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화 스와프 덕에 반짝 반등했던 증시가 23일 또 5% 이상 동반 급락했다. 외국인들은 이날도 코스피 시장에서 6000억원 이상을 매각했고 원·달러 환율은 하루 새 20원 뛰었다. 정부가 증권·채권안정펀드 검토 방침을 밝혔지만 투자자 불안 심리를 잠재우지 못했다. 경제 위기엔 시장의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시장의 기대를 웃도는 규모로 과감하게 선제 대응해야 하는데 정부 대응은 늦고 소극적이다.

생사기로에 놓인 자영업자,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보면 마스크 대책처럼 실기(失機)와 혼선의 연속이다. 정부가 소상공인 긴급 자금 지원 대책을 내놨지만 신청이 폭주하는 바람에 대출 창구가 마비됐다. 말만 '긴급' 자금이지 심사를 거쳐 실제 대출을 받으려면 2개월이나 걸리는 지경이 됐다. 뒤늦게 정부는 신용보증기관 대신 은행 창구에서 접수하게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병목 현상은 여전하다. 소상공인 지원 규모도 처음엔 6조5000억원대로 내놨다가 신청이 폭주하고, 일각에서 재난기본소득 주장까지 나오자 부랴부랴 50조원대 금융 지원 대책을 또 내놨다. 처음부터 지원 규모를 더 크게 잡고, 전달 경로를 정교하게 설계했으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패닉에 빠진 금융시장 대응도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한국은행은 2월 말 정례 금통위 회의 때 금리를 동결하더니 미국이 금리를 내린 뒤에야 임시 회의를 급히 열어 기준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뒷북친 셈이다. 증권 당국은 코로나 사태로 증시가 연일 급락하고 외국인들이 공매도를 통해 주가 낙폭을 더 키우는데도 계속 지켜만 보다 지난주에야 '공매도 6개월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래도 주가 폭락이 연일 이어지자 증시안정펀드 카드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가총액의 1%밖에 안 되는 자금으로 증시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면 시장의 예상을 뒤엎는 정도의 카드를 선제적으로 써야 하는데 금융 당국은 반대로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기업 자금난을 해소해주려 기업 어음이나 회사채를 정부나 중앙은행이 직접 매입하는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반면 우리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시간만 보내고 있다. 이러다 기업 줄도산 사태가 발생하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

대통령은 "전례 없는 대책"을 만들겠다 하고 관료들은 "비상 플랜이 있다"고 했지만, 실제 나오는 정책은 항상 타이밍을 놓치고 내용도 구태의연하다. 이런 식으론 과거 경제 위기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경제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