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삼성전자는 불패야." "플랫폼이 대세입니다. 네이버·카카오 상승세 못 보셨습니까."

20대 초반 청년들끼리 이런 치열한 토론을 벌인 곳은 주식 투자 동아리가 아니라 수도권의 한 공군 부대 생활관이었다. 격론을 벌이던 병사들은 각자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주가 흐름과 관련 뉴스를 확인해보곤 했다. 한 병사는 유명한 투자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 내용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지난달 말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주식 토론회'는 점호 준비 시간을 앞두고 끝났다.

이날 토론회를 주도한 손모 상병은 '병정개미'다. 투자금은 매달 받는 월급에서 나온다. 최근 병사 월급이 부쩍 올랐기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이다. 매달 20만원씩 투자했는데, 어느새 주식 계좌에 쌓인 돈이 200만원을 넘는다. 손 상병의 주력 종목은 반도체 산업.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 주식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선·후임 병사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몇 달 전에만 해도 주식 이야기를 꺼내면 별종 취급을 받았는데, 요즘은 "어느 종목이 좋으냐"고 물으면서 '스승' 대접을 해준다고 한다. 생활관을 같이 쓰는 동료 병사 10명 가운데 6명이 주식 투자 중이다.

◇동학개미만 있냐, 병정개미도 있다

군 내무반에도 주식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부대 밖에서 '동학개미'가 출현한 데 발맞춰 군부대에서는 '병정개미'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올해 1~6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주요 7개 증권 앱을 설치한 20대 남성은 44만9643명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26만8899명)의 1.7배 규모다. 20대 남성 상당수인 군인이 동참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수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육군 연모 상병도 '병정개미'로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했다. 입대 후 항공·방위산업에 관심이 생겼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좋은 투자 기회가 생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방산업체 록히드마틴, 항공사 보잉 등에 투자하고 있다. 매달 10만원 정도만 용돈으로 쓰고 나머지는 모두 주식 사는 데 쓰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분기보고서 같은 투자 자료를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면서 "군대 내에서도 주식을 공부하고 투자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군대 내에서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되면서 불이 붙었다. 최근까지 군 입대 이후에는 주식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상황이 못 됐다. 기껏해야 휴가 때 한두 번 사고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4월부터 일부 군부대에서, 올해 7월부터는 전체 군부대에서 일과 시간 후(오후 6~9시)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됐다. 스마트폰에 증권사 앱을 깔고 수시로 '언택트'로 투자하는 데 문제가 없게 된 것이다. 저녁 시간대에만 스마트폰을 쓸 수 있기 때문에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병사도 많다고 한다.

예컨대 미국 증시는 한국 시각 기준 밤 10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문을 연다.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저녁시간대에 매매 계획을 세워 '예약 매매' 주문을 건 뒤 휴대전화를 반납하는 식이다. 한 병사는 "한국 증시가 개장하는 낮 시간대에는 스마트폰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투자가 어렵다"고 했다.

월급도 과거에 비해 넉넉해졌다. 병장 월급은 지난 2016년에만 하더라도 19만7000원에 그쳤다. 올해는 54만900원이다. 정부는 오는 2025년 96만3000원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월급만으로도 충분히 주식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도 이런 흐름에 불을 붙였다. 외출이 어려워지며 월급을 쓸 일이 줄어든 것이다.

◇군 간부들 "주식 투자, 문제 삼을 순 없지만 투기적인 분위기 걱정"

온라인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는 현역 병사들이 '주린이(주식과 어린이의 합성어로, 주식 초보를 뜻하는 신조어)'를 자처하며 배움을 구하는 글이 곧잘 올라온다. 한 병사는 "시드(투자금)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투자해 부자가 되고 싶은 군인"이라며 종목 추천을 부탁했다. 유튜브에서도 병사들에게 "적금 이자에 만족하지 말고 그 돈으로 투자하라"고 조언하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병정개미 현상이 일부 '과열' 양상을 보이자 군 간부들 사이에는 걱정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군 생활 10년 차인 육군 김모 중사는 "야간 당직 근무 도중에 스마트폰을 몰래 쓰는 병사를 적발했더니 미국 주식을 들여다보고 있더라"며 "과거 일부 군 간부가 업무시간에 주식 투자를 해 문제가 됐었는데, 이제 병사들마저 그러니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육군 부대에서 일하는 최모 대위는 "병사들이 자기 돈과 휴식시간을 활용해 주식 투자하는 걸 문제 삼을 순 없다"면서도 "일부 병사가 '얼마 벌었다'고 자랑하는 등 일확천금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