 연기될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권에선 북이 이미 김정은 답방 날짜를 내부적으로 확정하고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오는 12~14일 서울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은 12월 중순부터 김정일 사망 7주기(17일), 김정숙(김정은 조모) 101회 생일(24일) 등 김정은 일가 기념일들이 유난히 몰려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북한 측은 즉각 수용 의사를 밝히진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통일전선부 간 핫라인 협상을 통해 김정은 답방 시기에 대해 대략적인 공감대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12월 중순~연말이라도 김정은이 (답방을) 결심하면 올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며 "내년으로 답방 시기가 연기될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여권에선 이날 "남북 간 '김정은 위원장 답방' 날짜가 합의됐지만 김정은 경호 등을 고려해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수령의 동선(動線)을 극비로 취급하는 북한 체제 특성 때문에 날짜가 확정되고도 청와대가 발표를 늦추고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과거 김정일 등 북한 최고 지도자들도 철통 보안 속에 움직였다. 방중(訪中) 사실도 베이징에 도착한 이후나 회담이 끝난 뒤 공개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이날 주한 미국대사관 측과 접촉한 것도 답방 날짜가 사실상 굳어지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미국에 구체적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 일정, 의제 등을 알려주고 사전 논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北 리용호는 베이징에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6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해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리용호는 8일까지 중국에 머물며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과 만날 예정이다.

청와대는 전날에도 김정은 숙소와 방문 후보지, 주요 일정과 프레스센터 마련 등 실무 준비를 위한 내부 회의를 연달아 열었다. 대통령 경호처도 김정은 답방을 전제로 한 도상(圖上) 훈련을 계속 진행 중이지만 구체적인 경호 계획은 아직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4월 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의 경우 청와대는 약 한 달 전인 3월 30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가진 뒤 정상회담 날짜를 공개했다. 지난 9월 3차 남북 정상회담 때도 청와대는 약 2주 전인 9월 6일 회담 일정을 발표했었다. 지난 5월 판문점에서 예고 없이 열렸던 '당일치기' 2차 남북 회담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2~4주간 실무 준비 기간을 가졌던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여러 날짜를 놓고 플랜 A, B 등을 준비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동선이나 경호 준비는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경호·경비를 책임지는 경찰도 '김정은 답방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정이 확정되면 김정은 동선을 따라 진보·보수 단체가 한꺼번에 몰려나올 것"이라며 "미증유의 경비 작전을 내부적으로 준비 중이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정은에 대한 살해 위협과 화염병 투척 등 과격 행위를 막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집회를 신고한 단체들끼리 충돌하지 않도록 집회 시간과 장소를 사전 조율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찰은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동원한 경찰력(4만5000명)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현장에 배치할 방침이다.

서울 시내 일부 경찰서에서도 김정은 방한에 대비한 안전 대책을 자체 검토하고 있다. KTX 서울역을 관할하는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김정은이 항공편 대신 기차를 타고 올 것에 대비해 가상 경호 작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평양에서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으로 이어지는 평부선 기차를 타고 온 뒤 경의선 평화열차(도라산역~서울역)로 갈아타 서울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야권(野圈)에선 "정부가 김정은 답방에만 매달릴 뿐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끌어내겠다는 구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청와대가 김정은 위원장의 여행 기획사, 이벤트 회사도 아니고 김정은이 답방 와서 한라산이나 남산 타워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되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