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태수·박상욱·김재련·민세진·금현섭 위원, 안덕기 부국장, 김도연 위원장, 장부승·정윤혁·고산 위원. /고운호 기자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지난 13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과 안덕기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별아(소설가),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징용 배상]

-일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 발표 이후 한일 간 미래 지향적 관계에 대한 논의가 많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전향적 대응, 미래 지향적 대응이 과연 무엇인지 구체적이지 않다. 맥락상으로는 “화끈하게 사과 한 번 더 해라” 같은데, 이런 요구는 일본 정치 지형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은 그냥 미래 지향적으로 가고, 북한 문제에 협력하자는 정도 얘기만 하고, 일본도 별 아이디어가 없다. 우리가 한일 관계를 주도하려면 한국이 먼저 화두를 던지고 끌고가야 한다고 언론이 지적해야 한다.

- <尹 “미래 위해 결단” 기시다 “건전한 관계 회복”>(3월 7일 자 A1면)은 ‘제3자 변제’ 방안을 기사화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총리, 바이든 대통령 세 사람의 사진을 실었다. 3장의 사진으로 사태의 본질을 잘 짚어냈다. 현 국면은 ‘한일 간 국면’이 아니라 ‘한·미·일 세 나라의 국면’이다. 이런 구조적인 상황을 사진이 잘 보여주었다.

- <49% “이재명 구속” 41% “반대”>(2월 25일 자 A8면)를 보면, 조사기관이야 영리를 목적으로 주목받기 위해 범죄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겠지만, 언론이 보도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범죄가 여론조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가. 만약 위의 조사 결과가 반대로 나왔어도 조선일보가 이를 똑같이 보도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아 보인다. 범죄는 사법기관에 의해 판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범죄 행위에 대한 여론조사 보도는 자제하는게 좋다.

[인사 검증]

-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과 그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쟁점은 현 정권의 인사 시스템의 실패다. 하지만 아들의 입시 관련 문제로 번지는 순간 대다수 언론은 학교 입시 비리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인사 시스템 문제’가 ‘대학 입시 문제’로 전이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社說] 인사 추천 검증 전부 검찰 한 식구들 독점, 이런 일 생길 수밖에>(2월 28일 자 오피니언면) 등에서 본질을 흐리지 않고, 의식적으로 입시나 가십 앵글에서 다루지 않았다.

- <”법률 플랫폼 로톡에 변협, 가입 제한 말라”>(2월 24일 자 A1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소속 변호사들에게 ‘로톡’ 이용을 금지한 변협 등에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같은 날 <[기자의 視角] ‘로톡’ 해결, 정부가 나설 때>(A30면)를 보면 변협이 “불복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혀 소송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언론은 팩트를 말하긴 하는데, 독자들이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판단할 근거나 기준을 잘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각종 규제 개혁 갈등과 관련, 언론사가 큰 관점에서 어느게 맞는지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 <자체 수입 869억원인데, 추석에 810억 뿌린 김제市>(3월 1일 자 A1면)는 연간 자체 수입과 맞먹는 돈을 1회성 지원금으로 뿌린 김제시의 믿기 어려운 사례를 소개했는데, 문제는 이런 일이 앞으도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제시가 이렇게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것은 중앙정부에서 받아오는 세수가 많기 때문이다. 지자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근 지자체가 무엇을 하느냐다. 옆 지자체가 어떤 선심 정책을 시행하면, 자신의 재무 구조와 상관없이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 재정 건전성 차원에서 지자체의 모럴해저드 행태를 심층 취재를 통해 지적해야 한다.

- <대도시까지 번진 ‘신입생 0명’ 초교>(2월 14일 자 A1면)는 전국 147개 초등학교가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관련 사진은 ‘학생 모자라 폐교하는 서울 화양초교’인데, 기사와는 내용이 다른 사례다. 인근 상권의 발달로 인한 도심 주거지 이동이 폐교 이유다. 다른 지역의 인구 감소와는 사정이 다른데 같이 묶어 쓰고 사진까지 실어 혼동된다. 현장 취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교육비]

- <학원 보내다 등골 휜다, 사교육비 26조 최고>(3월 8일 자 A1면)는 사교육비 문제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결국 학교교육이 불충분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정부가 추진 중인 3대 개혁 중 노동·연금 개혁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교육 개혁은 오리무중이다. 사교육비 급증이나 대학 재정난 등의 문제가 산발적으로 보도되지만, 근본적인 교육 개혁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교육 개혁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도록 언론이 촉구해야 한다.

- <동성 커플, 부부 아니지만 건보 자격 인정>(2월 22일 자 A1·10면)은 법원이 동성 커플에 대해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준 판결을 다루었는데,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동성혼 혼인신고 수리, 이혼 시 재산 분할, 국민연금 등에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를 정책적으로 연구하고 해외 사례 등도 취재해 후속 기사로 다뤄주면 좋겠다.

- <대도시까지 번진 ‘신입생 0명’ 초교>(2월 14일 자 A1면) 등 인구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미래 대비에 매우 게으르다. 저출산 대책처럼 뜬구름 잡는 듯한 대책만 내놓다 보니 눈앞에 닥친 문제에 안이하게 대응한다. 정부가 인구 미래에 대한 구체적·즉각적인 대응을 내놓도록 언론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 <투표하려고 줄 섰다가... ‘트럭 날벼락’ 4명 사망>(3월 9일 자 A10면)은 전북 순창의 한 주차장에서 74세의 트럭 운전자가 운전 부주의로 조합장 선거 투표를 기다리던 인파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를 한 채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현장 사진이 실려 있었다. 재난 보도 매뉴얼을 지켰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불필요한 사진 때문에 독자들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자 장사]

- <3040 대출자, 원리금 갚는 데 소득 절반 쓴다>(2월 13일 자 A1면) 등에서 조선일보는 은행의 ‘이자 장사’에 대해 신랄히 비판했다. 또 은행에 대해 ‘공공재’ ‘과점’ 등으로 표현하는데, 전문가들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의 視角] “이러다 공기업 되는 건가요”>(2월 21일 자 A30면)는 ‘은행도 주인 있는 기업인데 정부 개입이 과하다’는 논조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은행에 대한 상반된 내용이어서 혼동스러웠다. 이런 와중에 <[朝鮮칼럼] 고차방정식으로 풀어야 할 은행의 과점 해소>(3월 7일 자)에서 “은행은 대출이 부실화될 때 발생할 손실에 대한 보전 차원에서 예대마진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했다. 은행에 위기가 올 때를 대비해 충당금 성격으로 돈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SM과 하이브·카카오 간 벌어진 인수전에서 조선일보 보도를 전체적으로 보면, SM이 내부적으로 무언가 잘못이 있고 그 잘못을 행동주의 펀드가 지적하고, 그러면서 SM 내부 거버넌스가 흔들리고 외부 세력인 카카오와 하이브가 인수전을 벌이는 상황이 일어났다고 설명하면서 이수만과 SM의 잘못을 지적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수만 측 주장은 무엇인지 등이 보완이 됐으면 좋았을 것이다.

- AI와 챗GPT 관련 기사가 많았다. 독자들은 AI와 챗GPT가 가져올 사회변화를 파악하길 원하지만, 심층적 접근보다 흥미 위주의 접근이 더 많았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키신저와 동료 전문가들이 게재한 장문의 칼럼에 대한 소개가 없었던 게 아쉽다. 촘스키는 챗GPT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지만 키신저 등은 ‘지적혁명’으로 간주했다. 권위 있는 전문가들을 초빙해 AI가 바꾸어갈 미래를 종합적으로 전망해 주면 좋겠다. 경제, 국방, 교육, 문화 등에 미칠 AI의 긍정적·부정적 영향력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을 전해주기 바란다.

- <[동서남북] 튀르키예가 6·25 때 대규모 파병한 진짜 이유>(2월 21일 자 A31면)는 ‘형제의 나라’라는 수사의 이면에 있는 튀르키예의 6·25전쟁 파병 진짜 이유를 짚어준 칼럼이다. 고귀한 희생에 대한 감사와 별개로 “외교정책에서 가장 우선시할 것은 생존과 국가 안보”이기에 이를 위한 대표적 수단이 ‘동맹’임을, 냉정한 현실론을 바탕으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자격’에 대한 숙고를 촉구한 중의적이면서 시의적절한 칼럼이었다.

[OTT]

- <그 남자의 위험한 매력... 시청자는 ‘연쇄살인마’가 궁금해>(2월 21일 자 A19면)는 연쇄살인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OTT 시리즈들의 흥행을 분석했다. 극중 캐릭터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청자들과 드라마 속 ‘연쇄살인범’들과의 사랑” “대중문화 콘텐츠의 연쇄살인마에 대한 애정” 등의 표현은 범죄극의 인기를 ‘연쇄살인범’ 범죄자에 대한 감정적 커넥션과 혼동시키는 듯하다. 사랑·애정과 호기심·서스펜스에 대한 선호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언어다. 아무리 대중적인 오락 콘텐츠일지라도,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

- <KBS, 작년 수신료 수입 6935억... 강제징수 등 불만민원 年 4만건>(3월 10일 자 A5면)은 KBS의 강제적인 수신료 징수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을 잘 반영했다. 하지만 KBS가 야당 편을 드는 사례만 제시해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야당 편을 들었기 때문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논리가 되고, 공공미디어 이슈가 정치적 사안으로 귀착하게 될 수 있다. KBS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측면과 함께 수신료 강제징수가 공공미디어의 가치를 부정하고 존립 자체를 반대하는 의도는 아니라는 점을 같이 보여주어야 한다.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