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럭셔리 업계 최고 이슈 중 하나는 단연 쿠팡의 파페치(Farfetch) 인수다. 한국의 쿠팡이 세계 1위 글로벌 럭셔리 패션 플랫폼인 파페치까지 거머쥐면서 전 세계 패션 시장을 뒤흔들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지난 2007년 영국에서 세워진 파페치는 Far(멀리)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전세계 곳곳의 럭셔리 부티크를 연결한다는 개념부터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다 Fetch (Fetch·가져오다, 팔리다)라는 뜻대로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바로 앞에 가져다 준다는 걸 내세웠다.

당시만 해도 럭셔리 패션 업계에선 온라인 쇼핑 플랫폼 구축 초기 단계였고, 럭셔리 제품을 온라인에서 산다는 건 더욱 불가사의에 가까웠다. 직접 보지도 못한 물건을, 그것도 적지 않은 금액의 물건을 카드로 덜컹 사버리기엔 신용불량자로 향하는 지름길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필두로 자체 매장과 주요 백화점 등 공급망 관리가 철저한 프랑스 기업 브랜드를 제외하고 이탈리아 등지에선 수십년간 신뢰를 쌓아온 중소 부티크(매장) 등을 포함해 본사의 제품이 백화점은 물론 다양한 매장에서 판매된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명 패션 편집숍이나 직매입(직접매입) 방식의 매장에선, 그 특정 매장에 입고됐다는 것만으로도 브랜드의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실력있는 소규모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나 성장 가능성이 유망한 브랜드들이 자신을 알릴 또 다른 창구였다.

파페치는 전세계 백화점부터 다양한 매장, 또 온라인 매장까지 직접 온라인으로 연결해 소비자들에게 배달했다. 당시 국내에서도 해외 물건을 직구(직접 구입)하는 소비층이 꽃피기 시작할 때여서 파페치를 비롯한 비슷한 스타일의 패션 거래 플랫폼이 사세를 확장하고 나섰다. 국내에서 사는 것과 해외 매장에서 사는 것이 환율을 고려해도 가격차가 컸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구매 대행, 배송 대행 등의 아르바이트성 신종 직업까지 생겼을 정도다. 이러한 시기에 ‘검증된’ 제품을 가격 비교까지 해 보면서 싸게 살 수 있다는 건 소비자들에겐 희소식일 수 밖에.

또 기업 이름을 짓는 데 능한 것인지, 이 재간둥이 기업명은 ‘멀리 보내준다’는 직설적인 뜻 뿐만 아니라, fetch의 또다른 뜻인 ‘최신 유행’까지 내포하고 있으니 국내 매장에서 구하지 못하는 최신 유행 제품들을 파페치에서라면 해낼 수 있다는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자체 검수기관 등 복잡한 검증 과정을 거쳐 일명 ‘짝퉁’의 위험도 최소화 했다. 2021년엔 시가총액 30조원에 육박했으니 ‘감히’ 파페치를 이길 만한 적수는 보이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 당시 온라인 구매가 활발하고, 이후 보복소비가 급증하면서 파페치의 주가도 치솟았다. 까르띠에 등을 소유한 리치몬트 그룹 등이 투자했고, 구찌 등을 소유한 케어링 그룹과 미국을 대표하는 백화점 그룹 니먼 마커스 등이 제휴를 통해 신뢰를 높였다.

◇파페치 자체가 갖는 한계

하지만 기업이 몰락으로 향하는 대표적인 길, 바로 무리한 투자와 문어발식 확장 등 자신의 ‘본분’을 잊은 행보는 파페치의 명성을 급락하게 했다. 오프화이트 등을 소유했던 뉴가드 그룹을 2019년 인수하는 등 패션 기업부터 온라인 스니커즈 플랫폼 등을 지속적으로 인수했다.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를 구제하기 보다는 몸집만 키우는 건 기업의 존폐여부도 흔들 수 있는 문제다. 주주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수익성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체 매장이 없기 때문에 오프라인으로도 거대 기업을 일구겠다는 것이 창업자의 속내였는지는 몰라도 유통·관리가 폐쇄적인 명품 업계에서 신뢰의 하락은 곧 업계에서 추락으로 이어진다. 기업가치는 100분의 1로 떨어졌고 결국 쿠팡이 6500억원을 투자해 파페치를 품에 안았다.

싸고 다양한 물건들을 빠르게 집앞까지 배달해준다는 쿠팡의 명성은 그대로하고, 여기에 그동안 쿠팡이 부족했던 럭셔리 이미지까지 얹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해외 명품 그룹을 통째로 손에 넣지 않는 한 명품 브랜드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럭셔리 패션 플랫폼을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쿠팡의 파페치 인수 기사를 보다보면 ‘에루샤’ 제품도 총알 배송으로 받아볼수 있을까와 관련된 각종 전망 등을 내놓곤 한다. 럭셔리를 대표하는 제품군이 흔히 말하는 ‘에루샤’이기 때문에 파페치를 인수하면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제품도 쉽게 살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 번 이용을 해봤거나 적어도 홈페이지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파페치에서 취급하는 ‘에루샤’는 본사에서 공급하는 제품이 아니다. 유명 부티크가 취급하는 제품도 아니다. 홈페이지에도 명시돼 있듯 pre-owned, 즉 중고 제품이다. 최근엔 중고 판매 스타트업도 해외에서 유니콘 기업으로 쑥쑥 크고 있고, 중고 시장이 환경과 자원 순환을 위해 패션계를 먹여 살릴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기 때문에 중고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 자체로는 문제삼을 일이 전혀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겐 착각을 심어줄 수 있다. 본사 거래처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본사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파페치 창업자 물러나…쿠팡 인수 뒤 여전한 내홍

쿠팡 인수 뒤에 내홍은 여전하다. 쿠팡이 기업 가치를 낮출 수 있다며 투자자 그룹인 ‘2027 애드혹 그룹(2027 Ad Hoc Group)’이 결성돼 인수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최근엔 쿠팡의 인수가 확정된 이후 파페치 창업자이자 회장 겸 CEO였던 포르투갈 출신 호세 네베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 패션 전문지 WWD 등에 따르면 네베스를 포함해 최고재무책임자, 최고제품책임자, 최고마케팅책임자, 최고운영책임자 등 8명의 주요 임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재무건전성 등을 이유로 최대 30% 정도의 인원 감축도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파페치의 정신이 그대로 유지될지, 쿠팡식의 또 다른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이 완성될지 업계는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파페치와 돈독한 유대관계를 보였던 유력 파트너들도 파페치에서 손을 하나둘 씩 빼기 시작했다. 글로벌 패션 전문 매체인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 등에 따르면 케어링, 리치몬트, 니먼 마커스 등 계약을 해지하거나 중단하는 등 파페치와 결별 절차를 밟았다. 구찌, 발렌시아가, 생로랑 등의 브랜드는 일부 상품은 서로 간의 제휴에 따라 파페치의 마켓플레이스에 등록하고 자체 창고에서 직접 주문을 처리해왔다. 하지만 이번 결별로 파페치에선 이들 제품을 다루는 다른 중소형 부티크를 통해 공급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니먼 마커스 그룹 역시 파페치 플랫폼 솔루션을 사용해 버그도프 굿맨 온라인 스토어와 앱을 운영하려던 계획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이는 쿠팡으로선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명품’이기 때문에 그 이미지에 높은 점수를 줬을 텐데, 명품 이미지가 조금씩 훼손되면 그만큼 쿠팡이 회복시켜야할 구멍이 크다는 것이다. 또 자체 구매처를 확보해 고품질의 재고를 보유해야 하는 일도 추가로 떠안게 됐다.

◇쿠팡, 전세계 물류 비용·무료 반품 구조 감당 가능할까

겉으로 드러난 문제들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를 파보면 더욱 쉽지 않은 일들이 산재해 있다. 파페치 등에 근무했던 이들과 기존 유력지들에 따르면, 파페치의 문제는 무리한 확장과 미래를 읽지 못한 투자에만 있는게 아니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란 구조 자체가 갖고 있는 맹점이 있다. 바로 물류다. 과거 파페치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파페치 내부에선 파페치로 실제 돈 번 이들은 DHL이란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글로벌 물류 비용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파페치는 대부분 배송지에 DHL 익스프레스 배송 옵션을 특정 지역에 한해서 당일 배송과 90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하는 F90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또 무료 반품 서비스까지 더했다. 배송 서비스는 온라인 플랫폼 경쟁에선 빠질 수 없는 문제지만, 그만큼 수익성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자체 검수 비용과 포장 비용 등도 든다. 환경을 고려해 친환경 소재로 포장을 교체했지만, 럭셔리 제품 구매자들은 포장을 받아보는 순간부터 럭셔리의 경험이 시작된다고 한다. 포장 상태부터 하나씩 뜯었을 때의 기분 등이 모두 럭셔리 구매에 포함되는 기회비용인 셈이다. 이는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어떤 방향을 택해야 하는지 또다시 고려해봐야 할 산이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 쿠팡과 파페치의 앞날은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쿠팡이 소비자들을 빠르게 사로잡았듯, 럭셔리 온라인 플랫폼의 구매 방식과 태도에도 변화를 주어 업계의 판도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전세계 유명 패션 브랜드가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과 트렌드를 주시하며 한국을 21세기판 ‘유스컬처’(청년문화)의 대표적인 거점도시로 꼽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최적기란 분석도 있다. 쿠팡을 등에 업은 파페치(Farfetch)가 해외 드라마에서 자주 듣던 ‘너무 갔네’(farfetched·터무니 없다·말도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