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칼 아이컨 등 '투자의 달인'과 정반대로 투자한 개미 투자자들이 최근 이어지고 있는 폭등장 속에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대가들이 버렸던 항공·은행 관련 종목을 저가에 쓸어담으며 투자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금을 올인하는 '묻지 마'식 투자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핏, 아이컨이 틀렸다

버핏은 올 상반기 별다른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장기 투자를 선호하는 버핏은 오히려 손실이 예상되는 종목들을 내다팔기 시작했다. 버핏이 가장 먼저 버린 '패(牌)'는 항공주였다. 그는 지난달 2일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델타·아메리칸·유나이티드·사우스웨스트 등 미국 4대 항공주를 전량 매도했다고 밝히며 "3~4년 후에도 사람들이 예전처럼 비행기를 많이 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주 뒤엔 골드만삭스·US뱅코프·JP모건체이스 등 은행주를 대거 처분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 골드만삭스에 50억달러(약 6조원)의 거액을 투자했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기업 사냥꾼'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 역시 과감한 손절매에 나섰다. 그는 지난달 말 렌터카 업체 허츠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자신이 보유한 허츠 지분 30%를 주당 74센트의 헐값에 전량 매도했다. 아이컨이 입은 손실은 약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가들이 버린 카드를 주워 담은 건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대거 뛰어들어 이 주식들을 사들인 것이다. 현재까지 투자 성적표만 보면 개미의 완승이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급격히 높아지며 항공·은행주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5월 초 이후 델타항공은 31.17%, 유나이티드항공은 49.2% 주가가 급등했다. 골드만삭스(20.1%), JP모건체이스(13.7%) 등 은행주 역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허츠는 개인 투자자가 몰리면서 지난 8일 주가가 5.5달러까지 치솟았다. 10일 종가는 2.5달러를 기록했다.

◇버핏이 틀린 건 나이 들었기 때문?

버핏과 반대로 투자한 것은 비단 미국 개미뿐만이 아니다. 국내 증시 연저점이었던 3월 19일 이후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도 항공주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여갔다. 연저점 이후 11일까지 개미들은 대한항공 주식 1360억원어치를 쓸어담았고, 35.1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아시아나항공(36.88%), 티웨이항공(39.93%) 등 다른 항공주 역시 주가가 크게 올랐다. 은행주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는 KB금융 2976억원, 신한지주 2052억원, 하나금융지주 1661억원, 우리금융지주 233억원을 사들였다. 이 은행주들은 주가가 25~36%가량 뛰었다.

버핏의 연이은 투자 실패는 월가 밖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5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버핏은 항공주를 계속 보유했어야 한다"며 "오늘 지붕을 뚫었기(급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셔 인베스트먼트의 설립자인 켄 피셔도 최근 인도의 한 경제 방송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버핏의 투자 실패를 지적했다. 피셔는 "위대한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예리함을 잃어버린다"며 "버핏이 감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나이의 사람은 위기에서 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1930년생인 버핏의 나이는 90세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버핏의 판단이 틀렸다고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증시 급등은 2000년대 닷컴버블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말 인터넷 붐이 일자 개미 투자자들은 막대한 투자금을 관련 업체들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거품이 꺼지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어야 했다. 테리 샌드벤 US뱅크 자산운용 수석 전략가는 "우리 손엔 아직 어떠한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며 "행복한 날이 다시 왔다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