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뒤 지방자치제 민선 8기가 시작된다. 자치구별로 주민 생활 혹은 지역 발전과 직결되는 해결 과제의 현안들을 정리했다. 국정과제와 달리 자치단체와 주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할 사안들이다.

◇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에 주택 공급 가능할까

서울의료원 부지 공공주택 건립을 두고 국토부·서울시·강남구의 3자간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발단은 정부가 2020년 8·4 부동산 대책을 통해 강남구 옛 서울의료원 부지에 공공주택 3000가구를 짓겠다고 나서면서부터다. 민주당 소속인 강남구청장이 이 일대를 “국제교류복합지구로 개발해야 한다”며 반기를 들었고, 서울시는 정부 계획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

조선일보 DB

그런 서울시가 작년에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입장을 바꿨다. 류훈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옛 서울의료원 부지에 (공공주택) 3000호를 공급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당초 (2018년) 계획한 대로 800가구로 규모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 추진되는 ‘국제교류복합지구’에 속한 서울의료원 부지에 복합 마이스(MICE, 회의·관광·컨벤셥·전시) 단지 구축이 예정돼 있는 만큼 공공주택 건립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강남구는 서울시에 서울의료원 부지 대신 대치동 코원에너지서비스와 개포동 구룡마을 등을 대체지로 제안했다. 구는 게다가 “250호 정도만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는 대체 부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상태다. 이 와중에 국토부는 3000가구 공급 계획 추진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3자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갈등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17일 용산구 용산정비창과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 등에 청년 원가주택을 공급한다는 구상을 밝혔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와 서울시, 강남구의 동상이몽은 지방선거 이후 다시 한번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 [노원구] 광운대역 주변 개발 사업, 암초 넘어라

광운대역 주변 대규모 물류부지 개발이 노원구의 최대 현안이다. 역주변에는 노후 저장고, 제지창고 등이 있어 그간 주민들의 이전·철거 요구가 빗발쳤지만 시멘트 저장시설인 ‘사일로’가 버티고 있어 개발이 어려웠다. 분진과 소음, 진동을 쏟아내는 높이 40m, 지름 20m 규모의 사일로 4기가 개발의 장애물이다. 이 사일로 철거를 포함한 광운대역세권 개발은 노원구가 10년간 추진해온 사안이다.

지난해 7월 HDC현산·서울경기항운노조·노원구간 광운대역 물류기지 내 근로자 보상협약이 체결됐다. /노원구 제공

구가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다. 2012년과 2014년에 공모했으나 초기 사업비 부담 등으로 두 차례 유찰됐고, 2017년 들어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사업자로 나서며 진행되는가 싶었다. 계획대로라면 2025년쯤 주변 물류부지 14만816㎡에 상업·주거·공공시설까지 개발되는 동북부 최대사업이 된다. 투입비용만 2조6000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하지만 당장 걸림돌이 생겼다. 물류 하역 공급권을 가졌던 항운노조 조합원들이 대체 일자리 확보와 보상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노원구는 HDC현산과 항운노조 측을 중재해 가까스로 봉합하는 듯했다. 그런데 곧이어 개발 사업자인 HDC현산이 문제가 됐다. 광주광역시에서 잇따라 발생한 붕괴사고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국토부 등의 요청으로 최고 행정처분인 건설업 등록 말소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HDC현산이 퇴출되면 광운대역세권 개발은 무기한 중단될 공산이 크다. 행정처분이 확정되는 약 6개월 뒤면 사업의 운명이 판가름난다. 노원구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됐다.

주민들의 우려에 대해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지난달 30일 광운대역세권 개발현장에서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구청장은 기존 개발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관련 기관들과 협의를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광운대역세권 개발 사업은 HDC현산이 시공사가 아닌 시행사라는 점에서 건설업 등록 말소까지는 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행정상 무리가 없더라도 건설현장에서 보이콧 움직임이 거세지는 HDC현산에 대해 노원구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차기 구청장의 대처가 중시되는 이유다.

◇ [도봉구] GTX-C노선 도본구간 지상화 철회될까

민선 8기 도봉구의 최대 현안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C노선 지상화 철회 여부가 될 전망이다. 2020년 10월에는 도봉산역에서 창동까지 5.4km를 지하화하는 기본계획을 확정해 놓고는 두 달뒤 국토부가 도봉구간만 지상화로 계획을 돌연 변경했기 때문이다.

/도봉구 제공

도봉구와 지역주민은 “이같은 변경 조치로 민간사업자는 수천억에 이르는 사업비를 절감하게 됐지만 인근 주민들은 소음과 분진, 진동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며 반발했다. 국토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주민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을 민주당 소속 구청장, 민주당 지역국회의원들이 무얼 하고 있었길래 막지 못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지난 2월에는 이동진 구청장이 민주당 인재근 의원과 오기형 의원이 마련한 국토부 장관과 면담을 가졌으나 3월 열린 국토부와 서울 도봉구민간 첫 간담회는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도봉구간 지상화를 철회시킬 역량이 있는 후보가 구청장이 될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내 후보들의 제1 공약도 ‘도봉구간 지상화 철회(혹은 지하화)’로 모아지고 있다(이동진 현 구청장은 3선 연임 제한으로 불출마). 구의원으로 3번, 시의원으로 3번 도봉구에서 당선된 바 있는 김용석 의원과 마찬가지로 3선 출신인 김동욱 시의원도 참전했다.

국민의힘 후보들도 이 문제를 공략하고 있다. GTX-C노선 연장을 추진하는 등 후보시절 GTX공약을 내건 윤석열 당선인을 활용하는 모양새다.

◇ [양천구] 차량기지 이전은 감감, 물류센터 떠안나

1992년부터 2호선 운행 철도차량의 점검·정비소로 쓰여온 양천구 갈산지역 ‘신정차량기지’ 이전 문제는 해묵은 사안이다. 주변 2만7천여세대 주민들은 차량 소음과 분진 피해를 호소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길 희망해왔다. 또 인근 초중고 학생들 수업에도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 영향으로 2010년에는 이곳을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는 당시 철로 상부에 인공 터를 조성해 지상 34층 규모의 랜드마크 빌딩을 건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연기됐다.

양천구 신정차량기지 개발 조감도. /서울시 제공

그로부터 다시 8년이 흘러 2018년 지방선거에서 이전안이 다시 떠올랐다. 서울시가 움직인 것이 2020년. 2호선 신정차량기지와 5호선 방화차량기지를 통합 이전하는 사전타당성조사 용역을 실시했다. 경제적 타당성이 낮다는 결론이 나와 지난해 신정차량기지만 부천시 대장지구로 이전하는 방안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이 역시 올해 2월 무산됐다. 서울시는 차량기지를 이전하는 대신 지하철 2호선 신정지선을 연장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놨지만 부천시·서울 강서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국토부가 2020년 계획한 ‘공유형 물류센터 조성계획’이 기름을 부었다. 물류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2025년까지 신정·도봉·수서 등 10개소에 물류센터를 구축한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기지이전은 요원한데 물류센터까지 떠안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주민들은 “도로변 대형 차량 불법주차 등으로 교통난이 예상되고, 소음, 먼지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물류센터 관련 민원 중 서울 양천구 신정차량기지 내 물류센터 조성을 반대하는 집단 민원이 20만4016건(90.6%)에 달했다. 결국 민선8기, 양천구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 [중랑구] ‘수천억대 효과’ SH 본사 이전에 역량 집중

중랑구에는 현재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본사를 중랑구 신내동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걸려있다. 직원 1300여명에 연 방문자가 10만명에 이르는 SH공사가 신내동으로 오면 중랑구 입장에서는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보게 된다. 베드타운에 그쳐 도시 자족기능이 부족했던 신내동 일대가 크게 달라질 것은 물어보나마나다. 서울시도 “5년간 4800억원의 직·간접적인 경제 효과와 4000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SH공사 청사 중랑구 신내동 부지 정면도. /서울시 제공

서울시·중랑구·SH공사 3자간 ‘SH 중랑구 이전 협약’도 2019년 9월 체결됐다. 그런데 김세용 전 SH 사장이 2020년 4월 갑작스레 물러나면서 올스톱됐다. 구청은 조례까지 만들어 SH공사 임직원들에게 장학금과 셔틀버스를 지원하는 등 편의도 마련했지만 SH 사장직이 약 7개월간 공석이 되면서 미뤄졌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후 지난해 12월 새로 김헌동 SH 사장이 임명됐어도 모든게 그대로다.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시장과 구청장이 있을 때와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SH노동조합의 반발도 한몫하고 있다. 조합 측은 지난해 8월 “SH공사의 중랑구 신사옥 건립은 강남구 개포 사옥 방문객의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재정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성명서를 냈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 다수인 중랑구의회와 서울시의회 등이 이전촉구 결의안을 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번 지방선거에 SH이전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여야 후보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국민의 힘 소속 예비후보인 나진구 전 중랑구청장과 재선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류경기 현 구청장은 과거 오세훈 시장과 박원순 시장 시절 각각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역임한 관료출신이다. 두 후보의 역량이 어떻게 드러날지 관심이 모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