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그는 분명 좋은 아버지일 것이다. 고3인 아들과 코인 노래방에 가서 함께 노래 부르며 노는 아버지가 얼마나 흔할까. 그는 성실한 가장일 것이다. 그의 열흘치 동선을 보면 거의 매일 '집→택시 운행→집→택시 운행'을 반복하고 있다. 점심·저녁 식사는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서 했다. 그의 생활은 고단해 보인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토·일요일에도 택시를 몰았고 점심·저녁 시간엔 뷔페식당으로 갔다. 그는 돌 잔치 프리랜서 사진사로도 일하고 있었다. 인천 미추홀구 24번 확진자인 택시기사(49) 이야기다.

그가 아들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아들과 함께 갔던 코인 노래방이 문제였다. 코로나에 감염된 학원 강사가 수강생들을 감염시켰고, 감염된 수강생 중 한 명이 코인 노래방을 이용했다. 그가 아들과 함께 그 노래방을 들렀다. 노래를 부르며 노는 동안 그도, 아들도 코로나에 감염됐다. 그로부터 비롯된 환자도 많았다. 뷔페식당에서 돌잔치를 한 가족, 그 가족의 가족, 직장 동료들이 줄줄이 감염됐다. 확인된 추가 감염자만 19명에 달했다. 관련 기사 댓글엔 그에 대한 야유와 비난이 넘쳐났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야속하게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때리고 있다. 최근의 수도권 집단감염 사례를 보면 '투잡(two job)'을 뛰는 일용직 확진자가 유난히 많다. 지난달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자 중에는 콜센터 근무자가 많았다. 코로나로 일감이 늘어난 물류센터에서 심야 시간대나 주말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한 사람들이었다. 부천시의 대형 콜센터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은 토·일요일인 지난달 23, 24일 쿠팡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코로나에 감염됐다. 또 다른 콜센터 직원 40대 여성도 이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감염됐다. 그는 지난달 26일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사람은 전수 검사 대상'이라는 사실을 통보받고도 콜센터로 출근했다. 그날 오후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받고 다시 콜센터로 돌아가서 일했다. 그에게 물류센터 일은 아르바이트였지만 콜센터 일자리는 생계의 밥줄이었다. 누군가에겐 밥벌이가 처절한 법이다. 전수 검사 대상이라는 말만 듣고 자가 격리를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인생들이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사에서 "우리는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대와 협력의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며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우리의 방역 방식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 건 아닌가. 방역은 만능의 칼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방역이라는 명분으로 대인(對人) 접촉 금지령까지 내렸다. 어길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최고 2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위협도 뒤따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의 생계란 일말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감염보다 더 두려운 게 밥벌이일 수도 있다. 개인의 기본권을 행정 조치로 이렇게까지 침범해도 되는 것인가. 한국의 방역은 전체주의의 그늘을 얼핏 드러내 보였다.

확진자를 함부로 욕하지 말아야 한다. 힘겨운 생계의 전선에서 아등바등 살아보려다 감염된 이들이 수두룩하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생계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에게 방역이란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아야 한다. 최근 저소득층, 일용직 투잡족 집단감염 사례가 많이 나오는 현실을 감안한 대응을 해야 한다. 취약 사업장군(群)을 빨리 파악해 근무 환경에 대한 사전 조사, 근무자들에 대한 지원책을 병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