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미국의 분단을 가속한게 아니다. 코로나19는 이미 국가로서 망가져 있던 미국을 세계에 노출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은 미국에서 백인 경관의 흑인 폭행·사망 사건을 두고 전국에 시위가 격화된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코로나 19는 인종차별·빈부격차라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재부각시킨 재료일 뿐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는 빈부·인종 차이가 생존 가능성의 차이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조사회사 APM 리서치랩에 따르면, 코로나19에 의한 흑인 사망률은 백인의 2.4배에 이른다. 저소득층은 당장 삶을 걱정해야 하지만 자본시장에는 돈이 넘쳐난다. 미 나스닥은 이달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 정부가 사상 최대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6조달러(72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쏟아부은 덕택이다.

물론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일부 흑인의 약탈·폭력행위는 용납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빈부격차 확대가 사회갈등과 포퓰리즘 정치를 증폭시켰다는 주장은 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끊이지 않는다. 미국의 현역 투자자 가운데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 한 명인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업자 겸 회장조차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빈부격차가 포퓰리즘을 낳았다”며 “왜곡된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다.

위키피디아 에스테르 뒤플로 MIT 교수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다양한 시각을 얻기 위해 작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 MIT 교수를 이메일 인터뷰했다. 그는 빈곤·격차문제 해결에 대한 실증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국가의 성장과 구성원의 행복을 GDP 수치 등으로만 판단하는 시기는 이미 끝났다고 말한다. 결국 경제 전체를 향상시키려면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 즉 저소득층을 빈곤에서 탈출시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뒤플로 교수의 주장은 작년 미국서 공동 출간했고 지난달 국내에도 번역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에 잘 설명돼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Hard Times)’에서 따 왔다. 가진 자와 사회에서 점점 더 소외되는 못가진 자의 대립이 고조되고, 그 와중에 어떤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세계 말이다. 지금 상황을 디킨스 소설에 빗대는 것은 지나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뒤플로 교수의 말에 한번쯤 귀 기울여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뒤플로 교수는 2019년 역대 최연소(만 46세)이자 여성으로는 두번째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파리 고등사범학교 졸업 뒤 1999년 MIT 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로 지금까지MIT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2년 파리에서 소아과 의사인 어머니와 수학 교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의 인도주의 의료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이 때의 경험은 그가 경제학자로서 저소득 국가의 가난 문제를 연구하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노벨 경제학상의 최연소 수상자이자 두번째 여성 수상자다. 왜 그렇게 여성이 적었을까. 노벨상을 받고 어떤 느낌이었나.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적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경제학 분야에 여성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자가 연구하는 것들의 성격이 최근 바뀌고 있는 것처럼, 이런 상황도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노벨상을 받고 나서, 경제학 분야에서도 여성이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기뻤다. 나의 수상이 많은 여성들이 자기 일을 계속 해 나갈 수 있게 하고 남성이 여성을 더 존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여성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롤모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쁘고 영광이겠다."

-코로나19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고 이것이 사회적 갈등과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
"불평등은 대부분 부유한 국가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미 부자인 사람들이 더 많이 부유해졌을 때,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더 분노하게 되고 누군가를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고 한다.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는데, 코로나 사태가 이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

-지금 미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개발에 밀려난 사람들, 폭증하는 불평등,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정부, 극도로 분열된 사회와 정치 등은 이제 부유한 나라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문제다. 내가 그동안 가난한 나라를 연구하며 경험했던 문제들은 미국 정치 담론의 최전선이자 핵심 주제와 매우 닮아 있다. 거대 테크기업들은 엄청나게 돈을 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지만 주식 시장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반면 과거에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조차 사는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악화된 경제 상황은 테크기업 부자들을 위해 저소득층과 흑인들이 희생됐다는 인식을 다시 부채질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증폭되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현재 상황이 우려되나.
"그렇다. 현재 상황이 특히 우려되는 이유는 이해를 위한 대화 여지가 거의 안보인다는 데 있다. 사람들 견해는 점점 더 '부족화(Tribalization)'되고 있다. 한 두가지 핵심적인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이민, 무역, 불평등, 조세, 정부의 역할 등 그밖의 여러 이슈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 차를 보인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재분배 정책을 향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돈을 써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재분배 강화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매우 긴급한 일이고, 또 제도 변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나친 재분배 정책은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데.
"잘못 받아들이면 내 얘기가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부유층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경제 성장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1960년대 이래 성장률을 살펴보면, 레이건이 촉발한 낮은 세율의 시대에 빠른 성장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이건의 조세 감면이나 클린턴의 최고세율 인상이나 부시의 세금 감면이나, 장기적 성장률에서 의미있는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다. 즉 재분배를 덜한다는 것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레이건과 대처 시절의 미국·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레이건·대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나.
"레이건과 대처에게 1970년대 말 슬럼프의 원인은 명확했다. 그들은 경제가 왼쪽으로 너무 기운게 문제라 여겼다. 미국은 1951~1963년까지 최고 한계 세율이 90%를 넘었고, 이후 낮아지긴 했지만 한동안 꽤 높았다. 그러다 레이건과 부시 시절에 최고세율이 이전의 70% 수준에서 30% 이하로 낮아졌다. 클린턴 시절에 조금 올라갔지만 그래도 40%였다. 레이건·클린턴 시대에는 낮은 세금과 함께 복지를 줄이는 쪽으로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부자 감세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근거가 희박한데도 말이다. 레이거노믹스는 '성장에는 불평등이라는 비용이 따른다'는 것을 인정했다. 기본 아이디어는 부유한 사람이 먼저 이득을 얻으면 차차 가난한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간다는 그 유명한 낙수효과 이론이었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이미 알려졌다."

-레이건 시절을 기점으로 미국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정책적 기반이 마련됐고 그 결과가 지금 코로나 이후 사회 갈등의 폭발로 연결됐다는 뜻인가.
"그렇게 단언하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1980년은 레이건이 당선된 해이자 미국에서 이전 50년간 하락세를 보이던 소득 상위 1%에 가는 몫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한 때다. 1928년엔 상위 1%가 미국 전체 소득의 24%를 가져갔는데, 1979년엔 그것이 3분의1로 줄었다. 그런다 2017년에는 다시 1929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1950~1960년대 초고소득자에게 적용됐던 매우 높은 세율의 핵심은 거부(巨富)를 등쳐먹자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거부의 존재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하는게 더 적합할 것이다. 즉 개인의 능력에 대해 그정도로까지 부의 차이를 당연시하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는 얘기다. 당시엔 초고소득자들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최고세율이 30% 아래로 떨어지면서, 천문학적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기업에나 그것을 받는 CEO에나 다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 나는 레이건·대처 혁명의 기저가 된 개인에 부여하는 천문학적인 '인센티브'가 초고소득자의 천문학적인 보수가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늘날 큰 논쟁의 이슈이며, 선진국에서 불평등의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선 미국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원인으로 이민자와 중국을 지목하고 이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의 경우 비난의 화살을 돌릴 다른 대상을 찾는 것이다. 사실 공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미국의 시장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시스템 말고 다른 비난거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거나, 성장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희생양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이민자와 자유무역이 자연스럽게 공격대상이 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대중에게 희생양을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 해결책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이민자와 중국이 원인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라.
"이민자 문제로 설명해 보겠다. 이민 문제에 대해 일부 미국인이 갖는 생각은 이렇다. 1. 세상에는 경제 여건이 훨씬 더 좋은 미국에 들어올 수만 있다면 자국에 있을 때보다 소득을 많이 올릴 것이 분명한 가난한 사람이 아주 많다. 2. 따라서 그들은 기회만 있다면 자국을 떠나 미국에 들어올 것이다. 3. 그렇게 들어온 이주민은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임금을 내리눌러 미국에 있던 사람 대부분의 경제 상황이 전보다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연구한 결과는 이렇다. 1. 자국을 벗어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도 아주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2. 저숙련 이주민이 노동시장에 많이 유입되더라도 그 나라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3. 오히려 이주와 관련된 진짜 문제는 미국의 경우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나 이주가 너무 적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노동시장은 숙련 수준에 따라 더 심하게 분리됐다. 이것이 소득·부·거주지역의 차이와 미국 내 이동의 축소로 이어졌고 사회불안을 야기시켰다. 이것은 미국의 시스템 문제이지 이주민 때문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저소득층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우리는 사회정책을 고안할 때 돈과 존엄 사이의 긴장관계를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우리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녀를 잘 교육시키도록 돕는 한 방법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비조건부 프로그램이, 자녀를 잘 교육시킬 의무를 지워 현금을 지급하는 조건부 프로그램보다 실제로 자녀 교육을 향상시키는데 더 효과적이었다.
현금 지급이 사람들이 일을 덜하게 만든다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 그 이유는 사람은 삶에서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런 열망을 갖고 있지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 때문에 이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추가적인 현금이 주어지면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새로운 일을 독려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연구결과에서 확인했다."

-개인의 의지와 동기가 중요한 것 아닌가. 정부가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세금 낭비 아닌가.
"우리가 목격한 변화의 매우 많은 부분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내린 정책적 선택의 결과다. 이를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정책은 강력하다. 정부는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할 수도, 해악을 끼칠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의 메시지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경제정책을 논할 때, 직관력 말고 현장을 기반으로 하자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누군가가 질문하면 그것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배운 지식과 사실처럼 보이는 지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코로나19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코로나19가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더 고민하게 하는 하나의 경종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암과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와의 전쟁은 하나의 큰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에 수천 번의 작은 승리가 필요할지 모른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많은, 아주 많은 좌절을 겪게 될 것이다. 가난, 기후변화, 알츠하이머 치료법을 찾기 위한 싸움과 마찬가지다.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더디겠지만 해결책은 반드시 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여러 측면을 연구하면서 결국 모두의 승리를 이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