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지난 11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안덕기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SNS]
- 조선닷컴에 올라온 온라인 기사 <정철승, 文 겨냥 “이런 사이코패스를 5년 동안 몰랐다니”>(7월 8일), <양향자 “尹, 인생 목표 다 이룬 사람처럼 보여… 국민들 불안하게 해”>(7월 10일) 등은 당사자들이 SNS에 올린 글을 기사화했다. 이런 기사는 한 언론사가 인터넷에 쓰면 다른 곳에서도 따라온다. 제목을 자극적으로 달면 클릭 수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정치권 주변 인물들의 이런 돌출 발언은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킬 뿐 제대로 된 정치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관행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을 보면 큰 방향 중 하나가 지난 정부에서 이런 것을 잘못했으니까 새 정부에서는 이런 것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물론 정권 초기에 이런 지적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지난 정권에 대한 불만은 이미 선거에 반영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칼럼에서도 현 정권의 문제를 본격 거론해야 한다.
- <유나 아빠, 여행 전 ‘루나·방파제 추락’ 검색>(6월 30일 자 A2면) 등은 완도 가족 살인·자살 사건을 다뤘는데 가족의 집단 자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자극적이고 구체적이다. 조선닷컴에도 <루나·방파제 추락·물때·수면제… 유나 아빠, 여행 전 비극 검색했다> <업혀 나온 유나… 그 뒤 가족들 폰 차례로 꺼졌다> 등으로 기사화하면서 ‘유나 아빠’ ‘유나 가족’이라고 했는데, 문제는 ‘유나’는 피해자인 미성년자라는 점이다. 애초 아동 실종으로 시작된 사건이라서 아이 이름이 반복적으로 공개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건 결과가 나온 후에도 피해자 이름을 사건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파업]
- 최근 화물연대 파업 기사는 노사 갈등을 부추기거나 통합을 저해하는 논조가 강해 보인다. 일관되게 화주(貨主) 입장이고 친기업적이다. 화물차 기사를 ‘화물차주’, 파업은 ‘집단 운송 거부’라고 표현하고 ‘노동자도 아니고 파업도 아니다’라고 했던 국토부 주장을 그대로 반영했다. <”트럭 기사 개인 사업자인데… 통신·세차비까지 대줘야”>(6월 9일 자 A8면)는 제목이 선정적이다. <무법천지 노조공화국>(7월 2~5일 자) 기획 기사도 노사 협력과 상생보다 갈등을 부추기는 느낌이다. 물론 노조의 불법 투쟁 방식이나 집단 이기주의 등은 문제 제기를 해야 하지만 노사 간 건설적인 화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 <화물연대 파업 1주일에 1조6000억 피해>(6월 14일 자 A1면)는 제목이 잘못되었다. ‘피해’라고 하면 손실이 나는 피해인데, 여기서 1조6000억은 ‘생산 출하가 지연된 총액’이다. 공중으로 날아간 돈이 아닌데, 피해라고 하면 노사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지난 정부 임기 말 임명된 공공 기관 기관장들에 대해 알박기 논란이 제기되면서 엽관제와 임기제의 가치가 부딪치고 있다. 공공 기관장 임기제를 도입한 것은 정권 교체에 따른 엽관제가 갖는 불안정성과 부패 가능성이 국민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엽관성에 익숙한 정치인들이 밑그림을 그리는 인사이다 보니 임기제는 실제로는 허울일 뿐이다. 실질적인 임기제가 아니라면 엽관제를 인정하고, 이에 따른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 낫다.
- <멍키스패너로 맞았지만… 공장장님을 용서합니다>(6월 27일 자 A10면)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공장장에게 멍키스패너로 폭행을 당하고도 공장장을 용서했다는 이야기다. 피해자는 한국을 좋아했고 한국인 동료들의 도움이 있어 합의금도 받지 않고 용서했다고 한다. 하지만 둔기로 외국인 노동자를 폭행한 사례가 있다는 게 놀랍고 부끄러운데, 이런 사건을 피해자의 용서로 미화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 최근 기사 중 재미있다고 생각한 기사가 2개 있었는데 모두 젊은 세대에 관한 것이다. <노량진 공시촌, 학생들이 사라진다>(6월 24일자 A10면), <요즘 2030의 연예.. “정치 성향 안 맞는 상대는 피해야죠”>(6월 30일자 A10면) 등인데, 젊은 세대의 새로운 풍속도를 잘 보여주었다.
[청소년]
- <’극단적 시도’ 응급실 간 청소년 4년 새 2배>(6월 25일 자 A12면)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고등학생보다 중학생이,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많이 자살·자해 시도를 하는 원인 분석과 향후 대책이 빠져있다. 신문에 어린이, 청년, 여성, 노인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기사는 많지만 청소년을 위한 지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기에는 부모와의 갈등이나 진로 고민 등이 많은데, 이런 문제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가 필요하다.
- <미친 듯 한 우물 파는 신세대… ‘Z덕후(Z세대 마니아)’가 온다>(7월 11일 자 A10면)는 다양한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청소년들을 소개했다. 그런데 기사에 등장한 인물이 모두 남성이다. 사진 4장도 모두 남성 중심으로, 그중 한 사진 속에 여성이 보일까 말까 했다. 10대 덕후 중 당연히 여성도 있으니 성별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 <서울대 AI 연구팀, 美 학회 발표 논문 표절 논란>(6월 27일 자 A12면) 등에서 보듯 논문 표절은 우리 사회의 큰 문제다. 가짜 데이터를 만들거나 남의 것을 이용하는 표절은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논문 표절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장관 청문회 등에서 여러 차례 논문 표절 논란이 있었는데, 진실 여부를 확실히 규명해 범죄행위를 단절하도록 언론에서 더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한다.
-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물가·금리·환율·증시 기사가 쏟아지는데, 복잡한 숫자를 너무 많이 제시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기사 중간에 숫자가 너무 많은 부분은 읽지 않고 건너뛰기도 한다. 기자는 기사 쓰기 편한지 몰라도 독자에게는 불친절한 기사다. 배경지식이 많지 않은 대부분의 독자를 위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 나열보다 경제가 나빠진 배경과 의미, 맥락 등을 설명하는 것이 훨씬 낫다.
[취업률]
-<[NOW] 65세 이상 취업률, 한국 ‘씁쓸한 1위’>(6월 28일 자 A1면)는 고령층의 높은 취업률이 저출산에 따른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는 위기에 대응할 긍정적인 신호라고 하면서, 이들을 보호할 법률적 장치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고령층 취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신호니까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인지 헷갈린다.
- <”한국에 데이터센터” 글로벌 큰손들이 몰린다>(6월 29일 자 B1면)는 해외 기업들이 효율적인 데이터 관리를 위해 한국에 데이터센터 설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인데, 왜 그들이 한국을 데이터센터 기지로 주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쉽다.
- <고교 중퇴 수포자, 수학의 노벨상 받다>(7월 6일 자 A1면) 제목에 쓰인 ‘수포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허준이 교수의 인생 반전을 주로 강조했는데, 허 교수를 표현하는 적절한 용어는 아니었다. 또 그가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독자가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도록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날 함께 수상한 다른 나라 학자들도 간단하게라도 소개할 필요가 있었다.
- <[社說] 허준이 교수 필즈상 수상, 수포자 늘리는 암기 교육 정비 계기로>(7월 6일 자 A39면)는 수학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허 교수 같은 순수수학 인재 양성과 중등교육에서의 수학 교육은 별개 영역이다. 중등교육과 대학 입시에서 수학의 역할은 수학자 양성이 아니라 수월성을 교육의 지향 가치 중 하나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일본 개헌 세력 압승”>(7월 11일 자 A1면)은 보수 4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할 가능성이 많으니 개헌(改憲)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의 연립여당이 중참(衆參) 양원에서 3분의 2 의석을 확보했던 적은 과거 아베 총리 집권 시절에도 몇 차례 있었다. 당시에도 개헌을 추진했지만 실제 착수하지는 못했다. 개헌이 가능하려면 자민당 내 공감대를 비롯해 여러 정파의 지지를 얻고 국민투표까지 통과해야 한다. 개헌 가능성에 대한 과장된 보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공공 미술]
- <”전국의 기괴한 조형물 다 나와, 한판 붙자”>(7월 8일 자 A18면)는 공공 미술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공공 미술 카테고리에 넣어서 혼란스럽다. 전국에 산재한 흉측한 구조물 중 지역 상징이라고 내세우기에 적절치 못한 것도 많은데, 이런 구조물들과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섞어버리니까 기사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 <”토착 왜구 프레임이 ‘빨갱이’보다 더 폭력적이다>(7월 11일 자 A16면)에 나온 윤해동 한양대 교수의 논점은 식민지 문제를 연구하는 세계 사회과학계에서는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그가 한국 사학계에서 ‘이단’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학계가 세계적인 학문 조류와 동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세계의 식민지 연구자들은 1910~45년까지 조선이 ‘강제 점령’ 상태가 아니라 ‘식민지’라고 서술한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식민지 국가 기구인 총독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이단으로 취급하는데, 윤 교수는 이런 허상을 깬다. 우리가 상식으로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용감한 연구자를 많이 소개해주기 바란다.
- <[朝鮮칼럼] 허준이·임윤찬이 사랑한 불멸의 언어>(7월 11일자 오피니언면) 칼럼은 허준이와 임윤찬의 성취를 ‘국뽕’ 차원이 아니라 언어의 품격, 인문학의 의미 차원에서 접근한 아름다운 칼럼이었다. 간만에 마음의 평화로움과 충만함을 느끼며 잘 읽었다./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