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


소상공인 대표단체가 배달의민족을 대신할 이른바 '제로배달앱'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와 정치권이 정부 예산으로 만들려는 '공공배달앱'과 달리, 배달앱 시장 독점의 피해자인 소상공인들이 기존 결제·IT(정보기술) 인프라를 활용해 내놓는 서비스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시장 독점 상황에서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높여 비판받고 있는 '배달의민족' 사태가 소상공인들의 '역습'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기존 인프라 활용, 혈세 투입 논란 적은 수수료 0% 배달앱

소상공인연합회 고위관계자는 8일 "2월부터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한국간편결제진흥원과 손잡고 연 매출 8억원 이하 소상공인 수수료가 0%인 배달앱 서비스 사업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 등 지자체와도 구체적인 부분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르면 올해 중 시범 서비스 실시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칭 '제로배달앱'인 이 서비스는 이재명 지사 등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지자체 '공공배달앱'에 비해 구축 비용이 훨씬 적게 들고 지방·중앙 정부의 '민간 영역 개입' 논란도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의 기존 모바일 결제 및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간편결제진흥원은 이미 전국 소상공인 음식점에 대한 지도 정보화 작업(매핑)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흥원 고위관계자는 "서비스 구축은 그리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결제 인프라와 매핑 데이터를 네이버·카카오 등이 제공하는 지도 정보와 결합하면 기존 배달앱과 다름없는 서비스 구축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자체 예산을 투입해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공공배달앱과 비교해 배달의민족 등에 실질적 위협이 될 것"이라며 "사용자와 결제 건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로페이에도 서비스 확산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가 제로페이를 홍보하는 광고물.


음식값 내리고 온누리 상품권으로 할인 혜택도

문제는 소비자에게 어떤 혜택을 주느냐다.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등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 산하의 서비스들은 소상공인에게 높은 수수료를 받는 대신, 소비자에게 각종 무료·할인 쿠폰을 제공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에 대해 "소상공인에게 받는 수수료를 0%로 낮춰 배달 음식값 자체를 떨어뜨리는 것은 기본"이라며 "소비자를 위한 다양한 다른 혜택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온누리상품권과 지역 상품권을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온누리 상품권은 지난해 2조원어치를 발행했고, 올해는 10조원어치를 발행할 예정이다. 국민 1인당 19만원, 가구당 45만원에 해당한다. 설·추석 명절을 전후해 10% 할인 판매도 한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본 지역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특별 10% 할인 판매를 20일부터 시작한다. 소비자가 이 상품권을 음식배달에 활용할 경우 5~10%의 할인 혜택을 미리 받는 셈이다. 또 사용액이 전통시장 혹은 현금영수증 사용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신용카드에 비해 연말정산 혜택도 덤으로 받는다.

온누리 상품권은 이미 은행과 간편결제 앱을 통해 구매해 쓸 수 있다. 간편결제업계 관계자는 "앱을 구매한 온누리 상품권을 제로페이로 연계만 하면 손쉽게 제로배달앱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로페이는 이미 현금처럼 쉽게 쓸 수 있는 모바일 상품권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저소득층에 지급한 30만~50만원의 재난긴급생활비를 제로페이 모바일 상품권으로 지급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창원시 마산 창동예술촌의 '학문당' 서점에서 책을 사고 온누리 상품권을 내고 있다. 연합뉴스


독과점이라는 시장실패, 시민 사회가 해결

독과점이라는 시장실패를 다른 규제로 해결하기 보다, 시민 사회 차원의 민간 협력을 통해 해결한다는 점에서 제로배달앱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배달앱 업계의 관심은 정부의 태도다. 업계 관계자는 "제로페이와 온누리상품권 등 이른바 제로배달앱의 인프라는 모두 중소기업벤처부의 소상공인·서민경제 진흥정책에 기반을 둔 것"이라며 "충분한 정책자금과 '자상한 기업' 사업을 통해 확보한 대기업 네트워크도 있기 때문에 중기부가 이 사업의 성패를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중기부는 소상공인과 서민경제 지원 차원에서 정책적 입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현재 제로페이 가맹점 중심으로 (제로배달앱)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여러 비판이 있는만큼 신중하게 접근 중"이라며 "기업과 소상공인, 국민의 복리가 최대화되는 지점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