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부터 20년 넘게 지속된 공인인증서의 독점적 지위가 사라지면서 인증 시장에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시장을 선점하려는 IT(정보통신) 기업과 핀테크 업체가 앞다퉈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기존 공인인증서를 대폭 개선하거나 주요 금융사별로 자체 인증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인증 수단을 골라 쓸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각종 인증서 난립으로 오히려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이트마다 쓰이는 인증서가 제각각이라 여러 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증 시장에 도전장 내미는 IT·핀테크 업계

국회는 지난달 20일 공인인증서의 독점적 지위를 폐지하는 내용의 전자서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 공인인증서를 못 쓰게 된 것은 아니지만, '공인'이라는 완장을 떼고 여러 인증 수단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IT 업계에서는 본인 인증이 각종 인터넷 업무의 첫 관문인 만큼, 이 시장을 장악하면 막대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수단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건 이동통신 3사가 운영하는 '패스(PASS)' 앱이다. 이미 모바일 시장에서는 대세에 가까운 서비스다. 현재 3000만명 가까운 이용자를 확보했다. 스마트폰 가입자 수(6000만명)를 고려하면 전 국민이 이 서비스의 잠재 고객인 셈이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뒷배로 둔 카카오페이 인증도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현재 약 100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카카오톡과 연계해 별도 앱을 설치할 필요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네이버 역시 인증서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네이버는 약 2만5000여개 사이트에서 별도 회원 가입 없이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네이버 인증서를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 서비스와 연계해 이중 보안 장치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핀테크 업체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 앱을 통해 본인 인증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현재 고객이 1100만명에 달한다.

독자 인증 수단 구축하는 금융권

금융결제원은 소비자 편의성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존 공인인증서를 대폭 뜯어고친 신(新)인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최대 강점인 4000만명에 달하는 이용자가 이탈하지 않도록 새로 만들지 않고 갱신만 하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은행연합회와 은행들은 지난 2018년 만든 은행권 공동 인증 서비스인 '뱅크사인'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 번 발급하면 타행 인증서 등록 과정 없이 여러 은행에서 쓸 수 있다.

금융사마다 자체 인증서를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외부 인증서 이용 시 내야 할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는 등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은 비밀번호 6자리로 거래할 수 있는 KB모바일인증서를 내놓아 이미 36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IBK기업은행도 'IBK모바일인증서'를 구축했고, 고객 500만명이 활용 중이다. 하나은행도 조만간 독자 인증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인증서가 주로 쓰이는 금융권에서 저마다 독자 인증서를 내놓을 경우, 인증서 경쟁은 의외로 '찻잔 속 태풍'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소비자들은 '공인인증서'라는 낡은 기술의 독점에서 벗어난다는 걸 반기지만, 인증서 난립에 따른 불편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전에는 공인인증서 하나면 어느 사이트에서든 업무를 볼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사이트마다 사용 가능한 인증서가 제각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공공기관에서 어떤 인증서를 받아주느냐도 시장 경쟁에서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다양한 인증 수단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범용성을 확보할 것인지가 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