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소리를 이용해서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김기문 단장(포스텍 화학과 교수) 연구진은 “기존 통념과 달리 소리가 물리현상뿐만 아니라 화학반응까지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라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11일 발표했다.

◇소리로 분자 움직임 제어

물리학자들은 파장에 의한 물 움직임을 연구해왔지만, 물의 움직임이 화학반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드물었다. 파장이 긴 소리는 에너지가 작아 분자의 변화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물의 움직임에 따른 공기의 용해도 변화에 주목했다. 소리로 물결의 패턴을 제어하여 용해도를 조절한다면, 한 용액 내에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연구가 시작됐다.

연구진은 스피커 위에 실험용 배양접시를 올려둔 뒤, 소리가 접시 안의 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했다. 소리가 만들어낸 미세한 상하 진동으로 인해 접시 안에는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동심원 사이의 간격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좁아졌으며,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연구진은 지시약을 이용해 소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화학반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먼저 파란색이지만 산소와 반응하면 무색으로 바뀌는 염료를 접시에 담은 뒤, 스피커 위에 얹고 소리를 재생했다. 물결에서 움직이지 않는 부분은 파란색을 유지했지만, 소리에 의해 주기적인 상하운동을 하는 마루와 골(가장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은 산소와 반응하며 무색으로 바뀌었다. 공기와 접촉이 활발해 산소가 더 많이 용해되기 때문이다.

◇소리 틀자 산성도에 따라 색깔 달라져

또 산성도(pH)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약인 ‘BTB 용액’을 이용해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다. BTB 용액은 염기성에서는 파란색, 중성에서 녹색, 산성에서 노란색을 띠는 지시약이다. 연구진은 접시에 담긴 파란색 BTB 용액을 스피커 위에 놓고 소리를 들려주며 이산화탄소에 노출시켰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 용액이 산성으로 변하는데, 소리를 들려주자 용액 속에 파란색, 녹색, 노란색이 구획 별로 나뉘어 나타났다. 물결로 인해 기체의 용해도가 부분적으로 달라지며 산성, 중성, 염기성이 공존하는 용액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기문 단장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소리를 이용해 쥐의 움직임을 통제했듯이 연구진은 소리를 이용해 분자의 거동을 조절했다”며 “화학반응과 유체역학을 접목해 발견한 새로운 현상으로 소리를 이용한 다양한 화학반응 조절 등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