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 대한간호협회 이사·서울시간호사회 회장

우리나라는 지난해 ‘선진국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다. 의료기술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맞지만, 안타깝게도 78년 전 일제의 잔재인 조선의료령에 뿌리를 둔 의료법에 의해 오늘날까지 간호사의 업무는 크게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간호사(看護師)’란 명칭이 자리 잡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00년대 초 ‘간호원(看護員)’이라는 용어가 이 땅에 처음 등장한 이래 일제강점기 당시 ‘간호부(看護婦)’라는 명칭을 거쳐, 해방 이후 다시 ‘간호원’으로 다시 불리다, 1987년 오늘날 명칭인 ‘간호사’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는 귀한 인재다. 인구 1000명당 OECD 평균 8.9명의 절반도 채 안 되는 3.8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간호사의 평균 근무 기간은 7.5년으로 매우 짧다. 간호사의 근무 기간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가 적은 데는 열악한 근무 환경 탓이 크다. 한국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 비율은 OECD 기준의 4배에 달한다는 수치만 봐도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년간 간호사들은 최전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워왔다. 하지만 정작 간호사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간호사들이 합리적인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등 OECD 국가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갖고 있는 간호법이 대한민국에는 없다. 그럼에도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일부 단체는 ‘간호법은 간호사들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에 참가한 대한간호협회 간호사들. /대한간호학회 제공

간호법 제정에는 간호·보건의료·노동·법률 등 100여개의 전문 단체가 함께 힘쓰고 있다. 이들은 오직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마음으로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켜 국회에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 간호계 역시 한국에서 간호법이 제정되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지지 성명을 잇달아 내고 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이익을 위한 법이 아니다. 다양화·전문화·세분화되는 간호 업무에 발맞춰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해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고 국민 건강을 돌보기 위해 반드시 마련돼야 하는 법이다. 간호사가 필요하다면, 간호와 돌봄이 필요하다면, 국민 건강이 중요하다면 간호법 제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간호법은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지키는 법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간호사에게 필요한 것은 코로나와 싸운 영웅이라는 칭찬이 아닌 간호법 제정이다.

박인숙 프로필

▲서울대 간호대학, 서울대 간호대학원 간호학 석사 및 박사

▲서울시간호사회 회장(현), 대한간호협회 당연직 이사(현), 서울대병원 운영 보라매병원 간호부장(전), 서울대병원 운영 보라매병원 보건의료정책자문 선임정책관(전), 서울시간호사회 감사 및 이사(전), 보건복지부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평가위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