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 국제부장

'조국 사태'부터 시작된 이 정권 사람들의 뻔뻔함에 질릴 대로 질렸다. 급기야 이젠 5년 전 유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의 금품 수수 사건까지 무죄로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뻔뻔함에 집요함까지 더해진 듯하다.

한 전 총리는 자신에게 징역 2년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 직후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선 무죄"라고 했다. 수감 직전에도 오른손에 성경, 왼손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꽃을 들고 구치소 앞에 나타나 "결백하다"고 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한 총리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최근의 판결 뒤집기 시도는 그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정말 그는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인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취재했던 나는 지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거는 많지만 잊은 분들이 있는 것 같아 몇 대목만 언급한다. 그에 대한 수사는 '5만달러 뇌물 사건'이 시작이었다. 2006년 인사 청탁 명목으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았다고 검찰이 2009년 12월 기소한 사건이다. 곽씨 진술이 흔들리면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재판에선 의미 있는 증언이 공개됐다. "2009년 6월 한 전 총리에게 1000만원(100만원권 수표 10장)을 줬다"는 곽씨 진술이었다. 5만달러와 별개의 돈으로, 검찰 수사 착수 6개월 전에 줬다는 것이다.

이 사안은 대가성이 흐릿하고 본안과 관련 없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다만 재판에서 이 수표 중 3장이 한 전 총리 남동생 통장에 입금된 사실이 공개됐다. 한 전 총리는 첫 재판 때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대체 이 돈은 뭔가?

이 사건 재판 중에 시작된 게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사건'이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건설업자 한만호씨로부터 당내 경선 자금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9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그 돈 가운데 수표 1억원이 한 전 총리 여동생 전세금으로 쓰였다. 한 전 총리가 곽씨와 한씨로부터 받은 수표가 각각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흘러갔다. 이걸 우연이라 할 수 있나. 더구나 이는 당사자들이 관련 내용을 먼저 털어놓은 후 드러난 것이다.

최근 여권은 한씨가 감옥에서 쓴 '비망록'을 근거로 한 전 총리 혐의가 조작됐다고 한다. 그가 검찰의 회유로 돈을 줬다고 허위 진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비망록은 한 전 총리 재판 과정에 검찰이 먼저 제출해 사실무근으로 결론났다. 한씨는 나중에 위증 혐의로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그래도 의심이 든다면 이 대목을 보면 된다. 한씨는 검찰이 이 수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다른 사건으로 수감돼 있었다. 사업 실패로 돈에 쪼들리던 그는 2009년 6월 구치소로 면회 온 모친에게 "내가 (한 전 총리 측에) 3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수감시설에서의 면회는 녹화·녹취하게 돼 있고, 검찰은 그 내용을 법원에 증거로 냈다. 주지도 않은 돈을 어떻게 돌려달라고 할 수 있나. 더구나 그가 이 말을 한 시점은 검찰이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착수하기 10개월 전이다. 모친에게 없는 말을 지어낼 이유도 없고, 검찰 눈치를 봐야 할 상황도 아니었다.

이런 증거가 있는데도 여권이 판결 뒤집기를 시도하는 건 뻔뻔함의 극치다. 총선에서 압승했다고 사실까지 바꿀 순 없는 법이다. 한 전 총리는 최근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명은 자유지만 부탁이 하나 있다. 입장 표명할 때 제발 성경과 백합은 들고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