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는 전후 최악(戰後最惡)이지만 일본에선 다시 한류(韓流)가 각광받고 있다.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쓴 영화 '기생충'에 이어 이번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7일 "한류 드라마 열풍이 재연되고 있다"는 기사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랑의 불시착'을 집중 분석했다. 이 신문은 소셜미디어에 "(드라마를) 다섯 번이나 봤어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숙 생활의 유일한 즐거움" 같은 찬사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주간지 슈칸아사히(週刊朝日) 최근호는 드라마 주인공 현빈을 표지 모델〈사진〉로 내세웠다. 이 잡지는 현빈에게 매료된 일본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사랑의 불시착'이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컬러 화보를 포함, 총 10쪽에 걸쳐 '지금 봐야 하는 한국 드라마 20 선(選)'을 특집으로도 게재했다.
저널리스트 나카지마 게이는 "드라마가 북한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것을 인기 이유로 꼽았다. 서울 특파원을 지낸 고미 요지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사랑의 불시착'을 본 뒤 "북한 말을 공부하고 있다"는 평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 밖에 방탄소년단의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7)'이 최근 오리콘 앨범 차트에서 마이클 잭슨에 버금가는 기록을 세우는 등 다시 한류가 거세지는 현상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한국이 거국적으로 드라마나 영화 등을 중요한 수출 산업으로서 길러 온 성과"라고 평했다.
최근의 한류가 새로운 차원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1990년대 영화 '장군의 아들'에 출연하기도 했던 시즈오카 현립대의 오쿠조노 히데키 교수는 "요즘 한류의 특징은 일본 팬들이 한국 작품을 일·한(日韓) 관계의 프레임에서 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 높은 한국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한다"고 했다. 오버린대 쓰카모토 소이치 교수도 "'82년생 김지영'같은 한국 문학이 줄줄이 번역돼 일본에서 읽힌다"며 "오락적 차원에 머물던 한류 열풍이 문학과 페미니즘 등에서도 수용되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