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에 열린 ‘와우: 라이브 콘서트’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진솔.

지난해 4월,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공연 무대는 여느 클래식 공연과 다를 게 없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고, 한가운데 지휘자 단상이 있었다. 클래식 공연이라고 하기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남자 친구의 손을 끌고 온 여자보다 여자 친구 손을 끌고 온 남자가 많았다는 것. 그리고 공연장에 처음 와본 듯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과,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복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가 시작할 때 나오는 음악 ‘Legends of Azeroth’가 연주됐다. 공연의 모든 곡은 와우의 삽입곡이었다.

이날 공연은 최고 15만원짜리 R석을 포함해 전석 매진. 공연에 다녀온 와우 사용자들은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손뼉을 쳤다" "매일 컴퓨터에서 듣던 게임 음악을 오케스트라 라이브로 들으니 소름이 끼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건 무대 한군데서 단발머리를 날리며 지휘봉을 잡은 진솔(33). ▲아르티제·말러리안 예술감독 ▲대구MBC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한국영재예술교육원 지휘자 ▲서울시학생필오케스트라 지휘자 등으로 활동했고, 2017년 게임 음악을 연주하는 플랫폼 '플래직'을 창업했다.

진솔을 만나 "게임을 하냐"고 묻자 그는 손가락을 꼽으며 대답했다. "한게임 테트리스부터 시작해서 스타크래프트, 포트리스, 크레이지 아케이드, 바람의 나라, 리니지, 라그나로크, 포카튼 사가, 파이널 판타지, 영웅전설, 창세기전…." 손가락이 모자랐다.

―왜 게임 음악을 지휘하나.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많이 해서 게임 음악이 상당히 익숙하다. 음악 일을 하다 보니까 이 곡들이 어떻게 연주되는지 궁금해졌다. 국내 게임 업체에서 게임 음악을 다 해외 오케스트라에 가서 녹음해 오는 걸 알았다. 이걸 국내로 돌릴 방법이 무엇인지 궁리하다가 아예 게임 음악을 연주하는 회사를 차렸다."

―플래직은 어떤 회사인가?

"게임 회사 의뢰를 받아 게임 음악을 녹음하거나 실연(實演)을 하기도 하고 편곡도 한다. (와우, 스타크래프트를 내놓은) '블리자드'와는 3년간 지식재산권 계약을 맺었다. 플래직이 블리자드의 게임 음악을 편곡, 공연할 수 있고 게임 영상이나 그림을 공연에 이용할 수도 있다."

지난해 8월 ‘스타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 때 진솔이 지휘하는 뒷모습.

―단원들도 게이머인가.

"남성 단원들은 아주 신이 났다. 그에 비해 여성 단원들은 어릴 때부터 악기 말고는 접한 게 없어서 게임을 잘 모르더라. 이게 내가 플래직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다. 음악 전공자는 대부분 어릴 때 진로를 정해서 그것만 하도록 훈련받는다. 그것도 도제식으로. 그래서 훈련이 끝나는 20대 초·중반부터 혼란스러워한다. 어릴 때부터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다른 걸 경험할 여지를 주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게임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사이가 매우 안 좋았고, 학교에선 왕따를 당했다. 집에 있기 싫었고, 학교도 안 갔다. 마음 둘 곳이 PC방이었다. PC방이 초등학교 때부터 워낙 인기를 끌었고, 가격도 싼 편이었다."

작곡과 교수인 아버지와 성악과 교수인 어머니를 뒀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를 나와 독일 만하임 국립 음대로 유학을 다녀온 이력이다. '음악계 금수저'란 단어부터 떠올랐다. 일찌감치 부모의 음악 교육을 받고 치열한 입시 준비를 거친 음악 엘리트가 아닐까. 게임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스타트업 플래직이나,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함께 구스타프 말러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말러리안은 음악계 금수저의 여유와 자신감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음악 엘리트의 필수 격인 예중·예고를 다니지 않았다.

―왜 예중·예고를 다니지 않았나.

"금수저란 말 많이 들었다. 음악 전공하는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진로를 정하고 부모의 지원과 관리를 받는다. 부모와 자녀의 협업으로 음악을 한다. 나는 그런 협업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든 가정엔 다 저마다 사정이 있다. 가정사를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부모님은 당신의 음악 활동이나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는 보모 할머니한테 맡겨지다시피 했고, 여덟 살 때부터 그분도 안 계셨다. 일반적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환경과 많이 달랐다. 부모님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고,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인 방황이 시작됐다. 학교를 안 가고, 집을 나가기도 했다."

―집에서 받은 음악 교육은.

"서너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아무래도 부모님이 음악을 하시다 보니 어릴 때부터 음악사나 이론 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중학교 다닐 무렵부터 음악 레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수업에 호흥을 안 했고, 선생님은 계속 그만뒀다. 게다가 부모님도 내가 음악 전공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돈은 많이 드는데 나중에 그만한 보상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진솔은 “지휘는 나의 에너지를 연주자들에게 주는 것이다. 내 에너지를 받은 연주자들이 그걸 다시 객석으로 보낸다”고 했다.

―입시 준비는 어떻게 했나?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가지 않았다. 의상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게임도 하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스물한 살 때 오케스트라 공연 영상을 봤다. 그 영상은 매번 뒷모습만 보이던 지휘자의 앞모습을 보여줬다. 그냥 지휘봉을 휘젓는 게 게 아니라 자신이 소화한 음악을 단원들에게 내보내면서 그들과 소통하고 배려를 하는 모습을 봤다. '지휘자가 하는 일이 이거였단 말이야?'란 생각이 들자 지휘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때도 집을 나와서 살았는데, 한예종 지휘과 시험을 보려고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여자는 지휘자가 되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한 달간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면서 부모님도 모르게 한예종 지휘과를 지원했다. 내 의지대로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 달 준비하고 합격이라니.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나 자신은 너무 하찮은 존재이고, 어른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휘는 공부로 마치려 했고, 감히 지휘자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사귀던 친구를 따라 장학금을 받겠다고 수업에 출석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수업을 들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난생처음 모범생이 됐고, 교수들도 나를 인정하고 좋아했다. 어른들이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한 게 아니구나, 내가 노력하면 바뀔 수 있구나, 깨달았다. 그때부터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 다니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다른 친구들의 환경에 대한 부러움이나 아쉬움은 없나.

"만약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음악 입시 교육을 받고, 부모님과 협업했다면 지금과 같은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부모님의 제자들은 (부모님의) 말을 잘 들었지만 자식인 나는 부모님과 엇나갔고 사이가 멀어졌다. 언제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 바로 서고 싶었다. 창업하고 오케스트라 만든 것도 혼자 바로 서기 위해서다."

―지휘자가 된 지금, 부모님과 잘 지내나.

"예전처럼 나쁘진 않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게임 음악을 지휘한다고 했을 때 별로 맘에 안 들어 하시는 것 같았는데, 이게 호응을 얻자 아무 말씀 안 하신다. 세상이 변했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20년 전 PC방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쥐었던 손으로 지금은 지휘봉을 휘두른다. 100명이 넘는 단원이 그의 지휘봉을 쳐다보고, 그가 지휘하는 음악은 2020년의 PC방에서 울려 퍼진다. 진솔도, 세상도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