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명 공수처 준비단장이 하나은행 사외이사를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준비단장에 내정된 지 채 한 달도 안 돼 연봉 5000만원짜리 민간기업 알짜 자리를 겸직하겠다는 것이다. 공직자의 사외이사 겸직은 법에 금지돼 있다. 남씨는 정식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겸직 제한에는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총리실 산하 기구인 공수처 준비단 직원 20여명은 모두 법무부와 행안부, 기재부, 경찰에서 파견된 현직 공무원들이다. 남씨는 이들을 지휘하면서 실제 공무원 업무를 한다. 공무원 일을 하는데 정식 공무원 신분이 아니니까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공수처는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판검사를 수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공수처법이 헌법기관인 검찰을 무력화한다는 위헌 논란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의당과 군소 정당이 요구하는 선거법 개정을 엿 바꿔 먹듯이 거래하기도 했다. 이처럼 무리수를 둔 목적이 정권 보호에 있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공수처가 있어야 권력의 비리를 들추려는 검찰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씨가 준비단장에 임명된 것도 노무현 정권 시절 법제처장을 지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공수처법 통과 과정도 시끄러웠지만 앞으로의 설립 준비 과정 역시 하나하나가 다 문제 소지를 안고 있다. 남씨도 자신이 맡은 자리가 얼마나 입방아에 오르기 쉬운 자리인지 짐작했을 것이다. 웬만한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사외이사 제안이 들어왔을 때 설사 법적 문제가 없다 할지라도 뒷말이 무서워 사양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씨는 취임하자마자 사외이사 자리부터 챙겼다. 은행 측은 남씨가 소비자 보호에 적임자여서 사외이사로 뽑았다는데 이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구설에 오를 것이 뻔한데도 사외이사 자리를 넙죽 받아들인 남씨의 심장 두께에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보자는 심산이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