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독일)=남형원 탐험대원

독일의 뮌헨 중앙역 지하. 몸길이가 70㎝ 정도인 불테리어 한 마리가 S반(도시 전철) 개찰구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목줄을 든 견주 티나씨가 뒤를 따랐다. 한국 기차에서 본 개라곤 시각장애인 안내견밖에 없던 내게 충격이었다. 티나씨가 말했다. "독일에선 개와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습니다. 목줄과 배변봉투만 지참했다면 말이죠."

반려견을 3년째 키우는 나는 박소연 '케어' 대표의 유기 동물 안락사 논란 후 유기견 보호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은 반려동물이 1000만마리가 넘는다. 하지만 매해 동물 20만마리가 버려지고 반려동물과 들어갈 수 있는 식당도, 가게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독일은 유기견 재입양률이 95%에 이를 정도로 반려 동물에게 친절하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 보호소가 있는 뮌헨을 찾아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일상과 문화를 돌아봤다.

◇"개도 전철 편히 타세요… 요금 내고요"

뮌헨 이자르포어슈타트 지역에서 만난 열한 살배기 하운드견 '시바'의 견주 레오니는 시바의 예방접종을 위해 수의사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시바는 사람으로 치면 85세에 가까운 나이다. 그는 자신의 개를 가리키며 '콜레게훈트(Kollege Hund)'라 불렀다. 회사에 동반 출근하는 '동료 개'란 뜻이다. 레오니는 "사무실에 반려견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안정돼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며 "평생 동반자와 일도 함께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독일엔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반려견 동료'를 허용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고 한다. 레오니가 다니는 작은 무역 회사엔 '사내 개 모임'이라는, 견주(犬主)들의 만남이 활발하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 보호법을 가진 나라다. 1972년 개정된 독일 동물보호법 제1조 제1항 내용이다. '동물과 인간은 이 세상의 동등한 창조물이다.' 독일 민법 제90a조에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독일에선 동물을 인격체로 대하는 게 자연스럽다. 인간이 갈 수 있는 곳이면 대부분 동물이 동행할 수 있다.

마냥 부럽다고만은 하기 어려웠다. '동등한 창조물'이란 묘사는 권리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대중교통 이용료와 세금 등 의무도 부과된다. 뮌헨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개 한 마리까지는 무료이지만, 두 마리부터는 어린이와 같은 요금(기본요금 1.50유로)을 내야 한다. 수도 베를린은 좀 더 깐깐하다. 한 마리당 1.80유로를 받는다. 작은 개(크기 기준은 '집 고양이보다 작은')를 반려견 휴대용 우리 안에 넣으면 승차료를 면제해준다. 하지만 동물 권리를 중시하는 독일인들은 우리에 개를 가두기보다는 목줄을 채우고 개와 함께 걷는 방식을 선호하는 듯 보였다.

◇"개 세(稅) 90만원 낸 우리에게 자유를"

독일 곳곳엔 개가 뛰어놀 수 있는 공원이 눈에 띄었다. 이런 공원 중 상당수는 정부가 관리한다.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들에겐(엄밀히 말하면 견주에게) 대신 만만찮은 세금이 부과된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뮌헨에선 한 마리당 100유로(약 13만원)를 내야 한다. 맹견(猛犬)으로 분류된 품종은 한 마리당 800유로, 즉 90만원이 넘는 돈을 매년 세금으로 낸다. 거둬들인 세금은 오로지 반려동물의 복지를 위해 쓰인다. 개들이 산책하는 공원이나 잔디밭을 관리하고 동물보호소를 운영하는 데 개로부터 걷은 세금이 투입된다.

법으로 의무와 권리가 정해진 만큼, 반려견을 키우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충동적으로 동물을 입양했다가 학대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독일 니더작센주(州)는 2011년 반려견을 키우는 데 필요한 자격증 제도를 도입했다. 입양 전 이론 및 실습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발급한다. 동물에 대한 상식과 관련법 숙지, 돌발 상황 대처 등을 평가받는다. 개 역시 '훈데타게스태테(개 탁아소)'라 불리는 훈련기관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나쁜 습관을 바로잡는 교육을 받고 나서 정식 입양된다.

너무 난폭하거나 사람을 해치는 강아지라면? 10일 남짓 보호 공고 기간을 거쳐 안락사시키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선 두 달 가까이 재훈련을 거쳐 새로운 양육자의 품으로 보낸다. 뮌헨 슈바빙 지역에서 만난 수의사 앙케 트리츠씨는 "동물복지 법령에 따라 의학적으로 치료 불가능한 병에 걸린 동물이 아닌 이상 안락사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 주인이 마음대로 안락사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 다른 동물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수의학적 소견과 제삼자 증명이 요구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티어하임'서 본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

독일인의 동물 보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동물의 집'이란 뜻의 동물보호소 '티어하임(Tierheim)'이다. 크고 작은 티어하임이 독일 전역에서 1000여개 운영 중이다. 베를린 티어하임은 유럽 최대 규모로 축구장 22개를 합친 크기다. 동물 1400마리를 보호하는 이곳의 한 해 운영비만 800만유로(약 103억원)가 넘는다. 뮌헨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티어하임이 있다. 우리가 찾은 티어하임에는 별채 다섯 곳에 세심하게 분류된 50여종의 1000마리 넘는 동물이 흩어져 있었다. 모여 놀기 좋아하는 작은 개들은 '훈데하우스(강아지 아파트)'에, 혼자 있고 싶은 맹견들은 크고 그늘진 개별 쉼터에 배치되는 식이다. 염소와 닭이 같이 살기도 하고, 보아뱀과 원숭이가 지척의 이웃이었다. 동물들은 이름과 생년월일, 성향이 메모 된 각자의 '집' 안에 원반과 밧줄 장난감, 사료와 영양식을 받는다.

유기견 보호소가 축구장 22개 크기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 ‘티어하임’. 축구장 22개 크기다. 동물 약 1400마리를 보호하는데, 80%는 6주 안에 새로운 주인에게 입양된다.

티어하임에 머무는 동안 재사회화와 훈련을 거친 동물들은 새 주인을 찾아간다. 입양 희망자들은 동물의 건강·성향과 알레르기 여부 등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티어하임 측은 반려동물이 거주하게 될 곳 위치가 도심인지 외곽인지, 집에 마당은 있는지, 아이나 다른 반려동물이 있는지를 체크한다. 홍보 담당 직원 니나 래드니씨는 "티어하임에 오는 연간 8000마리 동물 중 80%는 6주 안에 새로운 가족을 찾아간다"고 했다. 대신 동물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펫숍(pet shop·동물 매매상)'은 독일에 없다.

독일인들은 유기 동물 주인을 찾아주는 일을 '시민의 책무'처럼 느끼는 듯했다. 뮌헨 티어하임은 시로부터 지원받는 30만유로(약 4억원)를 제외하면 재원의 70%를 시민 1만5000명이 내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스위스에는 개 전문 변호사도… 동물학대 벌금 최대 12억원]

스위스는 독일과 아울러 유럽의 대표적인 반려동물 선진국으로 꼽힌다. 스위스 헌법은 1992년 '동물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헌법 조항을 도입했다. 세부 법률인 동물복지법과 동물복지조례를 통해 동물 학대와 비윤리적 도축, 매매를 엄격히 금한다. 동물보호법을 위반하고 동물을 학대하다가 유죄판결을 받으면 재산과 학대의 유형에 따라 2만~100만 스위스프랑(약 2400만~12억원)이 부과될 수 있다. 동물 전문 변호사들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영국은 동물 보호 역사가 긴 나라다. 1822년 영국 의회가 통과시킨 '소에 대한 잔인하고 부적절한 처우를 방지하는 법'은 세계 최초의 동물 복지 관련 법률이라 일컬어진다. 소를 잔혹하게 때리거나 무거운 짐을 지우면 법률 위반으로 규정한 법이었다. 이후 '동물보호법'이라 불리는 최초의 일반동물보호법은 1911년 제정됐다. 현재 영국에서는 '개 사육에 관한 법'을 비롯해 '위험한 야생동물에 관한 법' '동물의 잔혹한 구속에 관한 법' 등 다양한 이름의 법률이 시행 중이다.

일본은 신흥 반려동물 선진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일본에서 개와 고양이는 가족 역할을 도맡고 있다. 유럽에 비하면 법은 아직 미비하지만 산업부터 빠르게 발전 중이다. 일본 금융회사들은 주인이 사망하고 나서 새로운 주인(수탁자)에게 '연금' 형식으로 반려동물 사육비를 보장하는 '펫 신탁'을 판다. 최근엔 유명 주택건설업체 아사히카세이가 반려동물과 함께 입주할 수 있는 공유주택을 지었다. 주거자끼리 동물을 서로 맡아주고 동물 화장실 등 전용 공간이 마련돼 있다.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은 한국(0.02%)보다 훨씬 높은 6.0%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