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20주년 맞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20대 때 나이트클럽에서 반주하며 음악가 꿈 꿔"
"클래식 엘리트와는 다른 길… 저작권 등록만 270곡"
"20살에 쇼팽 친 조성진, 대단... 나는 70살에 가능할 것"

유키 구라모토는 1986년 첫 피아노 솔로 앨범 'Lake Misty Blue’로 데뷔했다. 드라마 '겨울연가'와 '가을동화', 영화 '달콤한 인생' 등의 배경음악으로 널리 알려졌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기 전, 초목이 부풀어 오르는 저녁에 영화 ‘달콤한 인생'을 다시 보는 건 이병헌의 목소리와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 때문이다. 인생은 달콤한가, 씁쓸한가. 아름다운가, 슬픈가. 나는 약한가, 강한가. 다정한가, 잔인한가. 쏟아지는 물음표를 음표에 쓸어 담은 채 유키 구라모토는 피아노 건반 위를 유유히 나아간다. "삶엔 그 모든 속성이 다 있어요." 손가락으로 속삭이듯.

‘플레이'가 될 때마다 머릿속에 펼쳐지는 목가적인 정경을 두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뉴에이지라 했고, 개울 같이 흐르는 선율을 두고 이지리스닝이라고 했다. 검은 건반, 흰 건반... 도합 88개의 자음과 모음을 두드려 그가 쓰고 싶은 시는 과연 무엇일까. 자연은 격동이자 평온이며 시간은 악몽이자 미몽이라는 그 예측 가능한 모순과 질서를, 그의 음악은 침착하게 반복적으로 깨우친다.

유키 구라모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작은 얼굴의 겸손한 일본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1999년 한국에 첫 공연을 한 이래 매해 한 번도 빠짐없이 전석 매진을 기록한 행운의 사나이. 사계절이 한번 지나면 어김없이 그가 찾아왔고, 10년 전부터는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선물 꾸러미를 든 산타처럼 또 악보를 들고 들어왔다.

올해로 20주년 기념 투어를 위해 내한한 그는 생일 축하 케이크를 앞에 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들떠 있었다. 오로지 한국 청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앞에서 큰절이라도 할 태세였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몸속에서 감사와 기쁨의 저장고가 넘쳐흘렀다.

-문득 궁금합니다. 수백번을 무대에 올랐던 선생도 혹시 무대 공포증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곡의 숙달도에 따라서 공포가 따라오지요. 특히 한국에선 많은 곡을 쳐야하고, 곡에 따라 편성도 극적으로 달라져서 긴장을 하게 돼요."

-공포증은 어떻게 이겨내고 있나요?

"나이가 들다보니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워도 긴장이 돼요. 조명이 뜨거워도 컨디션에 영향을 받죠. 무대의 온도와 습도를 최적으로 유지하려고 해요. 근본적으로는 연습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변명같지만 작곡과 편곡을 함께 하다 보니 연습 시간이 늘 빠듯해요. 피아노를 그냥 치는 것과 제대로 연습하는 건 확연히 달라요.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쇼팽,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과 제 곡을 균형 있게 치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말씀하신 음악가들도 작곡과 연주를 병행했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제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지요(웃음). 작곡과 연주를 병행한다는 건 이를테면 자기가 도면을 그리고 건축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관리직과 현장직을 동시에 수행한달까요. 선대 작곡가들은 위대한 천재 중의 천재였습니다만, 저는 재능도 시간도 제한된 사람이예요. 늘 불충분하다고 느낍니다."

그는 5월부터 전국을 돌며 내한 20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마지막 공연은 5월 3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진심'(Cordiality)을 주제로 열린다.

-언제쯤 충분하다고 느낄까요(웃음)?

"70살 정도는 돼야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례지만 올해 몇 살이신가요?

"67살입니다. 그런데 57살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참으로 미래지향적인 생각이군요!

"감사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감사하다는 말씀이신지요?

"하하. 제 연주와 곡을 앞으로도 계속 들어줄 거라 믿고 감사합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 이상으로 제 음악을 사랑하고 귀 기울여 줬어요. 놀라운 일이지요. 일본에서는 당시 일어난 한류 열풍 덕분에 ‘겨울연가'나 ‘가을동화' 드라마 삽입곡을 써서 큰돈을 번 사람으로 저를 오해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당시에 저보다 한류 스타들이 유명했으니까요."

-언제부턴가 일본 대중문화와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역전되면서 일본 내에서 불편한 분위기가 없지 않지요. 혹시 선생이 작곡한 ‘로망스'가 흐르는 영화 ‘달콤한 인생'은 보셨나요?

"네. DVD로 봤어요. 김지운 감독이 내 공연에 찾아와서 그 곡을 쓰고 싶다고 하더군요. 영화의 힘이 정말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 유명한 ‘레이크 루이스' 30주년 기념 음반도 발표했고, 올해는 내한 공연 20주년이에요. 10년이 여러 번 쌓이면서 지혜와 능력도 쌓이고 있다고 느낍니까?

"확실히 그렇게 느껴요. 건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콘서트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가 늘어나고 있죠. 그런 면에서 젊을 때 제 콘서트에 오셨던 분들에게 죄송하기까지 해요. 지금은 콘서트를 할 때는 한국어로 곡을 설명합니다. 통역기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요."

-현실적으로는 손가락의 파워나 속도가 젊은 연주자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느낄 법도 한데요. 기교와 깊이 중 어떤 부분이 더 풍부해지고 있나요?

"믿기 어렵겠지만 양쪽 면에서 다 상승하고 있어요. 나이들수록 잡무가 줄고 연습할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빠른 시간 안에 감수성이 완전히 열리고 기교도 깊이도 좋아져요. 나는 15년 전보다 지금이 더 잘 연주한다고 생각해요. 건강관리만 잘 한다면 70살도 80살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웃음)."

‘Reminiscence’ ‘Lake Misty Blue’ ‘Refinement’ 외에도 유키 구라모토의 음반들은 한국에서 꾸준히 환영받았다.

-어쩌면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특혜일 수도 있겠는데요(웃음).

"꼭 그렇진 않습니다. 저는 기술적으로 저를 끌어올리기 위해 쇼팽도 모차르트도 많이 연습해요. 몇 년 전엔 이탈리아 여행길에 트렁크 손잡이에 손가락이 끼어서 중지에 부상을 입었어요. 가운뎃 손가락이 골절을 입은 상태여서 당장 12월 콘서트도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문득 나는 위대한 첼로 연주자 카살스가 산사태로 왼손을 다친 후 했다는 독백이 떠올랐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제 사람들 앞에서 다시는 연주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콘서트를 당장 취소했겠지요!

"천만에요. 저는 골절된 중지를 빼고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쳤습니다. 약간의 편곡을 거쳐서, 연습한 후 아주 즐겁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내 눈앞에서 신이 나서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신공을 발휘했다. 보이지 않는 기쁨의 신이 그의 손가락을 쥐고 왈츠를 추는 것만 같았다.

-하루에 연습량은 얼마나 됩니까?

"많지 않아요. 2시간 정도. 너무 적어서 부끄럽군요. 피아노는 종일 치지만 그걸 연습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피아노는 일종의 스포츠와 같은 면이 있어요.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토끼 뜀을 뛰며)탁구를 하려면 이렇게 기초 체력을 쌓아야죠.

건반을 두드리는 타력과 운지법은 체조의 순서와 기술을 익히는 것과 비슷해요. 저는 많은 시간을 컴퓨터로 곡을 만드는 데 보냅니다. 물론 내 곡이 연주하기에 어려운 곡은 아닙니다. 하지만 쉽고 일상적인 곡이라 해도 그 구조 안에서 좋은 곡을 만드는 건 꽤 큰 노력이 필요해요."

-이지리스닝이라고 불리는 데 섭섭함은 없는지요?

"전혀 없습니다. 나는 나예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존재지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조지 윈스턴이나 앙드레 가뇽과 비교되기도 하는데요.

"앙드레 가뇽은 기본기가 탄탄한 피아니스트입니다. 반면 조지 윈스턴의 연주엔 즉흥성과 율동이 배어있지요. 그분들이 20년 전에 뉴에이지 분야를 키워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그 덕에 제가 있지요. 자랑을 좀 하면 저는 두 분의 장점을 다 갖고 있습니다(웃음)."

-한국인 피아니스트 중에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은 누군가요?

"백건우 씨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부인인 윤정희 씨도 뵌 적이 있습니다. 놀랄만큼 깊은 연주를 하는 분입니다. 조성진도 감동적이예요. 그는 클래식계의 슈퍼스타죠. 폴란드에 가서 그가 연주하는 쇼팽을 직접 듣고 싶었을 정도예요. 일각에선 ‘조성진은 쇼팽은 잘 치지만 베토벤은 못 칠 거다'는 시기 어린 견해도 있었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조성진은 베토벤도 잘 칠 겁니다."

유키 구라모토 내한 20주년을 기념해 ‘로맨티스트’ 리패키지 앨범도 LP로 발매된다. 지난 2014년 유키 구라모토가 직접 용재 오닐의 비올라 음색에 맞는 본인의 음악 10곡을 레코딩까지 직접 참여했던 ‘로맨티스트’의 리패키지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삶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정 부분 동의해요. 예를 들어 내가 앞서 언급한 분들은 시속 100km인 트랙에서 큽커브를 돌며 200km로 질주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대단하지요. 반면 저는 시속 70km 트랙에서 60km 정도의 속도만 밟습니다. 저는 80~90km까지 달릴 필요조차 못 느껴요(웃음)."

-선생의 연주는 레이싱이 아니니까요. 창밖으로 숲과 호수를 보며 드라이브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맞습니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감탄과 경이를 불러일으켜요. 그러나 세상엔 여유롭고 자연스럽고 무리하지 않는 저같은 음악가도 필요한 법이죠."

나는 이 건반 위의 계관시인의 안내에 따라 자연의 신비를 마음껏 누렸다.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과 큰 나무들이 내뿜는 싱그러운 체취와 곡식이 여무는청량한 소리들. 두 손을 뻗어 하늘을 만질 수도 있다고, 두 다리로 성큼성큼 호수를 건널 수도 있다고 유키의 피아노는 속삭인다.

그럴 땐 오선지에 그려진 화성과 변주가 대자연의 간결한 지도처럼 여겨졌다. 심오한 클래식 작곡가들이 우주의 심장과 뼈를 건드린다면 그는 바람, 햇살, 눈보라 같은 지구의 보드라운 살갗에 집중한다.

-때때로 선생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를 듣고 싶습니다. 웅장한 슬픔과 황홀한 리듬에서 서로 통할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요."

-집에서 친구들을 초대해 프라이빗한 연주를 하기도 합니까?

"제 친구들은 집에선 음악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더군요(웃음).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되면 재즈, 팝 등 파퓰러한 곡을 연주해요. 매년 12월 한국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콘서트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흥이 오르면 ‘미녀와 야수' 등 디즈니 만화 주제곡을 치기도 해요."

-선생은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대학 때는 레스토랑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오래 사랑받는 음악가의 삶을 살 거라고 상상했나요?

"아니요.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짐작도 못 했어요. 저는 고학생으로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은 자연스럽게 늘어났어요. 10%에서 50%로 마침내 100%로 제 삶 안으로 서서히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거죠. 대학교 4학년 때까지도 공부냐, 음악이냐 고민을 했고 대학원 시험도 공대 전공으로 치렀어요. 하지만 결국은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웃음)."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감탄과 경이를 불러일으켜요. 그러나 세상엔 무리하지 않는 저같은 음악가도 필요한 법이죠.”

-운명의 부름을 뿌리칠 수 없었군요(웃음).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클래식 엘리트들과는 아주 다른 길을 걸었어요."

-어떤 면에선 목표를 정하고 달렸다기 보다는 상황이 벌어지는 대로 몸을 맡긴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맞아요. 저는 일곱살 때 피아노를 만나 음악을 좋아하게 됐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파산하면서 집도 피아노도 다 잃었어요. 중학교 때는 너무나 연습을 하고 싶어서 난방도 안되는 음악실에서 장갑을 끼고 피아노를 쳤어요. 고등학교 때는 맹장 수술을 했는데 허리에 복대를 차고 팬티 바람으로 피아노를 쳤죠.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요. 하하. 정말 행복했어요. 현실은 음대에 갈 가정 형편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커리어에 도움이 됐다고 보시나요?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는 순수하게 음악의 즐거움에 몰두했어요. 도쿄공과대학에 진학해서도 수업에 가지 않고 오케스트라 연습실에 갔어요. 연습실이 빌 때마다 8시간 동안 미친듯이 피아노를 쳤죠. 애초부터 저는 200km로 달릴 수 있는 주자는 아니었어요. 고교 때부터 편곡을 하면서 파퓰러한 곡을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목표 의식이 없었다면 레스토랑에서 라이트한 곡을 연주할 때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었을 텐데요.

"건반을 두드려 60km 속도를 유지하며 쾌적한 무드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한 프로의식이 필요해요. 간간이 신청곡을 받게 되면 어떤 곡이라도 즉석에서 쳐야 했어요. 가라오케가 나오기 전이라서 부르는 사람의 키에 맞춰 자유자재로 곡을 변형해서 반주를 했죠. 그때부터 저는 ‘자랑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피아니스트였어요(웃음)."

온유한 표정의 유키 구라모토

-도움을 주는 피아니스트라…

"(빙그레 웃으며)타인의 음악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수많은 곡을 악보 없이 연주해야 했는데, 그 점이 작곡가로서 저의 기반이 됐습니다."

-겸손한 피아노가 일종의 훈련과정이었군요.

"맞아요. 어쩌면 그게 바로 치열한 프로의 일이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지만, 그건 분명 프로의 세계였어요. 잘못 치면 바로 다음 날로 해고됐거든요(웃음). 반면 제 재능을 알아보신 분들은 명문대에 잘 다니고 있는 학생을 꼬드겨 음악으로 이끄는 일에 심적인 부담을 느끼셨다는군요. 그즈음 운 좋게 나카다 요시나오라는 최고의 선생을 만나 오케스트라 곡 쓰는 법을 배웠어요."

-낙천주의자입니까? 비관주의자입니까?

"의외로 저는 비관주의자입니다. 세상 일이 쉽지 않았어요. 30대 때는 무조건 ‘하이, 하이' 하면서 나를 죽이고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타인을 위한다'는 자발적 마음이 든 건 좀 더 나이 들어서지요. 다행히 좋은 스승들을 만났습니다."

-에단 호크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본질은 자신의 재능에 어떻게 집중하는가에 있다고 했어요. 재능이 우리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거죠. 동의하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어요. 정체성의 본질은 성격이나 출생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저의 재능을 믿은 건 확실해요. 저는 가사가 없는 노래를 피아노로 표현하는 데 재능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뮤지컬에서 관객은 배우의 노래만 듣지만 프로 작곡가는 노래가 없는 부분까지 전부 장악해서 만들어내죠."

-작곡은 어떻게 합니까?

"손으로 직접 한 후에 컴퓨터로 옮기고 있어요. 같은 곡이라도 악기 편성이 바뀌면 다 다시 써야 해요. AI가 할 수 없는 일이죠(웃음). 저작권 등록된 곡만 270곡이 넘어요."

-일본에선 어떤 음악가와 교류하나요? 류이치 사카모토나 히사이시 조와도 음악적인 교감이 있는지요?

"그 두 분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입니다(웃음). 경력도 실력도 저에 비해 높은 분들입니다. (온 몸으로 떠는 시늉을 하며)전 ‘후덜덜’이예요. 일본엔 그분들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습니다(웃음)."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단 두 가지다. 자만심과 비통함. 유키 구라모토는 그 점을 알고 유연하게 피해갔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엔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 공연으로 한국을 찾는다.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인생의 여러 장면 중 꼭 담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까?

"몇몇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5살 때 장난감 피아노를 선물 받았을 때 정말 좋았어요. 흰 건반으로만 된 작은 장난감인데, 그걸로 종일 놀았어요. 중학교 때 추워서 장갑 끼고 피아노를 치던 장면도 잊을 수가 없어요. 팬티에 복대 차고 건반을 두드리던 고교 시절도 간직하고 싶습니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평범한 분들이셨어요. 좋은 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저 서민적인 분들이었어요. 부모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뭐라 하건, 혹은 스승이 뭐라고 하건, 그냥 즐기면 됩니다. 물론 프로가 되려면 다른 요소가 필요해요. 기술, 돈, 네트워크 같은 것들이죠. 피아노는 비싸고, 상당한 테크닉을 필요로하며, 데뷔하려면 인맥도 중요하니까요."

-완벽한 능력을 갖게 된다면 전 악장을 연주하고 싶은 곡이 있습니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3번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2번. 쇼팽은 그 곡을 18살에 작곡하고 연주했어요. 조성진은 20살에 완벽하게 쳤지요. 하하."

-선생이 나이가 67살인 걸 고려한다면, 신비로울 정도로 겸손한 발언입니다.

"아니요. 나는 70살이 되면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앞으로도 발전할 여력이 있으니까요."

온 몸으로 인터뷰 질문에 반응하는 유키 구라모토.

-선생에겐 겸손의 힘이 느껴져요. 겸손은 자기를 더 큰 세계라는 맥락 속에 던져놓고 보는 능력입니다.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될 것 같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감사해요.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친절하고 젠틀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게 전달되었다니요. 저는 겸손한 피아노를 지향하지만 제가 프로페셔널 작곡가라는 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유키 구라모토의 공연에 온 사람들이 왜 그토록 안도감에 젖어 집으로 돌아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고급스러운 단 맛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겸손과 자부심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의 태도는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 전염시켰다. 과욕이나 경쟁 없이, 60km 속도로 천천히 달리는 삶. 70살이나 80살 즈음이면 더 나아질 거라는 그의 굳건한 믿음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