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제마 하틀리 지음|노지양 옮김|어크로스|384쪽|1만5000원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남편에게 어머니날 선물로 청소업체를 불러달라고 했다. 남편에게 바란 것은 페이스북에 '어느 청소업체가 좋으냐'는 질문을 올리고 친구들에게 추천받아 너덧 군데 전화를 거는 '감정노동'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딱 한 군데 전화를 걸어보더니 "너무 비싸다"며 청소를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어머니날 남편은 대신 목걸이를 선물했고, 저자는 남편이 화장실을 변신시키겠다며 사라진 동안 점점 더 난장판이 돼가는 집 안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옷방 한가운데 남편이 선반에서 내려놓고 도무지 원위치할 생각을 않는 수납함이 놓여 있었다. 저자가 끙끙대며 수납함을 올려놓는 것을 본 남편이 한마디 했다.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저자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바로 그게 문제잖아. 나는 당신에게 하나하나 시키기 싫단 말이야."

저자는 이날의 경험을 '여자들은 잔소리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지긋지긋할 뿐'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잡지 '하퍼스 바자'에 기고했다. 반응은 엄청났다. 순식간에 조회 수 200만 건을 기록했고, 100만 건 가까이 공유됐다. 그 칼럼을 기반으로 쓴 이 책은 남녀 간 '감정노동'의 불균형을 다룬다. 특히 가정에서 눈에 보이는 노동뿐 아니라 무형의 감정노동까지 여성이 훨씬 많이 부담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남편이 뒷마당을 청소해주길 바라지만 부탁하면서 짜증 내지 않도록 목소리 톤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 바로 '감정노동'이다. "일을 배분하고 지시하려면 반복해서 요청해야 하고 그것은 종종 잔소리로 여겨진다. 그러느니 내가 알아서 해버리기로 한다."(17쪽)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용어는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 발표한 책에 처음 등장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해 공적으로 요구되는 말투나 표정을 교환가치로 만들어 상품으로 파는 것을 뜻한다. 2005년 사회심리학자 리베카 에릭슨은 가사노동에서의 성별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인 요소로 '감정노동'을 지목한다. "여성은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일을 대표하며, 그 일을 하면서도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27쪽)

저자는 "아이에게 충실하지 않으면, 내조를 잘하지 않으면,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여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면서 "남자들에게 어설프게 일을 맡기느니 '차라리 내가 하지'하는 체념이 스스로를 감정 노동의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1965년과 2015년 사이 미국 남편들의 가사 노동시간은 두 배, 육아시간은 세 배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수치상의 급격한 발전이 온전한 평등을 선물하지는 않았다.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에 신경 쓰는 시간은 남성의 두 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교적 평등한 부부 사이에서도 여전히 여성들은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느낀다. '추가로' 감정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남편에게 "힘을 쓰지 말고 신경을 써줬으면"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일을 시키거나 맡길 때도 상냥한 말투를 유지하기를 요구받는다.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며 돌려 말한다. '드센 여자'라는 인상이 박혀 권력 가진 남성의 심기를 거스르면 일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는 없다"면서 여성들의 커리어가 중간에 지체되는 이유 중 하나를 '자신을 돌보기 위해 필요한 정신의 용량까지 다 써버릴 만큼' 감정노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에게 감정노동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성폭력 문화에도 일조한다. 저자는 "여성들이 자신의 심경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남성들이 선을 넘는데 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직업을 지키기 위해서, 안전을 위해서 우리는 감정노동으로 자기를 보호해야 했고, 같은 방식으로 성추행 앞에서도 배려하고 참는다."(239쪽)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남자와 싸우라"고 부추기는 책은 아니다. 남편이 실직해 집에 있으면서도 시시콜콜하게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던 저자는 집이 엉망이 되건 말건 일주일간 내버려뒀더니 비로소 남편이 '알아서' 하기 시작하는 걸 보고 깨닫는다. "나의 지속적인 개입과 의도하지 않았던 무시 때문에 남편이 자신 있게 감정노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십 년의 경험치가 쌓인 나에 비해 부족한 그를 평가하는 내가 없어야 했다."(293쪽) 원제 Fed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