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급망·통상 안보 관점에서 바이오가 중요한 국가 전략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지난 9월 ‘생명공학·바이오제조’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바이오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 혁신과 육성이 핵심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5월 ‘바이오 경제계획’을 통해 2035년까지 바이오 경제 역량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밝혔고, 일본도 2019~2020년 ‘바이오 전략’을 발표하는 등 세계 각국은 바이오 경제 육성 경쟁 중이다.

한국 정부도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국내 기술 수준을 지속적으로 향상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바이오 선도국을 추격하는 처지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 바이오 혁신 전략’을 통해 국가 바이오 기술·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바이오 선도 국가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 합성생물학 발전협의회 출범식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첨단 디지털 기술 바이오에 접목

디지털 바이오는 바이오와 네트워크·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기술 융합을 통해 창출된 새로운 바이오 기술을 말한다. 바이오 데이터의 가치가 단순 연구 결과에서 R&D 핵심 자원으로 변하고 있고, 두 분야의 융합으로 신산업이 창출되고 있다.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이 대표적이다. AI 활용 신약 개발 시장은 2019년 4억7340만달러(약 6300억원)에서 연평균 28.6% 성장해 2027년 35억4860만달러(약 4조7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디지털 바이오를 육성한다는 계획을 국정 과제에 반영하고 관련 전략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 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과 바이오 접목을 통해 바이오 기술을 혁신하고, 보건 의료 분야는 물론 제조·환경·농업 등 바이오 분야 전반에 걸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창출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디지털 바이오 혁신 전략은 핵심 인프라와 기술을 확보해 2030년까지 세계 최고 기술의 85%를 달성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이를 위해 신기술·신산업 창출 가능성을 고려해 핵심 기술을 선별한다. 기술 지원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것이다. 첨단 뇌과학과 전자약·디지털 치료제, 마이크로바이옴, RNA·펩타이드 기술을 활용한 신약물 원천 기술 개발 등이 주요 육성 분야다.

디지털 바이오 기반 기술도 확보한다.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새로운 연구 방식으로 전환해 바이오 연구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유전자 편집·제어·복원기술의 효율을 2배 향상하고 신약 후보 물질 발굴을 위한 AI 플랫폼 기술 고도화,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 개발 등을 추진한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데이터 기반의 바이오 생태계를 조성하고, ‘연구-개발-사업화’ 간 연결을 촉진하는 협력 생태계도 마련한다. 이를 위해 바이오 연구 데이터를 통합 수집·관리·공유하는 ‘국가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K-BDS)’을 구축하고 의사 과학자 양성 등을 추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코로나 진단 키트 개발 사례를 통해 확인된 우리나라 바이오의 탄탄한 기본 역량과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디지털 역량이 만나 미래 한국의 바이오를 부흥시킬 수 있길 기대한다.

◇디지털 바이오 기술·인프라 육성

정부는 우선 ‘국가 합성 생물학 이니셔티브’를 발표한다. 여기에는 국가 차원의 바이오 파운드리 구축 계획과 합성 생물학 전반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 및 법·제도 개편 방향이 담길 예정이다. 합성 생물학 기술은 생물체를 이용해 의료·산업·식품 등에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미국이 지난 바이오 행정명령 발표 때 핵심적으로 언급한 기술로, 미 백악관은 이 기술이 10년 내 전 세계 제조 산업의 3분의 1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합성 생물학은 의약품뿐 아니라 단백질 등 생물체 유래 물질을 생산하는데 모두 쓰인다. 합성 생물학 생산 과정을 담당하는 인프라가 ‘바이오 파운드리’다. 반도체 파운드리가 팹리스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계약 생산하는 것이라면 바이오 파운드리는 자동화된 고속 설비를 이용해 바이오 연구와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생물 소재를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동물 세포나 균주를 개발하는 인프라다. 로봇 자동화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이 활용된다,

이런 디지털바이오 기술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알파폴드’다.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벌인 알파고로 유명한 딥마인드에서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기존 생명공학자들이 분석하는 데 수년씩 걸렸던 단백질 구조를 3~4주 만에 예측할 수 있다. 그것도 1개가 아닌 17만개의 단백질 구조로 범위도 방대하다. 2018년 처음 등장한 뒤 지난해 소스 코드(프로그래밍 설계도)가 전격 공개되면서 바이오 분야 연구 판도를 바꾸고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최근 주목받는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이다. 인간 몸에 공존하는 미생물 집단을 일컫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생체 현상과 질병 치료와 관련 있다는 연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많은 개체로 이루어진 미생물 군집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고, 미생물 집단과 숙주인 인간 간 상호 작용 관계를 연구하는 데에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만큼 바이오 빅데이터 기반 연구가 필수적이다.

미국 긴코 바이오워크스의 바이오파운드리 시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개발 시간·비용 대폭 감소

디지털 바이오 기술은 바이오 분야 연구와 제품 개발에 걸리는 시간과 투자금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 분야는 대상이 생명체여서 연구·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다. 성공할 때까지 시간도 길고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같은 최신 디지털 기술을 바이오에 도입하면 후보 물질의 범위를 쉽게 좁히고, 바이오 소재를 만드는 데 최적화된 동물 세포나 균주의 발굴을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모더나의 mRNA 백신 생산 기술이다. mRNA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장균에서 플라스미드라는 DNA 조각을 짧은 시간 안에 대량 생산해 내야 한다. 모더나의 협력사인 미국 긴코 바이오웍스의 합성생물학 기술이 생산 과정을 최적화하는 데 이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