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2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태수(변호사),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원호 위원, 김도연 위원장, 한준·장부승·민세진·김별아·김재련·박상욱·금현섭 위원, 조중식 부국장. /오종찬 기자

[선관위]

- 지난 한 달 선거관리위원회의 ‘아빠 찬스’ 등 채용 비리를 비롯해 보안 점검 거부, 선거 관리 무능, 정치적 편향성 등에 대한 비판 기사가 쏟아졌다. 감사원 감사 여부 및 범위를 놓고 선관위의 독립성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독립성 문제는 쉽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선관위에 대한 전방위적인 비판이 자칫 정치적 정당성의 바탕이 되는 선거 절차 및 선거 자체에 의심을 제기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고민해야 한다.

- <與, 민노총 불법 탈법 시위 못 하게 법 추진>(5월 20일 자 A5면) 기사는 소제목이 ‘민폐노총의 행태 바로잡아야... 야간 문화제 꼼수 시위도 규제’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버린다는 말이 있다. 민주노총의 행태를 충분히 비판하더라도 정치권에서 ‘민폐노총’같이 상대방을 경멸하고 격이 낮은 막말을 공공연하게 쓰고 그것을 정론지가 여과 없이 받아쓰면 보수의 품격을 기대할 수 없다. <혐오 문구 현수막?.. 우린 발랄하게 찌른다>(5월 30일 자 A6면)는 여당의 ‘MZ세대 현수막팀’이 화제라는 기사다. ‘발랄하게 찌른다’는 예로 ‘총체적 남국’ ‘더불어코인당’ 등을 들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나 볼 만한 말장난을 발랄하다고 칭찬해 주면 이들이 열심히 일할까 봐 걱정스럽다.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 현수막 공해로 온 국민이 시달리는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은 기사 같다.

-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를 놓고 정치권 공방이 오가는데, 예전에도 비슷한 문제가 많았다. 4대강 사업, 미국산 소고기 수입,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해서도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지만, 누가 봐도 팩트(사실)를 왜곡했거나 허위, 가짜 뉴스인 경우도 많았다. 이참에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의 뻔뻔한 거짓말 폐해 문제를 종합적으로 확실히 다뤄보면 좋겠다.

[안보리]

- <180표 vs 12표.. 안보리 재진입>(6월 8일 자 A4면)은 우리나라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고, 이는 한국의 국력과 위상이 공인되고 우리의 ‘가치 외교’가 국제 사회에서 공감을 얻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은 전세계를 5대 권역별로 나눠 한 나라씩 뽑고 사전 조율을 통해 후보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때문에 대개 유엔 회원국 대부분의 지지를 받는다. 또 지역별로 나눠 품앗이처럼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국력·위상·가치 지향 등과는 상관이 없다.

- 히로시마 생존 피폭자인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 인터뷰 <”원폭에 누나 잃어.. 위령비 참배 결단에 ‘감사’>(5월 12일 자 A1면)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재일교포 하면 탄압과 차별을 받는 사람들로, 반일(反日) 기조로 일본 사회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보는 견해가 많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장훈 인터뷰는 이런 고정된 견해를 깼다는데 의미가 있다. 다음 날인 5월 13일 자 <[萬物相] 장훈의 조막손>(A26면), <[社說] “日에 언제까지 사과하고 돈 내라 할 건가” 장훈씨의 고언>(A27면), <[장부승의 海外事情] ‘김대중·오부치 선언’ 25년.. 미래 한일 관계 발전의 세 가지 테마>(‘아무튼 주말’ B11면) 등으로 한일 관계 현안과 관련, 감성적 접근과 이성적 고찰을 갖춘 글들이 이어졌다.

- <의대 가려고? 서울대 신입생 225명, 입학하자마자 휴학>(5월 23일 자 A12면)은 매년 봄 반복되는 기사로, 그만 실었으면 좋겠다. 대학에 이름을 걸어놓고 반수(半修)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학 기회를 뺏고 대학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니까 칭찬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휴학은 학생의 권리이다. 또 반수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비난할 일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도 저도 아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기사도 아니다. 전국 의대 입학 정원은 3084명인 반면, 이공계 중 이과대, 공대만 치면 대략 15만명이다. 이공계로 진입한 15만명을 잘 교육하는 데 정부 정책과 사회 여론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 <”박원순 피해자 머릿속에만”...대놓고 朴 옹호>(5월 17일 자 A12면)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다큐 제작 발표회 기사인데, ‘2차 가해’에 해당될 만한 말을 큰 제목으로 뽑아 가슴이 철렁했다. 다큐의 2차 가해를 비판하려고 쓴 기사인데, 가해자 목소리를 지나치게 친절하고 자세히 전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기사 자체만으로 2차 가해가 될 지경이다. 가해자 말을 직접 인용하기보다 내용을 풀어 중립적인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타다]

- <표 의식한 정치권 ‘제2의 타다 사태’ 언제든 터질 수도>(6월 3일 자 A4면)는 ‘타다’에 대한 대법원의 합법 결정을 계기로 ‘직방’과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로톡’과 대한변호사협회, ‘강남언니’와 대한의사협회 등 플랫폼 대 전통 사업자 간 갈등 사례를 소개했다. 여기에 간호법을 둘러싼 간호사와 의사협회 간 갈등 사례가 포함되었는데, 이는 이익단체 간 갈등으로 ‘타다’ 사태 등과는 구분해야 한다.

- <”인구 절벽 시대, 여자도 군대 가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5월 20일 자 ‘아무튼 주말’ B9면)는 병력 급감 문제를 다룬 시의적절한 아이템이지만, 일부 내용이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요즘 젊은 여자들, 애도 안 낳는데 군대를 가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라는 멘트는 여성들이 이기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기사 제목같이 남녀의 문제로 접근하지 말고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력 감소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틀에서 접근하는 게 더 맞는다.

- <’실업급여 반복 수령’ 4년 새 24% 늘어.. 회사에 “해고해달라” 요구도>(5월 25일 자 A8면)는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정도로 실업급여 수준이 높고, 각종 편법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사례를 잘 지적했다. 하지만 실업급여 수혜자의 도덕적 해이에만 주목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 개인을 탓하기보다 그런 제도를 설계하고 그런 설계가 유발한 문제점을 예측하지 못한 정부와 국회를 탓해야 한다. 또 당초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고용기금 목적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각종 사업에 적립금을 사용한 정부와 국회의 무책임은 더 강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기술 유출]

- <전경련 “기술유출 범죄, 실형 비율 11%에 불과”>(6월 9일 자 B2면)는 전경련이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상향해 엄벌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기사화했다. 기술 유출은 범법 행위로 처벌해야 하지만, 현행법은 기술 유출을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 측이 기술 인력의 이직·이탈을 통제하기 위해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양형 기준 상향 등 사법 처벌을 강화해 기술 유출을 막으려는 것은 기술 인력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어 보인다.

- <금융 당국의 ‘자사주 의무 소각’ 추진, 득 될까 독 될까>(6월 8일 자 B5면)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사들인 자사주를 의무 소각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등에서는 주주 환원 차원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후 소각하는 반면, 우리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소수주주 권한 등은 최근 급속히 커졌는데, 기업들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이렇다 할 게 없다. 그런 점에서 단편적으로만 보면 안 된다. 기업 경영의 큰 그림을 그리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

- 챗GPT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온다. AI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빅뱅에 해당하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AI가 만들어 낸 가짜 사진과 가짜 뉴스 소식부터 가상 훈련 중 AI가 인간 통제관을 살해한 소식, 그리고 창의적 직업도 AI로 대체 가능하다는 등 부정적 뉴스가 대부분이다. 긍정적 보도인 ‘피자와 AI의 결합’ 같은 뉴스에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AI는 인류 문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위험한 기술로 소개되는 느낌이다. 챗GPT가 처음 등장했으니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좋지만, 부정적인 측면을 너무 강조하면 안 된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AI 기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PC주의]

- <”내 자식 지킨다”.. 美 대선판 흔드는 ‘엄마들 전쟁’>(6월 3일 자 A16면)은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를 놓고 진보·보수 학부모들이 충돌하는 게 미국의 가장 뜨거운 정치권 이슈가 되었다는 내용인데, 이는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PC주의는 점점 과도해지고 있고, 더 심각한 문제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그것을 주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PC주의를 둘러싼 포퓰리즘 경향도 강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PC주의로 교육이나 연구 등에서 자율성이 침해당할 우려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

-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의 별세 소식을 전한 <[박은주의 이 사람의 길] “사계절은 나의 영감, 나는 그걸 담는 도서관 사서였을 뿐”>(6월 8일 자 A20면)은 기존 부음 기사와 차별화되어서 눈길이 갔다. 유명인의 삶을 다루는 부음 기사는 많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기보다 그동안 알려진 팩트 위주로 나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기사는 고인의 인생을 시대적 배경과 함께 깊이 있게 보여주었다. 특히 고인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던 1990년대 카페 풍경을 묘사해 그가 우리와도 가깝게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조선일보도 미 뉴욕타임스(NYT) 같은 전문적인 부고 기사를 시작한 것 같아 지면이 굉장히 풍성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