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마사 누스바움·솔 레브모어 지음|안진이 옮김|어크로스|472쪽|1만7000원

"나이가 들면 우리 모두 두 번째 아동기에 들어선다. 이 시기에는 자아의 절박한 요구와 육체의 본능적 요구가 그동안 형성했던 좋은 습관들을 방해하고, 우리를 넓은 세상의 가치와 멀어지게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도덕적 위험을 인지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 그 위험과 맞서 싸워야 한다. 되도록이면 품위와 유머와 겸손을 보여주면서."

나이 듦을 고찰한 이 책은 위 구절로 요약된다. 책의 부제는 '현명하고 우아한 인생 후반을 위한 8번의 지적 대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세계 100대 지성에 두 차례 선정한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72) 시카고대 석좌교수, 그리고 법학자 솔 레브모어(66) 전 시카고대 로스쿨 학장이 늙음에 대한 여덟 가지 주제를 놓고 주제당 에세이 한 편씩을 써서 짝지었다.

글만 보면 누스바움이 레브모어보다 도발적이고 젊게 느껴진다. 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작용했을 수 있다.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란 글을 누스바움은 이렇게 시작한다.

"1970년대에 미국 여성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검안경을 손에 들고 자궁경부를 들여다봤다. 우리는 자신의 몸이 불결하고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경이롭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 들고 있는 지금, 몸에 대한 그 사랑과 열정은 어디로 간 걸까?"

잭 니컬슨(왼쪽)과 다이앤 키튼이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한 장면.

누스바움은 "한때 여성 혐오와 관련된 낙인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여성들은 이제 나이 듦에 대한 강력한 낙인에 그냥 굴복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노인의 성형수술도 지지한다. "성형수술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주장들 속에 '못생기고 냄새도 나는 혐오스러운 노인'이라는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 있다." 반면 레브모어는 늙어가는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쭈글쭈글하고 주름진 얼굴이 매끈하고 깨끗한 피부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주름살이 있으면 그 피부 뒤에 감춰진 인격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중년 이후의 사랑'을 다룬 장(章)에 눈길이 간다.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는 청년 옥타비안과 사랑에 빠진 중년 여성 마르샬린이 나온다. 옥타비안을 또래의 젊은 여성에게 보내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르샬린은 지혜롭게 나이 든 여성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누스바움은 비판한다. "이 오페라의 '교훈'에 따르면 여성에게 나이 듦은 굴복과 포기를 의미한다. 여성이 나이가 들면 그의 삶은 처녀 때와 마찬가지로 무조건 금욕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다이앤 키튼과 잭 니컬슨이 노년의 로맨스를 연기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등 영화를 예로 들며 "노년의 사랑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거, 오랜 시간 동안 겪은 곡절 등을 사랑과 결합하기 때문에 그만큼 매력적"이라고도 한다. 레브모어의 관심사는 '노년기에는 더 모험적인 연애에 도전해야 하는가'다. 그는 "부유한 여성이 늘어날수록 커플 중 한쪽이 다른 쪽보다 훨씬 나이 많은 갭 커플(gap couple)과 같은 모험이 더 많아진다"고 예측한다.

마사 누스바움(왼쪽)과 솔 레브모어.

왕국의 후계 자리를 놓고 딸들의 효심을 시험하는 '리어왕'을 누스바움은 통제력을 포기할 준비가 안 된 노인이라 읽는다. 나이 먹으면 노쇠하고 의존적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리어왕은 자신을 신(神)과 비슷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레브모어는 유산 분배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리어왕은 자식 중 누가 나라를 가장 잘 통치할 것인가, 또는 어떤 형태의 유산 분배가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질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없다." 책은 이밖에 노년의 우정, 회고, 빈곤 등을 다룬다.

"노년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자기중심적이 되니 이타성을 계발하라" 등 곰곰이 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조언들이 이어진다. 모두 공평하게 한 살씩 더 먹은 새해 첫 주에 새겨들을 만하다. 누스바움은 충고한다. "나이 드는 이들은 감정조절에 신경 써라. 솔직함이 두려움, 짜증, 불만을 모조리 내뱉으란 뜻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