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경찰이 공개한 숙박업소 몰래카메라. 콘센트와 헤어 드라이기 안에 1㎜ 크기 카메라 렌즈가 설치돼 있다. 모텔을 비롯한 숙박업소에서 몰래카메라 범죄가 빈번해지자 젊은 커플들이 발길을 끊고 있다.

#1 A(여·22)씨는 "성인 잡지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A씨는 지난해부터 모텔, 펜션 등 숙박 업체에서 몰카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 후로는 이런 업소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피 끓는 청춘 남녀에게 둘만의 장소는 필요했다. 결국 그들은 폐건물 계단, 창고 등을 찾는다고 했다. A씨는 "내가 이런 음침한 곳을 찾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면서도 "몰카 없는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도는 '유목민'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했다.

#2 대학생 이모(24)씨는 여자 친구와 지난 겨울 대형 찜질방, 온천 등을 거치는 '찜질방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가고 싶지만, 숙소는 믿을 수 없었다. 몰래 설치된 카메라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숙소가 아닌 찜질방에서 자는 여행을 계획했다. 단지 공간만 공유하는 건전한 여행이다. 숙박 업소를 안 간 지 약 4개월이 넘는다는 이씨는 "여자 친구와 둘이 오래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괴롭다"고 했다.

몰래 카메라 범죄가 해가 갈수록 증가하자 젊은 커플이 갈 곳을 잃었다. '데이트 노마드(Nomad·유목민)'라고 폼나게 호명했지만, 사실은 안전한 섹스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커플에 가깝다. 몰카 설치 우려 때문에 모텔, 펜션 등 숙박 업소에는 발길을 끊었다. 부모와 함께 사는 대학생 등이 특히 힘들다. 이들은 "좋아하는 사이라 서로 동의하면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몰래 카메라 범죄는 2016년 기준 5185건. 2011년 1523건이었던 것에 비해 5년간 3배 이상 늘었다.

이달 초에는 모텔 투숙객 1600여 명을 몰카로 촬영해 인터넷에 생중계한 일당이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들은 충청·영남권 42개 객실에 몰카를 설치해 지난 3일까지 약 3개월간 촬영했다고 한다. 2~3시간 방을 빌리는 '대실' 서비스를 이용해 일당 중 한 명이 숙박업소를 돌며 TV 셋톱박스, 콘센트·헤어드라이어 거치대 등에 작은 구멍을 뚫고 무선 IP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 카메라는 렌즈 크기가 1㎜에 불과해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일당은 불법 촬영한 영상 803개를 자신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유료 사이트에서 생중계해 3개월간 약 700만원을 챙겼다.

일반 숙소가 아닌 공유 숙박 '에어비앤비' 등도 무섭긴 마찬가지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묵는 숙소에도 몰카가 발견된다는 제보가 꾸준히 나온다. 지난해 3월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떠난 30대 남성은 숙소에서 탁상시계로 위장한 몰래 카메라를 발견했다. 일본, 캐나다 등지에서도 같은 논란이 있었다. 에어비앤비는 이럴 때마다 해당 숙소를 호스트 명단에서 배제하지만, "감시 카메라 등이 설치돼 있을 경우 반드시 이를 알리고, 관계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라는 이용 약관 외에는 몰래 카메라를 막을 방법은 없다. 인터넷에서 에어비앤비를 검색하면 '몰카 없는 에어비앤비 숙소 고르는 법'과 같은 게시글을 종종 볼 수 있다.

취업 준비생 고모(26)씨는 지난달 22만원이라는 할인 가격을 내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여자 친구와 하루를 보냈다. '모텔 몰래 카메라'에 대한 공포를 서로 나눈 뒤였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최고 호텔이면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제안이 나왔고, 용돈을 아꼈다고 했다. 고씨는 "싼 곳에 자주 가서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그 돈을 아껴 한 번을 가는 게 낫다. 몰래카메라 덕분에 한 번도 안 가본 5성급 호텔에 다 가본다"며 겸연쩍어했다.

서울권 대학을 다니는 조모(21)씨는 몰카를 두려워하는 친구에게 사용료를 받고 자취방을 빌려준다. 조씨는 방학 때는 본가가 있는 경남 창원시로 내려간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모텔 같은 곳은 몰래 카메라 때문에 불안해서 못 가겠는데, 방을 좀 빌려줄 수 있느냐"며 하루 3만원씩 사용료를 내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조씨는 흔쾌히 허락했고 사용 당일에 친구가 메시지와 함께 계좌로 돈을 입금한다. 조씨는 "이야기가 퍼지니까 다른 친구들에게도 문의가 종종 온다"며 "시간대별로 빌려주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개인 자취방도 100% 믿을 수 없다는 이들도 있다. 2015년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여자 대학생의 원룸에 집주인의 아들이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다. 성모(여·23)씨는 지난 1월 몰카 탐지 업체에 50만원을 지불하고 방을 점검받았다. 결과는 다행히도 이상 없음. "비싼 가격에 고민했지만 탐지가 끝나고 나니 훨씬 더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둘만의 장소를 찾아 헤매는 '데이트 노마드'들은 "새로운 기술은 계속 등장하고 점점 교묘해질 것이다. 어디서 나를 찍고 있는지 두려워 데이트할 곳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건국대 윤김지영 몸문화연구소장은 "데이트 노마드는 젊은 층의 건전한 성(性) 문화 형성을 몰카 범죄가 방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해코지하지 않을까 공포에 떨어야 하는 저신뢰 사회의 단면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