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을 이용한 항암 치료는 다른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줘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문제가 되는 암 세포만 콕 집어 죽일 수 있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항체-약물 접합체(ADC·Antibody Drug Conjugate)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 의약품과 화학합성 의약품이 손을 잡고 암 세포 공략에 나선 것이다. 그만큼 효과가 확실하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ADC 개발 회사에 투자하거나 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ADC 개발 회사가 잇따라 대규모 기술 이전에 성공했다.

항체-약물접체(ADC) 기술의 원리

◇항체-약물 치료제 시장 연평균 37% 성장

ADC는 항체에 약물을 붙이고 암 세포에 보내 필요한 부위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항체는 암 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에 결합하는 면역 단백질이다. 결국 ADC는 마치 미사일(항체)이 표적(암 세포)에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가 터지는 것과 같다. 그만큼 다른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아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치료 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특히 항암제 분야에서 ADC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시장조사 분석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글로벌 ADC 치료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27억달러(약 3조원)에서 2026년 248억달러(약 29조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이 37%로 7년 만에 시장 규모가 9배 이상 커지는 것이다. 이동건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ADC 치료제의 본격적인 상업화로 ADC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업체들에 대한 가치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제약사, 바이오 기업에 조 단위 투자

글로벌 제약사들도 ADC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지난 13일(현지 시각) 바이오기업 이뮤노메딕스를 약 210억달러(약 24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뮤노메딕스의 발행 주식 전부를 주당 88달러에 인수하는 방식이다. 길리어드는 이번 인수를 통해 이뮤노메딕스의 ADC 치료제를 손에 넣게 됐다.

이뮤노메딕스는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트로델비’를 유방암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트로델비는 많은 고형암에서 발현되는 세포 표면 단백질인 ‘Trop-2 수용체’를 표적으로 한다. 즉 Trop-2에 결합하는 항체에 치료 약물을 결합한 것이다. 이벨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트로델비의 2026년 예상 매출액은 27억달러(약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MSD도 지난 14일 ADC 신약 개발 업체인 미국 시애틀 제네틱스와 유방암 치료제를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MSD는 시애틀 제네틱스에 계약금 6억달러(약 7000억원)와 함께 개발 단계별로 기술료를 최대 26억달러(약 3조원) 지급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상당의 주식도 사기로 해 총 42억달러(약 4조8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됐다.

두 회사는 이번 계약으로 임상 2상을 진행 중인 ADC 치료 후보물질 ‘라디라투주맙 베도틴’의 개발과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유방암과 기타 종양 두 가지에 대해 임상시험 중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라디라투주맙 베도틴과 관련된 비용과 수익을 각각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했다.

지난 7월에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일본 다이이치산쿄의 ADC 후보물질 ‘DS-162’에 대해 총 60억달러(약 7조원) 규모의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DS-162도 Trop-2 결합 항체에 약물을 결합한 치료제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비소세포암과 유방암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치산쿄가 개발한 ADC 치료제 ‘엔허투’는 지난 5월 미 FDA에서 위암 치료 희소 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국내 업체의 기술 수출, 해외 공동 개발 활발

국내에서는 바이오기업 레고켐바이오가 앞서 나가고 있다. 레고켐바이오는 독자 ADC 기술을 바탕으로 2015년 중국 포순제약에 208억원, 지난해 일본 다케다제약에 4548억원, 올해 4월과 5월 영국 익수다테라퓨틱스에 각각 4963억원과 2784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

바이오기업 알테오젠도 최근 ADC 유방암 치료제인 ‘ALT-P7’의 임상 1상 결과를 2020 대한종양내과학회(KSMO)에 발표했다. 임상시험은 삼성서울병원과 가천대 길병원에서 기존의 표준치료법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한 말기 유방암 환자에게 ADC 유방암 치료제를 투여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했다.

회사는 “현재 환자 중에 ALT-P7를 가장 오래 투여받은 사람은 600여일 이상 암의 진행 없이 유지 중”이라며 “안전성은 로슈의 ADC 유방암 치료제인 캐사일라보다 더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알테오젠은 임상 1상이 마무리되면 유방암·위암 치료제뿐 아니라 다른 약물과의 병용 요법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개발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의 공동 개발도 활발하다. 레고켐바이오는 지난 7일 중국 하버바이오메드와 ADC 공동 개발 계약도 체결했다. 하버바이오가 보유한 차세대 항체와 레고켐바이오의 ADC 기반 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고형암을 대상으로 하는 ADC 치료제를 개발할 예정이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캐나다 바이오 기업인 아이프로젠 바이오텍과 유방암·위암 치료제인 트라스트주맙, 혈액암 치료제 리툭시맙을 비롯해 다양한 표적의 ADC 신약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아이프로젠은 항체-약물을 암세포로 전달하는 효율을 높이는 독자 기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아이프로젠에 4종의 ADC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물질을 제공하고, 규제 기관 사전 회의와 제품 제조·품질 관리도 지원한다. 아이프로젠은 셀트리온이 제공한 임상 물질로 임상 1상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