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지난 13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안덕기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임기 갈등]
-공공기관장 임기와 관련해 <文정부 기관장 69%, 임기 1년 넘게 남았다>(6월 9일 자 A1면), <지방도 알박기.. 울산시설公·강원랜드 대표 등 줄줄이 舊여권 인사>(A3면), <與 “버티는 한상혁·전현희 몰염치” 野 “임기 보장돼야”>(6월 10일 자 A6면) 등을 보면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다. ‘알박기’는 개인이 사적 욕심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의미인데, 임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제도 결함 때문이다. ‘버티는’ ‘몰염치’ 등의 제목은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5년 전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반대되는 입장을 폈다. 최근 공공기관장을 강제로 물러나게 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기도 했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런 제도적 딜레마에 대해 근본적으로 논의하지 않으면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 공공기관장 임기가 정권 교체기마다 이슈가 되었다. 매번 정권 교체 때마다 논란이 일고, 언론 역시 지지 성향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정권 교체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맞추거나,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임기제를 보장하도록 관행을 바꾸도록 언론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 <’정부 시행령 통제법’ 발의하는 野>(6월 13일 자 A1면)는 민주당이 정부의 행정입법으로 불리는 시행령을 통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을 둘러싼 논란을 다뤘다. 시행령으로 입법 취지를 무시하는 것도 꼼수이지만, 그런 시행령을 또다시 입법으로 통제하려는 것도 꼼수일 수밖에 없다. 국회와 정부가 입법권과 행정권을 행사할 때는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대녀]
- <이대남은 국민의힘, 이대녀는 민주당.. 대선보다 더 갈라져>(6월 2일 자 A3면)는 이대남·이대녀 갈등 현상을 소개하는 데 그치고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여당 압승 뒤에는.. 60대 이상의 높은 투표율>(6월 3일 자 A4면)에서 20대 남녀 투표 성향이 대선 때보다 더 갈라진 이유에 대해 “20대는 투표율이 저조한 가운데 여당 또는 야당 지지가 특히 강한 정치 고관여층 남녀가 주로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한 문장뿐이다. 같은 날짜 <[萬物相] 더 심해진 이대남, 이대녀>도 현상 확인에 그치고 의문점이 풀리지 않아 아쉬웠다.
- <남녀 모두 페미니즘 피로감.. 여성학 강의도 수난>(5월 25일 자 A1면)은 페미니즘의 부침을 다루고 있는데, 그 배경이 무엇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빠져 아쉬웠다. 특히 페미니즘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든 페미니즘을 하나로 보는 관점이 언론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페미니즘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페미니스트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 <2022 다시 쓰는 젠더 리포트>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세대별 갈등 주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젠더와 관련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전문가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들의 얘기 중 받아들일 것이 있다면 정책적으로 개선하도록 수용하는 방식으로 남녀 모두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 <스쿨존은 칼같이 관리.. 실버존(노인보호구역)은 단속은커녕 방치>(6월 6일 자 사회면)는 도로를 걷다가 사망한 사람의 59%가 노인임에도 노인을 보호하는 실버존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실태를 잘 지적했다. 중요 사안이지만 사회적 관심이 떨어지는 이슈를 발굴해 공론화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 <[기자의 視角] 5·18 때 숨진 경찰도 희생자>(5월 25일 자 A34면)는 기자의 정의감과 함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다. 역사의 큰 물줄기의 한쪽에서 때로는 잊히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에 조명을 비춰주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유족들은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문장이 무거운 울림을 준다.
[반도체]
- <”반도체 인재 양성 교육부 목숨걸라”>(6월 8일 자 A1면)는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제목으로 달았는데, 대통령의 한 마디 지시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반도체는 물리학, 화학, 전기·전자공학, 재료공학 등 여러 분야의 인재가 함께 만드는 제품이다. 대학에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산업체가 목마른 것은 인재의 양적 문제가 아니라 질적 문제다.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게 우선이다. 조선일보가 반도체 인력 문제를 더 근원적으로 접근해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90년대 장비에 맡긴 반도체 미래>(6월 11일 자 A1면)는 그동안 대학 실습에 사용하는 반도체 장비는 기업에서 사용하던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것을 실제로 취재한 기사는 처음 보는 것 같다. 반도체 인력 양성과 관련, 정부가 얘기하는 반도체학과 정원 증원 방식이 옳은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인력 2만명 확대 방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첨단 산업 인력이 부족한 이유를 살피려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지, 30~40년 후에도 세계 1등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젊은이들에게 주고 있는지 등을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 <환율 1300원도 위협.. 韓美금리 역전 가능성>(5월 13일 자 A2면)은 제목만 보면 환율과 한미 금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논리적으로 연결이 잘 안 된다. 과연 독자들이 이 제목을 보고 호기심을 느끼고 기사를 읽을까 생각하면 제목을 더 쉽고 친절하게 달아야 한다. 이 경우에는 환율을 한미 금리 차와 연결시키기보다 자본 유출 정황과 연결시키는 것이 더 매끄러운 제목이 될 것 같다.
- <영원히 무료, 광고도 없다더니.. 말 바꾸는 IT 업계>(6월 2일 자 B7면)는 IT업계가 이용자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는데, 소비자 정책은 일반 기업도 그렇게 바꾸고 있다. 그런데 IT업계가 말을 많이 바꾸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 IT업계가 다이내믹하고 변화도 많기 때문에 소비자 정책 변경이 더 빈번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객관적 데이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사는 소비자 이용에 관한 내용인데, 소비자들이 어떻게 반응한다는 내용이 없다.
- <요즘 사장님은 두렵다, 신입사원이 부모님 데려올까 봐>(6월 4일 자 북스면)는 서평 기사인데, 사진이 책 내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특히 사진 중 ‘실수를 하고 당황해하는 신입 사원’이 여성이고, 뒤에서 이를 보고 있는 이들이 남성인 것을 보면 회사에 부모님 데려오는 사람은 여성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젊은 여성이 불쾌할 것 같은 사진이다.
[한일 관계]
- <관계 개선이 일본의 선물인가?>(5월 28일 자 A26면)에서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 측이 먼저 해법을 제시하라’고 주장한 데 대해 한 시민운동가의 반론을 인용했는데, 일본 유력지 사설을 반박하기 위해 일주일 전 만난 시민운동가를 인용하는 것은 어색하다. 고충은 이해가 된다. 일본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동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유럽 언론도 비슷한 분위기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이 먼저 할 일을 하라는 주장은 외로운 메아리로 들린다. 일본 및 해외 분위기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 ‘박종인의 땅의 歷史’는 항상 기대를 갖고 찾아 읽는 코너다. 특히 암울했던 우리 근세사에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 흥미롭게 전달해 주고 있다. <선조는 정말 류성용의 반대로 명나라 망명을 포기했을까?>(5월 25일 자)는 독자에게 많은 점을 일깨워 주었다. 의주로 피란 간 선조는 명나라로 도주할 계획이었는데, 류성용의 만류 때문에 철회한 것이라 아니라 명나라로부터 망명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 <1억 주얼리 한 아이유, 드레스는 명품 아닌 국내 브랜드 입었다>(조선닷컴 5월 29일 자)는 아이유가 입었던 드레스가 해외 브랜드가 아닌 국내 브랜드였다는 내용이다. 명품은 굳이 해외 브랜드가 아니어도 ‘명품’일 수 있기 때문에 제목에서 ‘명품 아닌 국내 브랜드’라고 쓰면 ‘국내 브랜드는 명품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제목을 ‘해외 아닌 국내 브랜드’ 또는 ‘해외 아닌 국내 명품’이라고 하면 좋았을 것이다.
[스타 몸값]
- 요즘 스포츠 면을 보면 선수들 몸값이나 상금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몸값, 한국 1800억원 vs 브라질 1조3000억원>(6월 2일 자), <22억짜리 환호.. 호주교포 이민지, US여자오픈 13언더로 최소타 우승>(6월 7일 자) <PGA ‘6년 무승’ 슈워츨, LIV서 60억원 돈벼락>(6월 13일 자) 등이다. 스포츠의 가치 기준이 ‘돈’이 된 것 같다. 아무리 프로스포츠 경기라도 ‘돈 벼락’ ‘몇 억짜리’로 제목을 다는 것은 조선일보 품격에 안 맞는 것 같다.
- <”남편은 6대 독자.. 아이 갖기 위해 캐디는 올해까지만 할 작정”>(6월 9일 자 스포츠면)은 15년 만에 첫 우승을 한 프로 골퍼와 그의 아내를 소개하는 기사다. 기사는 캐디 아내의 조언이 우승을 이끌었다는 내용이다. 기사 말미에 ‘6대 독자’ ‘아이’ 얘기가 나왔는데, 여기서 제목을 뽑았다.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문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의 경력 단절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