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안락사를 합법화한 지 올해로 19년째다.(벨기에와 스위스도 안락사가 합법화한 나라다.) 매년 6000여명이 안락사를 택한다. 이런 나라에 살면 죽음을 가볍게 여기거나 자살을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네덜란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팡 브레머(24·레이던대 4학년)씨는 "TV에서 안락사하는 장면이 나오고, 가족의 안락사를 지켜보기 위해서 휴가 쓰는 사람들도 많다"면서 "안락사는 장기간 고민하는 문제인데다 의사 허가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충동적인 자살과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그는 "유교 문화권인 한국은 효(孝) 사상이 강해 개인의 생명을 부모와 연결짓고 본인 의지로 선택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나는 부모님을 정말 사랑하지만 안락사를 고민하는 상황이 되면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그게 한국과 네덜란드의 차이점"이라고 했다.
루크 흐룬(22)씨는 "신은 사람들이 병으로 고통받길 원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며 "안락사는 신이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를 준 것으로 본다"고 했다. "안락사를 택한 사람이 죽어서 신을 만나면 '왜 벌써 왔느냐'고 벌을 받을까요? 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셈 반아스동크(24)씨는 "인간도 동물이고 동물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죽음도 마찬가지 아닐까"라고 했다.

안락사에 대한 의견을 나눈 네덜란드 코트라 직원들과 함께. 맨 앞이 남혜윤 탐험대원, 오른쪽은 취재에 동행한 양지혜 기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암스테르담무역관 직원 한문갑(58)씨는 25년째 네덜란드에서 산다. 그는 "네덜란드가 특별히 개방적인 문화라기보다는 합리성을 추구해서 안락사를 허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한국 양로원과 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보면 안락사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종종 생각합니다. 다만 네덜란드처럼 까다로운 심사 절차는 있어야겠죠."
네덜란드에선 안락사를 승인받으려면 6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환자가 본인의 의지로 신청할 것, 치료가 어려운 절망적이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을 것, 의사가 환자에게 의료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고 환자가 이를 이해했을 것, 의사와 환자 모두 고통을 줄이려면 안락사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 복수(複數)의 의사에게 상담받을 것, 의사는 환자가 가장 편안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수단(대개는 약물)을 마련하는 것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