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는 공간의 효과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당장 나타나진 않습니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건축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유민(38)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꾸준히 지어온 건축가다. 동료 조장희 건축가와 함께 제이와이아키텍츠를 운영하면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집, 대안학교, 놀이터 등을 지었거나 짓고 있다. 최근 만난 그는 "어린이 건축만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런 시설을 건축가가 공들여 짓는 일이 드물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역시 특별한 행보다.

지난해 말 경북 청송 지역아동센터, 올 초 전남 광양 학대피해아동쉼터를 잇따라 완성했다. 아이들이 방과 후 시간을 보내는 청송 센터는 작은 공간을 다채롭게 구성했다. 뾰족한 박공지붕 집 5채가 나란히 늘어선 모양이다. 지붕 아래 실내 공간은 천장의 높이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2층 바닥 일부는 해먹처럼 그물망을 치고,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미끄럼틀을 만든 배려도 세심하다.

뾰족 지붕 집이 늘어선 모양의 경북 청송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다양한 공간을 느끼도록 천장 높이와 모양에 변화를 줬다.

광양 쉼터는 박공지붕 집들이 ㅁ자 모양으로 모인 형태다. 성별(性別)로 분리한 생활공간을 2층에 두고 1층엔 치료·교육 공간을 마련했다. "선진국처럼 보호·치료·교육 공간을 한데 모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아파트를 빌려 만든 쉼터에 보호하면서 다니던 학교를 그대로 보내고 치료는 또 다른 시설에서 받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ㅁ자의 가운데 부분은 중정(中庭)이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이 바깥바람을 쐬도록 작게나마 만들었다.

여기엔 전남 강진 지역아동센터(2013) 이후 어린이 관련 시설을 설계해오면서 얻은 결론이 녹아들어 있다. 원유민은 이를 '자극'이란 단어로 요약했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은 익숙하지 않은 자극을 계속해서 주고, 정신적·신체적 성장을 촉진하는 감각의 자극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청송 아동센터 2층 바닥의 그물망에 어린이가 누워 있는 모습.

구체적으론 두 가지다. 첫째는 입체적 공간. 한국 아이들이 생활하는 아파트나 학교는 눈높이가 늘 똑같은 2차원적 공간이다. 그보다 바닥과 천장 높이에 변화가 있는 3차원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평면적 공간은 아이들에게 지루해요. 바닥 높이를 다르게 하기 어렵다면 지붕의 공간감이라도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둘째는 건물 안팎의 유연한 경계다. 쉽게 밖으로 나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다.

원유민은 "어린이를 위해 좋은 공간을 만드는 일은 저출산 대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이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어린이 공간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아이들이 더 좋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건축도 해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