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 시띠뿌의 모습.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인도네시아 소녀 미스야 야유 홀리자 시띠뿌(7)양은 서울아산병원 6인용 입원실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휴대폰도 없고 유튜브나 K팝은 잘 모르지만 김과 멸치볶음을 좋아한다. 시띠뿌는 병원의 초청으로 52일간 한국에 머물며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상반신에 3도 화상을 입어 두 차례 수술을 받고 고통스러운 치료가 계속됐지만 주위 사람들을 만나면 웃었다. 간호사와 다른 환자들은 시띠뿌를 "미소 천사"라고 불렀다.

시띠뿌의 집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란따이 쁘라팟이다. 2010년 시나붕 화산 폭발로 집을 잃은 이재인 1000여명이 모여 산다. 2015년 네 살 시띠뿌는 어머니와 함께 이웃집에 찾았다가 상반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이웃이 들고 있던 석유램프를 놓치는 바람에 불붙은 석유가 시띠뿌의 얼굴·목·가슴에 흘렀다.

문밖에서 비명을 듣고 어머니 시띠 홀리자 나수션(28)씨가 달려왔다. 몸에 불이 붙은 아이는 너무 놀랐는지 울지도 않았다. 현지 병원에 데려가 치료하고 한 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불에 데인 상처가 주변 피부를 당기면서 오른쪽 겨드랑이와 몸통 쪽 피부가 붙어버렸다. 오른팔을 들려 해도 10㎝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서 시띠뿌(왼쪽에서 셋째)와 엄마 나수션(왼쪽에서 둘째)씨가 서울아산병원 의료진과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2015년 상반신 3도 화상을 입어 오른팔을 들지 못했던 시띠뿌는 지난 11월 수술 이후 정상적으로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시띠뿌가 자랄수록 상처 부위의 고통은 더 커졌다. 화상 상처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두 살 아래 여동생과 종일 놀았다. 마을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던 시띠뿌의 아버지는 딸 치료비를 벌러 작년 12월부터 말레이시아 팜(기름야자)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추가 피부 이식 수술이 필요했지만 수술비가 문제였다. 나수션씨는 "매달 남편으로부터 200만루피아(15만원) 정도를 생활비로 받았지만, 빚을 갚고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수술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며 "할 수 있는 일은 밤새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울어주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나수션씨는 집에서 차로 10시간 떨어진 브라스따기의 친청집에 갔다가 '용한 의사들'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선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2013년부터 매년 의료봉사 중이었다. 나수션씨는 딸을 데리고 의료봉사팀장을 맡고 있던 선우성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를 찾아갔다. 선우 교수는 "영상으로 성형외과 교수들과 상의한 결과, 시띠뿌는 한국에서 수술하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한국에 데려오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수술비와 왕복 항공료 등은 병원에서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10월 23일 한국에 온 시띠뿌는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옆구리에 붙은 오른쪽 팔을 분리하고, 피부 이식 수술도 했다. 피부 성장통은 사라졌고, 옆구리에 붙었던 오른쪽 팔로는 머리 위로 들어 하트를 만들 수도 있다. 입원 전 19㎏였던 몸무게도 50여일 만에 27㎏으로 늘었다. 나수션씨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한국에 왔는데 수술하고 2주 정도 뒤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딸의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수술을 맡았던 서현석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수술로 연결한 혈관이 끊어질 수 있으니 3~4일 동안은 두 팔을 위로 벌린 상태에서 자세를 바꾸면 안 된다고 했더니 꼼짝 않고 버텨내는 모습이 기특했다"고 말했다.

시띠뿌 모녀는 지난 13일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퇴원 날 의료진이 운동화를 선물하자 시띠뿌는 울면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어로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도 했다. 어머니 나수션씨는 "한국은 나와 딸에게 새 삶을 안겨준 고마운 곳"이라고 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시띠뿌는 장래 희망을 정했다. 나수션씨는 "병실에 누워 있던 딸이 '나도 한국 의사 선생님들처럼 성형외과 의사가 돼 화상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