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성 구청장이 덕수궁 돌담길에서 뜨개옷을 살피며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구

서울 덕수궁 돌담길 가로수마다 ‘꽃’을 입고 있다. 올망졸망한 은방울 꽃부터 키 큰 해바라기까지. 중구 자원봉사센터 봉사단 등 100여 명이 넉 달간 공들여 짠 ‘뜨개옷’이 그 꽃이다. 돌담길부터 정동길 일대 가로수 230여 그루는 모두 이 따스한 뜨개옷으로 월동 준비를 마쳤다.

나무나 동상 등 공공시설물에 털실 옷을 입히는 설치미술 장르인 ‘그래피티 니팅(Graffiti Knitting)’은 2005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친환경 거리 예술이다. 나무에 보온 효과가 높지는 않지만 거리 미관을 아름답게 하고 따뜻해지는 느낌을 줘 행인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과거에는 나무기둥을 볏짚이나 거적 등으로 감싸놓는 ‘잠복소’를 사용했다. 겨울철 피해 예방과 해충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중구 봉사자들은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주 2회 마을강사의 수업을 들으며 꽃을 주제로 한 뜨개 작품을 만들었다. 털실 값은 소공동 시민참여 예산으로 마련했지만 제작과 설치는 오롯이 이들의 손을 거쳤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중학생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함께 모여 제작 노하우를 공유한 것. 작업에 참여했던 최완순(76)씨는 “원래부터 뜨개질을 좋아했는데 재능을 살릴 수 있어 기쁘다”며 “젊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젊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뜨개옷을 제작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사이즈가 나무에 꼭 맞지 않으면 흘러내릴 수 있기 때문. 신축성을 생각해 실측보다 1~2㎝ 작게 뜨는 게 요령이었다. 뜨개옷의 세로 길이는 90㎝로 같지만 가로길이는 나무마다 각자 크기를 재서 ‘맞춤형’으로 만들었다. 마무리 바느질은 현장에서 직접 했다. 구청은 각 나무에 옷 뜨기에 자원한 이들의 이름을 적어 그들의 노고를 기렸다.

지난달 28일에는 김길성 중구청장이 이곳을 찾아 전시상태를 둘러보면서 구민과 봉사자들을 만났다. 김 구청장은 “주민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완성된 뜨개옷이 나무뿐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