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집수리 건축가

며칠 전 부여에 사는 한 아주머니 연락이 왔다. 집을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지붕 어디선가 비가 새더니, 얼마 후엔 화장실에서도 물이 새고, 곧이어 정전이 되고, 급기야는 방바닥 난방까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선 동네 업자를 불러 상담을 받아보라 권하니 전기 업자는 누전을, 방수 업자는 누수를, 난방 업자는 온수난방을 말할 뿐 정작 집을 고쳐 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더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속 부부가 로렌조라는 다섯 살 난 아들이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고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전문의들은 각기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만 있을 뿐 그것을 총괄하는 의사는 없음을 알고 심포지엄을 열어 의사들의 의견을 통합하는 등의 노력 끝에 '로렌조 오일'이라는 치료약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의학의 내과, 외과, 신경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을 집수리의 직능과 비교하면 조적(組積·벽돌 등 쌓기), 미장, 도장, 수장(修粧·마감 작업), 방수, 전기, 설비다. 그렇다면 부여 아주머니도 영화 속 부부처럼 동네 전기, 설비, 난방 업자를 불러 심포지엄이라도 열어야 하는 걸까.

며칠 전 나를 도왔던 홍철 아저씨처럼 예전에는 동네 집수리 업자들이 그 역할을 했었다. 정화조 관을 연결하고, 투광등만 교체하랬더니 비를 맞으면 또다시 문제가 생긴다며 강화 플라스틱으로 지붕을 덮고, 공장에서 가공한 금속을 처마에 잇고, 미세기 문이 중간에서 걸린다며 옆벽을 뚫더니 다시 복구해 페인트까지 칠하는 '집수리계의 맥가이버' 말이다.

이들은 여러 공종을 혼자서 해결할 뿐 아니라 동네에 함께 살면서 집집이 수리 이력까지 꿰는 집수리 종합병원이었다. 하지만 아파트의 번성은 그들의 영토를 앗아갔고 그 피해자는 아주머니 같은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환자만 남고 의사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래도 홍철 아저씨에게 부탁해야 할 것 같다. "멀지만 부여에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