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냄새…?"

소년이 잠에서 깬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가야 한다. 소녀가 동행한다. 비가 이들을 적신다. 풍경이 수채화로 변해간다. 최근 출간된 단편만화 '여름 안에서'는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연약한 소년이 사라진 애완 고양이를 찾으러 나섰다가 낯선 소녀를 만나게 돼 벌어지는 몽환의 두근거림을 보여준다. 성률(26) 작가는 "내 실제 기억이 반영된 성장통을 그리고 싶었고, 그 계절의 이미지와 가장 어울리는 수채화를 택했다"고 말했다. 청춘의 미열(微熱)과 청량함을 여름은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수채화 만화가 잇따른다. 계절감을 한껏 고양하는 풍경이 담겨있다. '여름 안에서'의 한 장면.

물기 많은 계절, 수채화 만화가 잇따르고 있다. 성장 만화가 드러내는 풋풋한 감각이 수채화와 만나 더욱 투명해진다. "물이 너무 맑아서 하늘이 바닷속으로 쏟아진 것 같아"라고 말하는 또 다른 단편만화 '파노라마' 속 주인공의 기분처럼, 맑은 채도가 바이러스로 흉흉해진 독자의 감성을 적신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물성도 한몫한다. 이를테면 디지털이 아니라 인화된 필름 사진의 분위기 같은 것이다. 성률 작가는 "작업 능률은 떨어지지만 종이에 직접 붓을 대 완성하는 손맛이 크다"며 "물감이 번지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의 오묘함을 매번 목격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름과 여름과 여름' '파차마마의 마법'의 한 장면.

그래서 수채화는 수(手)채화이기도 하다. 여행 수채화 만화 '파차마마의 마법'은 작가가 20대의 마지막 해에 남미 여행을 떠나 목적지마다 즉석에서 수채화로 스케치한 뒤 만화로 연출한 것이다. 갈라파고스, 와카치나 사막 등 이국의 풍경과 그곳을 지나며 커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담겨 있다. 웹툰으로 먼저 연재되다가 지난달 책으로 출간됐다. 쇼비(32) 작가는 "수채화의 장점은 그 스미는 색채로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는 점"이라며 "책 출간을 준비하며 웹툰에서 보여준 원래의 '쨍'한 느낌이 다소 줄더라도 독자의 눈이 덜 피곤하도록 채도를 낮춰 인쇄했다"고 말했다.

일련의 수채화 만화는 각각의 컷이 원화(原畵)다. 박냠(32) 작가는 본인의 첫 원화 전시 '여름과 여름과 여름'을 서울 상수동 '만화살롱 유어마나'에서 8월 2일까지 열고 있다. 실제 그림에 사용한 팔레트와 붓, 물감까지 함께 진열해 전시의 성격을 강조했다. 작가는 "웹툰을 먼저 시작했지만 2년 전 수채화 작업으로 돌아섰다"며 "컴퓨터 그림은 고되게 작업해도 실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허무함이 컸다"고 했다. A4 용지 크기 수채화 만화 한 컷을 완성하는 데 보통 8시간 정도가 걸린다. 길면 하루를 넘기기도 한다. 수정이 어려워 마음에 안 들면 아예 새로 그려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내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주로 10대나 20대 관람객이 많이 온다.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 풋풋함에 수채화가 가장 어울린다. 여름마다 전시할 계획이다." 뭉게구름, 웃자란 풀, 수박 아이스크림…. 여름의 이미지는 모두 물로 이뤄져 있다. 수채화가 여름의 것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