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 탈북작가

"글 안 쓰세요?" 한국에 와서 2년째 되는 해 지인이 던진 질문이다. 북에서 단편소설을 네 편 출판하고 나름 작가 흉내를 내던 내가 한국에 와서는 마냥 넋을 놓고 재미있는 것만 쫓아다니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쓰긴 써야 하는데 서점보다 시네마를 자주 찾게 되네요." 조롱 안의 새처럼 외부 소식을 접할 수 없었던 그 땅에서는 늘 책과 글에 파묻혀 살았는데, 정작 자유의 땅을 밟고는 작가라는 한 조각 자존심만 붙잡은 채 창작은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내게 작가로서의 후각과 시각을 되돌려준 일이 있었다. "항상 전기가 들어오고 수돗물이 콸콸 나오고 온수도 나와서 정말 좋습니다." 평소처럼 한국의 좋은 점을 단순 명료하게 짚어내던 내게 돌아온 답변. "그게 공짜는 아니잖습니까. 밝은 곳에서는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어두운 밤이 오면 아름다움은 가려지는 법이죠."

한순간 전율이 일었다. 밝은 곳만 찾아다니던 내가 어둠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책이 어둠을 향해 열린 창이 되어주었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예나 지금이나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바람이 어떤 것인지 헤아려보게 되었고, 한강의 '소년이 온다'로 5·18의 아픔을 다시 한 번 통감하게 되었으며, 안은별의 'IMF 키즈의 생애'를 읽고 청춘들의 아픔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은 내가 몰랐던 한국의 과거를 알게 하고 현재를 비춰보게 한 의미 깊은 책이었다.

'책의 창'을 펼쳐놓고 주위 풍경을 다시 살펴보았더니 낯설었던 한국 사회가 세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내가 몰랐던 한국의 뒷모습이 있었고 오래된 아픔도 있었다. 이 나라의 이면과 아픔을 모두 받아들인 뒤에야 비로소 한국은 나의 나라가 되었다.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어크로스)엔 그런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