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삶 사는 법무법인 중원 이기광 변호사

32년간 법관의 자리를 지켜온 이기광 전 울산지방법원장이 이제는 법무법인 중원에서 '이기광 변호사'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 뇌병변장애 2급이라는 중증 장애를 앓았지만, 이를 한계로 여기지 않고 늘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판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 견뎌

장애를 가지고 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경북 군위의 시골에서 태어나 대물림되는 반복적인 삶에 대한 회의로 시골을 벗어났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생긴 장애와 3번의 대학진학 실패를 겪었다. 또한 지방대학 출신 장애인 판사가 받는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 등 많은 시련과 위기가 그를 덮쳤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이를 실패와 포기의 이유로 삼지 않고 오히려 디딤돌 삼아 열심히 꿈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어려운 시기마다 늘 곁에서 응원하고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고 밝혔다.

주위에서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과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본 그는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깊이 깨닫고 반성하고 노력하길 반복했다. 부족함을 아는 겸허함과 내적 자긍심, 그리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그를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이 변호사는 "인생의 수많은 순간마다 어려움을 겪었기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앞서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했던 경험을 반추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판사 시절, 그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신중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현장검증을 자주 나가곤 했다. 현장검증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것에 대해 당사자와 대리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장애인 판사를 만나 부족한 판결을 받았다는 편견을 피하고자 더욱더 매사 최선을 다했다. 때론 법적인 판결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재판 후 따로 판사실로 불러 위로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특히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화상 전화기, 점자블록, 수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에 힘쓰기도 했다.

법무법인 중원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가 지정하는 ‘착한 로펌’에 가입.

◇약자의 편에 선 법조인

그는 법관 시절 '넉넉한 인품의 판사'라고 불렸다.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그들의 편에 서는 판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울산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사법교실, 진로 멘토링 강연, 직장 체험 행사, 발달장애 학교 장학금 전달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면 약자가 재판과정에서 진실과 정의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제 그는 법무법인 중원에서 꿈을 이어가고자 한다. 조금 더 약자들에게 다가서는 변호사가 되고자 한다. 인생을 살아오며 자신이 받았던 도움과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다. 현재 그는 대구지체장애인협회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계획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만큼 어려운 상황의 청소년이나 장애인 등을 돕고 강연 활동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할 예정이다. 이 변호사는 "짧지 않은 기간 판사로서의 삶은 내 인생의 엄청난 행운이었고, 큰 보람과 기쁨을 줬다"며 "우리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각오와 감사로 열심히 살아갈 계획이다. 변호사 생활이 안정되면 어려운 상황의 청소년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을 찾아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이기광(앞 줄 가운데) 변호사가 판사로 근무할 당시, 재판부 구성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Q. 법조인이라는 꿈은 언제부터 키웠나
A.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에 비해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수학과 물리학에 깊은 흥미와 관심을 느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수학이 기호의 논리라면, 법학은 개념과 가치의 논리라고 하셨다. 수학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법학에 관심을 가졌고, 법관이 된다면 재판을 통해서 큰 보람과 성취를 이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법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장애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Q. 꿈을 키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A. 뇌병변장애 2급이다. 원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겪은 불의의 농약중독사고 때문이다. 이러한 장애를 안고 법조인이 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되고 나서도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힘든 시기가 많았지만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와 용기를 준 주위의 수많은 분께 감사하다.

Q. 30년 넘게 판사로 일했다.
A. 배석판사, 단독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2016년에는 울산지방법원 법원장으로 근무했다. 재판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진실에 바탕을 둔 정의로운 재판을 하기도 어렵지만 시민으로부터 진실에 바탕을 둔 정의로운 재판이라는 신뢰를 받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재판은 전지전능하고 불편부당한 신이 담당해야 할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인 법관이 재판을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능력의 한계와 윤리적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늘 명심하고 올바른 재판을 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고 깊이 성찰하는 자세를 지녔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재판 중인 이기광(가운데) 변호사. 법무법인 중원 제공

Q. 장애인이라는 편견에는 어떻게 맞섰나
A. 형사단독재판을 할 당시 우연히도 다른 판사들에 비해 무죄판결을 다소 많이 선고했다. 그러자 선배 판사로부터 '장애가 있어서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는 것은 아니냐'는 충고를 들었다. 법관이라는 자리가 주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볼 때, 장애인 법관이 진행하는 재판이라 부족할 수 있다는 편견은 제 개인적으로 억울한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판 당사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좌절감을 겪기도 했지만, 평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더욱더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Q.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앞장서고 있다
A. 장애인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장애인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아주 부족하다. 모든 삶의 주체는 개개의 본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문제에 관한 근원적인 해답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애인들도 자신의 삶 주체가 본인이라는 점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약자의 곁에 서서 '이겨야 할 사건'을 맡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프랑스 정치가 앙드레 말로가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을 했는데, 이처럼 사회에 헌신하는 따뜻한 변호사를 꿈꾸며 최선을 다하겠다.

약력 *최근 순

2018년 3월 법무법인 중원 변호사
2016년 제18대 울산지방법원 법원장
2012년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2008년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2001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199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
1985년 사법연수원 15기
1983년 사법시험 25회
1981년 영남대학교 법학과 졸업
1955년 경상북도 군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