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 피오트로프스카 글·아샤 그비스 그림
김영화 옮김ㅣ풀빛
96쪽ㅣ2만6000원

이 세상은 '알'에서 시작됐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렇게 여겼다. 거대한 알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가 탄생했고, 그 껍데기에서 하늘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연회 코스는 모두 알 요리부터 시작했다. '알에서부터(AB OVO)'란 말은 '처음부터'란 뜻을 가지게 됐다.

생선알, 달걀, 먹을 수 없는 알, 배 속이나 주머니에 들어 있는 알, 동화나 이야기에 나오는 알, 건강에 좋은 알…. 제법 큰 판형(가로 28㎝·세로 34㎝)에 실감 나는 그림으로 세상에 굴러다니는 오만 가지 알들을 그러모아 인간과 우주, 자연과 요리, 건축과 미술에 깃든 알의 역사를 풀어낸다. 새알은 탁구공처럼 동그란 것부터 럭비공처럼 길쭉한 것까지 모양이 다양한데, 둥지를 짓고 사는 새일수록 양끝이 뾰족한 알을 낳는다. 둥지에서 쉽게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암탉은 가끔 오이처럼 길거나 기왓장처럼 휘어진 달걀을 낳는다. 닭의 나팔관을 따라 알이 이동하다가 예상치 못한 충돌이 발생해 밀고 밀리다 모양이 변한 것이다. 특히 건축가들은 알 모양이 이상적 형태라고 생각했다. 위에서 상당한 무게로 눌러도 힘이 고르게 분산돼 단단히 떠받칠 수 있는 아치형, 40층짜리 알 모양의 런던 '30 세인트 메리 액스'빌딩, 600년 된 피렌체 대성당의 돔 등. 군침 도는 알부터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앤디 워홀에게 영감을 준 알까지 알의 말랑말랑한 속살을 후루룩 짭짭 삼키다 보면 '사람 몸속 알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던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