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아이리시맨'에선 올해 76세인 로버트 드니로가 20대 청년부터 40대 중년, 80대 노년까지 연기한다. 조 페시(76)와 알 파치노(79)도 50년의 세월을 넘나든다. 예전 같으면 이들과 닮은 어린 배우들을 썼겠지만, '아이리시맨'에선 세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등장한다.
인공지능(AI)이 관객에게 더 젊게, 더 어리게 보이고픈 배우들의 꿈을 이뤄주고 있다. '디에이징(de-aging)' 기술에 AI와 데이터 추출 기술이 접목되면서 왕년의 배우들이 다시 스크린에 전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디에이징 기술은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주름을 지우고 턱선을 다듬는 데 그쳤다. 지금은 현재의 연기에 젊은 시절 연기한 장면을 더해서 '젊은 모습'을 만든다.
지난 10월 개봉한 이안 감독의 '제미니 맨'에는 51세의 윌 스미스와 23세의 윌 스미스가 동시에 등장한다. '주니어'라 불리는 젊은 스미스는 100% 가상으로 만들어졌다. 50대의 스미스가 얼굴에 센서를 붙이고 주니어 연기를 한 뒤, 스미스가 20대에 연기한 드라마 '벨 에어의 프린스'에서 따온 얼굴을 입혔다. 가상 '주니어'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스미스 출연료(약 3500만달러 추정)의 두 배에 달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상대 배우의 연기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센서 연기'를 반대했다. 대신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일단 적외선 카메라 두 대를 동원해 배우들 연기를 촬영한다. 배우들이 젊은 시절 등장한 영화에서 얼굴 표정 데이터를 수천 개 수집해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연기와 합친다. IT 전문지 와이어드에 따르면 디에이징에 쓰일 적합한 데이터를 찾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AI 기술이 동원됐다.
가장 최신의 대안은 딥페이크 기술이다. 딥페이크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를 합친 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는 완전히 쓰레기"라고 말하는 가짜 동영상이 이 기술로 만들어졌다. 가짜 뉴스와 포르노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어 '나쁜 기술'로 비난받지만, 영화계는 딥페이크가 디에이징을 더 쉽고, 더 싸게 만들어주는 '착한 기술'로 보고 있다. 해상도가 떨어지는 기술적 한계가 있어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지난 5월 개봉한 '명탐정 피카츄'에서 빌 나이(70)의 젊은 시절 사진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딥페이크가 쓰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방대한 데이터 추출 기술과 AI 기술 덕분에 노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구현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