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8시간' 아이돌 연습생, 교육과정 체험해보니
"100만명 중 데뷔확률 0.1%…스타는 별따기"
'울음바다' 된 심리상담…"미래에 대한 불안감, 편견이 상처"

"시선은 정면, 손끝은 디테일…춤은 관객을 휘어잡을 듯이 동작을 크게!"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파주시의 한 연예기획사 연습실. 춤 연습을 마친 여자아이돌 연습생 5명이 댄스 트레이너의 불호령에 고개를 푹 숙였다. 격한 안무 동작 때문인지, 큰 숨을 연거푸 들이마시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숨을 돌린 것도 잠시. "자자~ 연습만이 살 길, 다시 한번 가자"라며 격려하는 트레이너의 박수소리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든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소리친 뒤, 음악에 맞춰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난 28일 오후 3시 아이돌 댄스 트레이닝에 참여한 김세은 인턴기자가 어설프게 춤을 따라하고 있다.

‘빛나는 조명’ ‘억대 수입’ ‘팬들의 환호’...‘아이돌의 세계’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그야말로 화려하다. 하지만 그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도 있다. 바로 ‘레드오션’이라는 점이다.

국내 아이돌 지망생은 대략 100만명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하지만 한해 데뷔하는 신인 아이돌(솔로가수 포함)은 약 1000여명에 불과하다. 0.1% 확률을 뚫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운좋게 데뷔한다고 해도, 스타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위해, 이 순간에도 땀방울을 흘리는 아이돌 연습생의 하루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인턴기자가 체험해봤다.

◇아이돌 연습생, 하루 체험해 보니…춤추다 ‘오징어' 신세·눈치없이 고봉밥

인턴기자 2명이 찾아간 신생 기획사에는 소속 연습생 총 5명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약17세. 가장 어린 연습생은 14세, 최고 연장자는 19세였다. 트레이닝 기간도 4개월~3년으로 편차가 컸다. 기획사 측은 "내년 상반기 데뷔를 목표로 하는 연습생들"이라며 "회사의 첫 걸그룹이 될 예정이라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들 연습생은 △노래 △춤 △심리상담 등 대치동 입시학원가 못지 않은 철저한 교육과정 속에서 ‘주 6일 훈련’을 받고 있었다. 평일에는 학교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금요일에는 하루 ‘합숙훈련’을 하는 식이다. 춤과 노래 연습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힘든 훈련 과정을 견디기 위한 심리치료도 병행한다. 인성도 중요한 평가항목이기 때문에 욕설이나 비속어를 사용할 수 없고, 흡연이나 음주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이른바 ‘일진 활동’으로 불리는 교내 폭력은 말 할 것도 없다.

대망의 1교시 댄스 수업 시간. 격한 춤동작을 연습하기 전에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팔을 들어 올리고, 허리를 숙이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골반을 사용해야 ‘웨이브 동작’ 차례가 오자, 곳곳에서 "컥컥" 소리가 터져나왔다. 날렵하고 세련된 연습생들의 움직임과 달리, 인턴기자들의 웨이브는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마른오징어의 움직임을 연상케 했다. 댄스 트레이너는 "웨이브는 춤의 기본에 해당한다"며 "몸 곳곳을 사용하는데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완벽한 웨이브를 위해서는 최소 3~4개월은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4시 파주의 한 신생기획사에서 연습생이 댄스트레이닝을 받으며 자신의 춤을 선보이고 있다.

스트레칭이 끝나고 본격적인 안무 연습에 돌입했다. 좀 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암기력’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20년 넘게 공부하면서, 어디가서도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안무 연습 1시간 만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연습생들도 처음 시작한 안무 였지만, 트레이너의 시범에 척척 잘 따라했다.

세 시간 여의 댄스 수업을 마친 뒤 ‘꿀맛’같은 저녁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도 연습생의 길은 쉽지 않았다. 배고픔에 인턴기자는 허겁지겁 쌀밥과 반찬을 양껏 퍼 담았지만, 연습생들은 반찬은 채소, 쌀밥은 반공기 정도만 펐다. 연습생 B(18)양은 "키가 165cm인데, 최종 몸무게를 45kg로 만들어야 한다"며 반찬만 조금 먹는 시늉을 하다 식판을 반납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6시 한 연습생이 보컬 레코딩 수업에 참여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녁 시간이 끝나고 오후 6시부터는 개인별로 노래 레코딩 수업이 진행됐다. 각자 3~4분짜리 곡 1곡을 1시간 동안 내내 불러 평가받는 수업이었다. 연습생들은 각자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모두 이어폰을 끼고 목청껏 노래를 연습했다. 연습생 A(18)양은 "데뷔를 위해서는 월말평가에서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며 "노래 수업은 평가에 바로 반영되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했다.

◇‘눈물바다’ 된 심리상담…전문가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 말리고 싶다"

이날 트레이닝의 마지막 시간은 ‘집단 심리상담’이었다. 전문상담가가 함께 1주일마다 한번씩 진행하는 심리상담은, 연습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마음을 치료하자는 것이 취지다. 주 6일의 강도높은 훈련과 절제된 생활, 언제 데뷔할지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멘탈(정신)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8시 연습생들과 인턴기자가 전문상담가와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진행 방식은 간단하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 둥그런 원으로 연습생들이 모여 앉아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는 것. 연습생 사이에 인턴기자들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상담가의 얘기를 시작으로 한 연습생이 말문을 꺼내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의 연습생은 불투명한 미래와 희박한 성공 가능성을 가장 답답해했다. 또 "네가 무슨 아이돌을 하냐"는 주변의 무시나 편견도 상처가 됐다.

연습생 생활이 3년째인 7개월차 B(18)양은 "데뷔해서 못 뜨는 것도 문제지만, 데뷔조차 너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연습생 중 나이가 가장 많은 C(19)양은 "대학 진학이나 취직을 앞둔 친구들에 비해 내 미래는 불투명한 것 같아, 불안하다. 가끔씩 재능이 없는데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4개월된 막내 D(14)양은 "연습생을 한다는 소문에, 친구들이 (‘노는 아이’라는 편견에) 내게 거리를 두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상담을 마지막으로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마침내 연습생들의 하루 일과가 끝났다. 인턴기자들이 이날 참여한 연습은 총 7시간. 하루 만에 녹초가 됐다. 평소 안쓰던 근육을 사용하다 보니 온몸 곳곳이 쑤셔왔다. "공부가 더 쉽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전문가들은 아이돌을 막연하게 꿈꾸는 것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스스로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는 "재능이 없거나, 그저 부모님 손에 이끌려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은데, 대부분 2~3개월을 버티지 못한다"며 일부는 연습생만 수년째 하다가 데뷔도 못하고 연습생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막연한 동경만으로 아이돌을 꿈꾼다면, 당장 말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