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건축가

을지로에 자주 가는 냉면집이 있다. 그곳에 가면 맨 먼저 주문하는 음식이 돼지고기 수육인데 어슷하게 썬 쫀득한 껍질과 단내 나는 살코기를 새우젓에 적셔 먹곤 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위는 단면에 오도독뼈가 박힌(돼지털도 가끔 박혀 있다) 부분으로, 살점과 뼈를 헤아려 이 사이로 달아나는 뼈를 추적해 어금니로 요절내는 잔재미도 한몫한다.

어느 날인가 한편에서 소란이 있었는데 바로 이 오도독뼈 때문이었다. 손님은 일부러 뼈가 많은 부위만을 골라줬다고 항의했고 주인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맞섰지만 결국 다른 고기로 바꿔주었다. 집수리로 말하자면 '오도독뼈의 출현이 하자냐 아니냐'는 것인데 새로 받은 고기를 낱낱이 헤집으며 뼈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손님의 모습을 보니 나의 처지가 떠올랐다.

그즈음 한 젊은 부부의 집을 수리했는데 건축 자재에 함유된 포르말린 성분을 비난하며 자신의 집에는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자고 했고 특히 목재만큼은 원목을 쓰자고 당부했다. 염려되는 바가 없지 않았으나 소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사람들이었기에 책장을 비롯한 문짝까지 건조된 원목으로 만들었다. 반응이 좋았다. 집에 들어오면 소나무 숲에 온 듯하고 자녀의 아토피성 피부염도 한결 나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얼마 후 책장 모서리에 가시가 생겼다기에 목재가 건조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곧 진정이 될 것이라고 했으나 교체를 요구했다. 확인차 방문해보니 한겨울 실내 온도가 3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뜨겁고 건조한 공기로 목재에 변형이 생긴 것이다. 내 책임이 컸지만 이 일을 계기로 원목을 즐겨 쓰던 마음은 위축되었는데 어쩌면 냉면집도 오도독뼈를 모조리 발라서 손님 상에 내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고 서운하지만.

그러던 차에 딸애가 수박 한 통을 사와선 호기롭게 절반을 가르며 한마디 했다. "아빠 걱정 마. 안 달면 바꿔달라면 되거든."

※10월 일사일언은 김재관씨를 비롯해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이주희 EBS PD, 문혜연 2019 신춘문예 시 당선자, 서희선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장이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