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11월3일의 대선 결과에 불복하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의 대선 불복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미 언론과 학계에서 지난 19일 폭스 뉴스 인터뷰를 계기로 증폭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선 결과에 승복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냥 '예스'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지난 대선(2016년)에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은 지난달 25일 "트럼프가 선거 결과를 수용할 것"이라면서도, "크게 이겨야 한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다가 구속 기소된 마이클 코언도 의회 증언에서 "그와 일한 경험에 비춰볼 때, 그가 2020년에 지면 평화적인 권력 교체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코로나 팬데믹과 대선, 미 주요 도시의 인권시위대 점거와 관련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트럼프의 '불복' 가능성 배제하려면, 바이든이 압승해야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대선에서 코로나 확산 등으로 우편 투표(mail-in)가 급증(2016년엔 전체의 약 4분의1)할 것으로 예상되자, 지난 달 22일 "역사상 최악의 부정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18년 중간선거가 끝난 뒤에도, 공화당이 미 하원을 내 준 것은 "잠재적으로 (우편 투표에 의한) 불법 투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탓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압승하지 않는 한, 대선 이후 미 정국이 지루한 법정 다툼과 헌정 질서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앰허스트 칼리지의 법학자인 로런스 더글러스는 "이는 미국 헌법이 '평화적 권력 이양'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고 뉴요커에 말했다.

◇트럼프가 '대선 불복'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
더글러스 교수와 워싱턴몬슬리, 워싱턴포스트, 폴리티코 등의 미 언론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1. '부재자·우편 투표에서 뒤집히는' 시나리오
트럼프가 직접 투표의 개표 결과만 갖고 바로 '승리'를 선언했지만, 이후 부재자·우편 투표의 집계 결과에서 뒤집히는 경우다. 지금도 미국 대선에서 각 주가 우편 투표를 최종 집계하기까지는 2,3일이 걸린다. 그러나 전체 투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올해 대선은 상황이 다르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34개 주에서 무려 9500만 명이 원하면 바로 우편 투표를 할 수 있다. 실제 투표율은 다르겠지만, 우편 투표 비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집계가 오래 걸리고 검표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직접 투표의 개표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
트럼프는 줄곧 우편 투표의 확대는 "투표권도 없는 수백만 명이 부정 투표를 하고, 외국 정부가 불법 투표용지를 발송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1,2차 대전 때도 문제없이 투표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를 핑계로 대며 우편투표를 확대해 선거 부정을 저지르려고 한다"는 트럼프의 6월22일 트윗.


2. '접전 끝에 트럼프가 지는' 시나리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경합지역인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컨신 3개 주에서 힐러리 클린턴에 겨우 7만7000표를 더 거두면서 3개주 선거인단 46표를 다 가져갔다. 올해 선거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는 개표 결과를 부정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앨 고어는 선거인단 25표가 걸린 플로리다주 유권자 투표에서 불과 537표 차이로 지자, 재검표를 요구했다. 플로리다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대선 결과가 바뀌는 상황이었다. 이 재검표 논란은 미 대법원이 5(보수파)대4로 조지 W 부시의 손을 들어줘 재검표를 중단시킬 때까지 한 달간 계속 됐다. 고어는 “더 이상 선거 위기를 확산하지 않는 게 내 의무”라며 “이제는 내가 물러날 때”라고 했다.

트럼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2016년 대선의 전체 유권자투표(popular vote)에선 힐러리 클린턴에 진 것(286만표 차)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투표권이 없는 수백만 명이 우편으로 불법 투표를 한 탓”이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3. 선거인단의 '배반' 시나리오
미국 대선은 전체 유권자투표 결과에 따라, 각 정당이나 주 의회가 정파에 따라 미리 선출한 선거인단이 12월14일 모여서 투표하는 '간접 투표'다. 따라서 각 주의 선거인은 주의 표심대로 투표해야 하지만, 종종 신의 없는(faithless) 투표를 한다.
실제로 2016년 미 대선에서 선거인단 수는 538명이었지만, 트럼프 지지 선거인은 304표, 클린턴 지지 선거인은 227표였다. 나머지 7표는 대선 후보도 아닌 정치인을 고의로 뽑았다. 접전 상황에선, 단 한 명의 선거인 '이탈'도 논란이 될 수 있다.

2016년 미 대선에서, 몇몇 민주당 선거인은 고의로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아닌,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을 선거인단 투표용지에 기입했다.

이밖에, 트럼프가 우편 투표의 ‘불법·사기’를 계속 주장하거나, 러시아와 같은 적대 국가의 선거 당일 주(州) 전력망·네트워크 해킹을 우려하면서 선거 직전에 투표일을 연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가 지고도, 백악관에서 머물면
선거에 진 트럼프가 권력이양 시점인 내년 1월20일 정오 이후 백악관을 떠나길 거부해도, 대통령의 실효적 권한 행사와는 무관하다.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 애버뉴 1600번지 백악관에서 통치해야 한다는 법률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선 불복'이 초래할 파장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공화당 의원들이나 법학자 중 일부는 "미국 제도상 신속하게 대선 결과를 둘러싼 혼란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한다. 보수파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5대4로 보수파가 우세한 연방 대법원을 이끌지만, 그 스스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법부의 신뢰성과 독립성을 무엇보다도 강조해 온 판사다. 미 군부가 트럼프의 정치 싸움에 말릴 가능성도 없다.

그러나 조지프 피시킨 텍사스대 법학자는 워싱턴몬슬리에 “트럼프는 선거 결과가 어떻든, 분명히 선거 사기가 있었고, 자신이 올바른 승리자라고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트럼프가 밀려나더라도 트럼프 골수지지자인 유권자의 30~35%는 선거 부정을 확신하게 된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며 경찰 폭력에 저항해 거리로 나온 수많은 시민들처럼, 이번엔 트럼프 지지자들이 ‘코로나 봉쇄’에 반대했을 때처럼 총기를 들고 대규모 거리 시위를 해 한동안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