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000원에 매달 새 그림 집으로 정기 배송
대학생 때 카페 창업 실패 쓰린 기억
미술계 넷플릿스 도약

코로나 사태로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안 인테리어를 보는 시간이 늘었다. 외국 작가의 그림을 ‘공짜로’ 가져다 국내에서 돈을 받고 파는 사람이 있다. 외국 작가로부터 흔쾌히 동의받은 것이다. 어떻게 외국 작가들 마음을 훔쳤을까. 진준화 핀즐(Pinzle) 대표를 만났다.

◇인기 작가 국내 저작권 무료 확보

핀즐은 독일어로 화풍이란 뜻이다. 한 달 1만5000원(6개월 이상 정기구독 기준)을 내고 서비스(https://bit.ly/2R2t9My)를 신청하면, 매달 한 장 씩 새 그림을 보내준다. 계약 때 보내준 액자에 그림을 교체해 걸고, 지난 그림은 보관하면 된다. 1년이면 12장이다. 작품 소개 브로셔도 함께 온다. 어떤 작가가 어떤 생각에서 그렸는지 알고 즐길 수 있다.

진준화 대표

-어떻게 아이디어를 냈죠?
"아무리 좋은 그림도 오래 보면 질리기 마련이에요. 트렌디한 그림으로 자주 분위기를 바꾸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정기구독 서비스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작가들이 왜 저작권을 주죠?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내 유통 권리입니다. 이걸 무료로 받아 옵니다. 작가들은 앞으로 한국에서 작품을 팔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저희에게 권리를 부여합니다. 원할한 협상을 위해 한국에 소개된 적 없는 작가만 접촉합니다. 핀즐을 통해 한국에 알려지기를 바랄만한 작가들이죠. 우리는 그림을 얻고 그들은 홍보 창구를 얻는 윈윈 계약이 되고 있습니다." 서로 얻는 게 있으니 대가 수수 없이 계약이 되고 있다는 게 진 대표 설명이다.

핀즐이 진행한 작품

주로 ‘비핸스’(behance·전세계 미술가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사이트) 사이트에서 미국 등 해외 괜찮은 작가를 물색한다. 맞는 작가가 나타나면 해당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팔로워가 몇 명인지를 본다. 팔로워 수를 통해 대중적 인기가 확인되면, 해당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한국에서 미술 작품을 유통하는 회사인데 함께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70~80% 정도가 응한다고 한다.

진 대표는 "스케줄이 안맞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작가가 협의에 응한다"고 했다. 이후 미국, 유럽 등 지역 별로 섭외한 작가가 3~4명 정도 쌓이면, 직접 해당 지역에 건너가서 한꺼번에 인터뷰를 하고 작품을 받아 온다.

-작품 들여오는 게 번거롭지 않나요.
"태블릿PC 등을 통해 디지털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대부분이에요. 고해상도 원본 파일 받아오는 거라 간편합니다. 유화 작가 작품의 경우 스캔을 떠서 그 파일을 가져옵니다. 이후 인쇄해서 독자들에게 보냅니다."

해외 아티스트와 인터뷰

-애써 작가를 섭외했으니 그 작가의 여러 그림으로 여러 달 활용하면 좋겠네요.
"아뇨. 매달 새 작가를 소개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요. 그래야 고객들이 매달 새로운 기분을 낼 수 있습니다. 작가를 선정할 때는 강약을 고려합니다. 이달 화려한 그림을 보냈다면 다음달엔 차분한 그림을 소개하는 식이죠. 서비스 초반 두 달 연속 차분한 그림을 보낸 적이 있는데 아쉽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그때부턴 전달과 대비되는 그림을 보내고 있어요. 계속 고객 피드백을 받습니다. 아직까진 핀즐의 일방적인 큐레이션으로 작품이 제공되는 상황이라 독자들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이 제공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사후적이나마 피드백에 신경을 많이 쓰고, 가급적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림 소재로 한 328가지 굿즈로 확장

-작가 후속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작품 판매와 마케팅을 위한 에이전시를 설립해서 전속 계약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해외 아티스트를 전문으로 한 에이전시는 국내에선 아직 저희가 유일합니다. 에이전시가 관리하는 작가 풀(pool)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매달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는 게 좋습니다. 현재 전속계약을 한 작가는 10명 입니다."

작품을 활용한 휴대폰 케이스

에이전시 소속이 된 작가들의 제품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현재 400여 점 작품을 확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좋은 그림을 골라 낱장 판매한다. 낱장 그림은 소재를 다양화했다. 유리나 아크릴 같은 고급 소재에 디지털 프린팅을 한 형태도 있다. 습기가 많은 욕실이나 주방 같은 곳에도 걸 수 있다. "고해상도 원본 파일이 없으면 선명한 작품으로 프린트해서 거는 게 불가능합니다. 원본 파일은 작가와 저희만 갖고 있어서, 다른 제3자가 복제할 위험은 없습니다."

이런 낱장 판매와 정기구독(https://bit.ly/2R2t9My)을 합쳐서 2017년 9월 서비스 시작 후 지금까지 총 2만부 정도 그림이 나갔다.

또 작품을 프린트한 휴대폰 케이스, 타일 등 328가지 굿즈를 온라인샵(https://bit.ly/39z4EwD)에서 판매하고 있다. 패션회사와 제휴해서 콜라보 제품 개발도 하고 있다. 곧 그림을 입힌 양말을 내놓을 계획이다. 원하는 기업들에게 아트 라이선스 제공도 하고 있다.

다양한 실적이 만들어지고 있다. 와디즈 크라우드펀딩 1억원을 달성했고, 현대홈쇼핑에 진출했다. 국제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상도 받았다. 수상을 계기로 한국 뿐 아니라 한국 밖에서 그림과 굿즈를 판매하는 것도 작가들과 협의를 해나가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 소재 파트너와 동남아 지역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수출이 성사되면 회사 성장이 한 단계 올라설 걸로 기대합니다."

핀즐과 협업을 진행한 해외 작가들

◇신혼집 인테리어 하다 사업 구상

어려서부터 창업을 꿈꿨다. "아버지와 형이 모두 오너쉐프세요. 사업 하는 과정을 쭉 보고 자랐습니다. 어릴 때 장래희망이 항상 사업가였죠." 대학 때 첫 창업에 도전했다. 학교(한양대 경영학과)를 잠시 쉬고,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2500만원을 들여 카페를 차렸다. 인근에 여고가 3곳 있는 나름 명당이었다. 자신 있었다. 그런데 1년만에 폐업했다.

"학생 등하교 시간이 카페 영업 시간과 맞지 않았어요. 학생들이 카페 문 열기 전 등교해서, 카페 문 닫고 나니 하교하는 거에요. 등하교 시간에 카페를 가장 많이 찾는데 그 시간에 카페 문이 닫혀 있었던 거죠. 장사가 잘 될리 없었습니다. 등하교 시간에 맞춰 빨리 열고 늦게 닫아야 했어요. 하지만 당시는 대학생 신분이라 그 정도 절박함이 없었나 봐요. 주말에는 미어터지듯 손님이 몰렸지만, 결국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습니다."

2010년 대학 졸업 후 신생 스포츠마케팅 회사 ‘브리온’의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이곳에서 스포츠와 관련된 각종 신사업 개발을 담당했다. 온라인 쇼핑 등 여러 일을 경험했다. "초기 멤버 자격으로 지분도 받은 상태였어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2015년 결혼을 했다. 신혼집 인테리어를 손수 하던 중 그림에서 난관을 만났다. "그림을 꼭 걸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는 거에요. 싼건 별로고, 좋은건 엄청 비쌌죠. 그때 ‘좋은 그림으로 계속 바꿔 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 길로 핀즐을 차렸다. 한국은 물론 외국에도 없는 서비스라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밀어붙여 여기까지 왔다.

핀즐이 진행한 작품

-창업 전 경험으로 뭘 배웠나요.
"책임감이요. 카페 화장실이 막히면 사장이 뚫어야 합니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은 사장이 직접 해야 하는 거죠. 사장이 손놓으면 아무도 안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지만 회사가 커질수록 잊기 쉽고 중요한 교훈인 것 같아요."

◇미술계의 넷플릭스 꿈

정기 구독자 중 사무실, 병원, 카페 등의 비중은 20%에 그친다. 80%가 개인 고객이다. 그림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림을 즐기고 싶지만 괜찮은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슷하게 평범한 눈을 가진 진 대표가 골라주는 그림에 열광한다. "제 눈에 좋은 그림이 고객들 눈에도 좋나 봐요."

-시장 규모를 어느 정도로 보고 있나요.
"우리나라 연간 작품시장 규모가 4800억원 정도 되는데 그나마 매년 줄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그림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건 아녜요. 한편에서 미술 복제품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시장이 연간 14조원 정도 되는데 그중 복제품 시장이 7000억원 정도 돼요. 그림이 재테크 관점의 소유의 대상에서 소비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는 겁니다. 진정 그림이 있는 삶이죠. 삶의 질은 내가 속한 공간과 시간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서 결정됩니다. 그 관련 시장에서 선두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핀즐의 작품이 걸려있는 모습

-앞으로 계획은요.
"미술계의 넷플릭스가 되고 싶어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내 공간을 휴대폰 카메라로 비추면 자동으로 내 취향을 파악해서 맞는 그림과 아트 굿즈를 추천하고 보내주는 거죠. 그림이나 굿즈가 내 집에 있으면 어떻게 보일지 시뮬레이션해서 보여 줍니다. 집에서 영화를 보듯 편하게 다양한 미술 작품을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들 일상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사업 초기 양적 성장이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사업 초반 속도감이 있어야 빠르게 목표에 도달하면서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 멤버들은 그 이해가 부족했어요. 좋은 작가를 찾아 좋은 콘텐츠 공급하는 걸로 충분하다 생각한거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외연에 좀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어요. 제가 그랬다면 매출과 투자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거에요. 마케팅에 좀더 신경을 쓰세요. 저도 이제부터는 직원 더 뽑아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워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