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올 봄 섬진강 여행 필수 코스로 떠오른 경남 하동 ‘매암제다원’.②수원 화성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보이는 ‘정지영커피로스터즈 화홍문점’. ③춘천호가 보이는 ‘해피초원목장’ 전망대.

계절의 여왕 5월엔 뷰(view·전망)가 좋은 '뷰 맛집'이 대세다. '전망'과 '풍경'이 좋다고 해서 '전망 맛집' '풍경 맛집'이라고도 부른다. 맛이 뛰어나지 않아도 그저 따스한 햇살 한 스푼과 시원한 바람 한 모금, 풍경이 맛의 비결이 된 '신흥 뷰 맛집'들을 찾았다.

대표 메뉴가 풍경인 집

연둣빛 푸르름을 자랑하는 차밭 한가운데 나무 데크에서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다기(茶器)를 들고 차를 즐긴다. 눈앞으로는 1만3000㎡(4000여 평)의 너른 차밭, 그 너머로는 지리산 구재봉자락의 소박한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대나무들이 봄바람에 군무를 춘다. 풍경을 마주하고 차 한잔 우려 마시던 한 여행객의 입에서 마침내 감탄이 터졌다. "이 집 풍경 잘하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섬진강에서도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매암제다원은 최근 '풍경 잘한다'고 소문나기 시작한 맛집. 2000년에 사립박물관인 매암차문화박물관의 부속 시설로 문 열었지만 요즘 젊은 층에 '뷰 맛집'으로 통한다.

작년 하반기에 이곳 풍경 사진 한 장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차밭 풍경을 담겠다고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년 중 차밭이 가장 예쁜 요즘엔 주말에만 하루 평균 500명 정도 다녀간다. 이윤경(37) 매암차문화박물관 기획실장은 "그동안 중·장년층이나 차 애호가 방문객들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 20~30대 방문객들이 젊은 세대의 감성으로 풍경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박물관 곳곳이 새롭게 재발견되고 있다"고 했다.

매암차박물관의 유물 전시관으로 쓰는 적산가옥도 새롭게 재발견된 공간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림국 임업연습림 부지에 들어선 임업시험장 작업소 건물이었다. 1962년 '매암다원'으로 다시 문을 열기까지 이곳의 아픈 역사와는 상관없이 평상마루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격자창 너머 차밭, 지리산 자락이 차례로 보인다.

매암제다원은 참새[雀·작]의 혀[舌·설]만큼 작은 새순만을 곱게 따서 만든'작설'에서 유래한 '잭살(작설차의 하동 지역어)'로 유명하다. 이윤경 실장은 "잭살은 조선 홍차의 원형으로 매암제다원은 일제강점기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의 하나로 사라진 '조선 홍차'를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문객들은 세작 홍차 중에 저온 발효 홍차와 고온 발효 홍자 중 하나를 선택해 맛볼 수 있다. 셀프서비스로 운영하기 때문에 방문객이 관람료 대신 인원수에 맞게 체험비(8세 이상 1인 3000원)를 알아서 내고 준비된 다기에 물과 찻잎을 담아 가서 자유롭게 즐기면 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은 휴무.

춘천 ‘해피초원목장’의 수제 한우 버거.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추청산 중턱에 자리한 해피초원목장도 작년 여름 전망대가 소셜미디어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신흥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수제 한우 버거와 알프스 같은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목장"이라고 소문났다. 다만 '알프스 같은 전망'을 감상하려면 동물 체험 농장 부근에서 시작해 15~20분간 산책로와 비포장길을 따라 오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경사가 있어 노약자에겐 험난할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춘천호와 춘천호를 품은 산줄기들이 장엄한 풍경을 선사한다. 알프스까지는 아니더라도 15~20분 투자한 것에 비한다면 과분한 전망이다. 통나무 벤치와 나무 그늘 아래 긴 벤치가 포토존이다. 아래로 목장의 푸른 초지와 진초록 춘천호의 풍광이 어우러져 이국적이다.

강원 한우 체험 농장으로 운영된다. 작년 여름 전까지만 해도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유치원 등 단체 체험객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요즘엔 주말 하루 평균 2000명 정도 방문한다. "체험 목장으로 문을 연 지 6년 됐다"는 이곳 최영철(61) 대표는 "'뷰 맛집'으로 소문나기 전과 비교하면 방문객이 2~3배 늘어났다"고 했다. 대표 메뉴는 1등급 이상 강원 한우 패티로 만든 수제 한우 버거(7000원). 평일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맛볼 수 있다. 주말엔 시간 관계없이 수제 한우 버거를 비롯해 한우 토핑 비빔밥(8000원), 일반 비빔밥(6000원), 유아용 계란밥(3000원)을 판매한다. 먹이 체험용 건초를 구입(일반인 5000원, 경로 2000원, 장애인 3000원, 3세 이하와 국가유공자 무료)하면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오는 20일 이후부터 10월 말까지 강원 한우 30두를 방목하는 시기에 맞춰가면 더욱 한가로운 목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 '인생 사진'을 찍겠다면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국적인 유리창 너머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춘천 ‘카페드220볼트’.

'문화재 뷰' '논밭 뷰' 별별 뷰

이색 전망으로 눈길 끄는 곳도 있다. 경기도 수원 화성 성곽의 동북쪽 바위 위에 자리한 '방화수류정'은 원래 조선 후기 1794년(정조 18년)에 화성 동북쪽 군사 지휘부인 동북각루로 건립됐다. 성곽 아래 용연 등 경관이 뛰어나 본래의 목적인 군사시설뿐 아니라 경치를 조망하는 정자로도 활용됐다. 지난 4월 말 수원 화성 화홍문 부근에 문 연 정지영커피로스터즈 화홍문점 옥상에선 옛 선조들이 경치를 조망하기도 했던 이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문화재 뷰'인 셈. 바(bar)처럼 꾸민 옥상 난간에 앉으면 버드나무가 하늘거리는 천변 풍경,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오가는 나들이객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정지영(34) 정지영커피로스터즈 대표는 "2년 전 수원 화성 성곽길 주변 장안동에 1호점인 '정지영커피로스터즈'를 열 때부터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카페를 열고 싶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살던 집 옥상에서 앉아 맛보는 듯한 한 모금의 커피는 추억을 소환한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방화수류정과 성곽길에 경관 조명이 켜지면 더욱 낭만적인 뷰가 눈앞에 펼쳐진다.

경북 경주시 황남동 서울커피 황남관점도 문화재 뷰 맛집이다. 2층에 오르면 커다란 유리창 너머 푸르른 고분과 눈높이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고분과는 또 다른 풍경이다. 커피와 함께 무염 버터를 넣은 앙버터식빵(4500원)과 파스텔 색상이 앙증맞은 큐브아이스크림(1조각 2000원), 콩가루를 뿌린 인절미티라미슈(7500원) 등의 디저트가 대표 메뉴다.

춘천시 동내면 카페드220볼트에선 '3층 난간 좌석'을 사수하려는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마치 외국 어느 농장의 창고에서 바라보는 듯 넓은 창 너머로 푸른 논밭과 전원 주택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주변 풍경은 허무할 정도로 평범하지만 박공지붕 형태로 지은 건물 안쪽에서 바라보는 바깥 전망만큼은 유리창 프레임이 액자 역할을 해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편안한 시야와 의자 덕분에 젊은 층뿐 아니라 중·장년층 방문객들도 많이 찾는다. 춘천의 로스팅 전문 기업인 '인디커피 로스터스'가 만든 공간이다. 카페 내에선 유행하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와 조명, 묵직한 원목 가구를 체험하며 신선한 커피와 'V'자 모양의 볼트스틱(2000원), 너트캐러멜(4800원) 등 다양한 빵,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전체 3층 250석 규모의 대형 카페. 주말에는 만석이라니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만끽하고 싶다면 평일에 찾는 것이 좋다.

'파노라마 뷰'도 인기

강원도 속초 크래프트루트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설악산을 감상하며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설악산은 아니지만 경기도 광주 신현리 카페 스멜츠는 2층의 통유리창으로 숲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창문을 여닫을 순 없지만 창과 가까운 거리에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창밖은 사시사철 다른 풍경으로 자체 '교체'된다. 작년 가을 '단풍 맛집'이라는 별칭을 얻은 후 올봄엔 '신록 맛집'이라 불린다. 파니니(1만원)를 비롯해 이탈리안 롱 샌드위치인 호기(1만4000원), 버섯크림파스타(1만6000원) 등 브런치와 판나코타와 티라미수(모두 8000원)를 숲속에 앉은 듯 실내에서 편히 즐길 수 있다. 바깥 풍경이 탁자에 비치는 '창가 쪽 거울 탁자' 자리는 비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컵라면 하나도 전망 좋은 곳에선 꿀맛. 남해 여행객들에게 금산 보리암 금산산장도 뷰 맛집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뉴트로(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 유행으로 젊은 층 방문율이 높아졌다. 컵라면(3000원) 하나도 절경을 보며 먹겠다는 이들은 20~30분 정도 '등산'도 마다치 않는다. 예전에는 부침개, 컵라면 등을 양은 쟁반에 담아낸 '산장정식'(별칭)이 유명했지만 현재는 가공식품 위주로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