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교수로 지내온 20여년 동안 최고 순간을 꼽으라면 역시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이다. 특히 자기 주도 자율 학습 능력을 갖춘 학생을 발견하면 그 희열은 배가된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스스로 깨치는 학생들이다. 그 학생들은 오히려 나에게 스승이 된다. 매우 감사하다. 전생(前生)에 나라를 구했나 싶다.

그런데 지금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간(人間) 인재(人材)의 조건'과 '인공지능(AI)의 조건'은 서로 똑같다. 인공지능도 하나를 깨치면 열 가지를 스스로 발견한다. 인간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학습하고 탐험한다. 즉 인공지능도 '자기 주도의 자율 학습 기능'을 가진다는 얘기다.

데이터도 스스로 만드는 AI

인공지능 알고리즘 중에서 데이터를 이용해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 한다. 그런데 이 기계학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이름(Labeling)이나 설명(Text)을 붙여야 한다. 예를 들어 사진 데이터에 대상물 이름을 붙이거나 거기에 등장하는 대상물 행동을 파악하거나 예측하기 위한 설명문을 붙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인터넷에서 대중이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업체에서 알바생에게 돈을 주고 일일이 설명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이 작업도 인공지능 자체 능력으로 자동화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서 학습을 위한 데이터 생산을 스스로 한다. 데이터 생산에서도 인간이 배제되기 시작했다. 기존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변형, 이동, 회전, 확대하거나 다른 데이터와 융합하여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기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예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가상의 데이터를 만든다. 가상현실 기술과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서 컴퓨터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든다. 예를 들어 자율자동차 운전 인공지능의 경우, 사고 대처 학습을 할 때 실제로 자동차 사고를 내면서 할 수는 없다. 이 경우 완전한 가상 자동차 운행 환경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학습한다. 이제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스스로 생성해내고 이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인간 데이터 없는 학습'이 실현된다.

AI도 자기 주도 자율 학습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인공지능의 힘은 무엇보다도 학습(Learning) 능력에 있다. 학습의 속도와 분량과 정확성에서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더욱이 인공지능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반성한다. 학습하면서 수없이 반성하고 다시 고친다. 백만 번도 더 한다. 즉 기계학습의 결과물인 인공지능망과 그 가중치(Weight) 벡터를 계속 스스로 수정한다. 이를 '역전파 학습(逆傳播·Back Propagation Training)'이라 부른다. 반면에 인간은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과거를 고칠 수 없다. 원하지도 않는다. 인간과 차별되는 인공지능의 힘은 바로 이러한 학습 알고리즘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인공지능의 학습 알고리즘 자체도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기존 학습 결과를 재활용하는 '전이학습(Transfer Learning)' 알고리즘도 사용된다. 특정 분야에서 학습이 된 신경망 일부를 유사한 분야나 새로운 분야에서 재사용하는 학습 방법이다. 그래서 학습 시간과 비용 그리고 필요한 데이터를 줄인다. 사과 깎는 방법을 학습한 인공지능을 조금 변경하여 배를 깎는 인공지능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과와 배는 모양과 재질, 촉감 그리고 색깔이 다르다.

이렇게 한번 배운 이미지 판별 능력을 여러 곳에 재(再)응용한다.

구글은 전이학습을 이용해 당뇨성 망막병증을 진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발표했다. 그리고 스탠퍼드대는 전이학습으로 피부과 전문의 수준으로 정확하게 피부암을 진단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였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를 알면 열 가지를 깨닫는 인공지능이 된다. 결국 인공지능은 점점 인간의 손을 떠나 '자기 주도 자율 학습'의 세계에 진입하고 있다. 미래에는 학습 과정 자체의 설계도 인공지능이 하게 된다. 학습도 인공지능 스스로 주도한다.

미래 인공지능 기술의 조건

미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방향은 효율화, 복합화, 근접화, 가상화, 그리고 탈인간화로 대표된다. 사람과 같이 보고, 듣고, 말하고, 창작하고, 사유하며 동시에 자아를 가진 복합 인공지능이 개발된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인간 인체와 뇌에 더 가까이 설치된다. 먼 미래에는 인간의 뇌 속에 인공지능 컴퓨터와 데이터 센터가 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인공지능의 작업이 인간에 종속되지 않고 컴퓨터 안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가상화와 탈인간화를 통해서 ‘자기 주도’ 능력과 ‘자율 학습’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런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매년 급격히 증가하는 기계학습 논문 숫자가 말해준다. 국가 간 ‘인공지능 격차(AI Divide)’는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KAIST가 배출하고자 하는 우수한 ‘인간 인재’의 조건은 튼튼한 기초 지식, 창의력과 리더십을 기본으로 하고, 자기 주도 자율 학습 능력이 추가된다. 여기에 더해서 끈기, 열정, 집념과 더불어 높은 윤리 수준, 그리고 소통과 협업 능력이 요구된다. 미래 인공지능의 요구 조건도 완전히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