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이 철거를 앞둔 가운데, 경기도 김포시·양주시·동두천시, 인천 서구, 강원도 춘천시, 원주시, 철원군 등 전국 7개 지방자치단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사진은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의 모습. /조선DB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이 철거를 앞두면서, 새 국제스케이트장을 유치하기 위한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열기가 뜨겁다. 이 가운데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을 이전할 때 ‘광역 교통거점 여부’가 최우선 입지 조건이 돼야 한다는 국민인식이 가장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6월 3~5일 ‘새로운 국제스케이트장 입지 조건에 대한 국민인식’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전국 유무선 전화 RDD, 응답률 3.3%)한 결과에 따르면, ‘새로운 국제스케이트장을 위한 입지 조건 중 최우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 28.4%가 ‘광역 교통거점 여부’라고 답해 오차 범위 안에서 가장 높았다. 이어 국제공항과의 근접성이 26.2%로 나타났으며, 태릉선수촌과의 근접성(25.0%), 주변 관광지와의 조화(20.4%) 순으로 집계됐다.

‘새로운 국제스케이트장 건립을 계기로 한국 빙상 및 동계스포츠 발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항목에는 ‘새로운 무대에서의 폭넓은 선수층 육성’이 43.9%로 오차 범위 안에서 가장 높은 응답을 기록했다. 이어 꿈나무 육성과 기회 제공(42.6%), 세계적 빙상대회 개최(13.5%)순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국제스케이트장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나’라는 질문에는 한국 빙상 스포츠 위상 제고(29.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또 응답자 25.0%는 경제적 효과 창출을 꼽았다. 이어 국내 선수 훈련 장소(23.5%), 일상 생활 속 빙상 즐기기(22.3%) 순으로 기록됐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국제스케이트장이 뭐길래…전국 7곳 유치전 참여

국제스케이트장 유치전은 지난 2009년 조선 문정왕후의 묘 태릉(泰陵)과 명종과 인순왕후의 묘 강릉(康陵)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촉발됐다. 태릉 선수촌 내 국제스케이트장을 올 연말까지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다.

대한체육회는 새 국제스케이트장을 조성하기 위해 복합시설 부지를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약 2000억원을 들여 부지면적 5만㎡ 이상, 건축 연면적 3만㎡ 이상으로 400m규모 스케이트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전국 7개 지자체가 참여했다. 경기도에서 김포시·양주시·동두천시가, 인천에서는 서구, 강원도에서는 춘천시·원주시·철원군이 도전장을 냈다.

일단 국제스케이트장을 유치하면 경기장 건립 비용 2000억원이 전액 국비로 투입되는 데다, 선수단 훈련 및 국제대회 개최 등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어 각 지역의 관심이 높다. 또 지자체 랜드마크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다.

김포시가 국제스케이트장 건립 후보지로 계획한 풍무지구 일원. 김포시는 "선수들의 효율적인 훈련 동선과 국내외 접근성 등의 장점을 갖춘 최적지"라고 밝혔다. /조선DB

◇빙상계에선 “공항 인접, 수도권 접근성 중요” 목소리

전문가들은 교통 인프라와 지리적 입지 조건이 새 국제스케이트장 입지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특히 ‘공항 접근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선수 입장에서 이동거리가 늘어날수록 훈련과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기훈 경기도빙상연맹 사무국장은 수도권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정 사무국장은 “엘리트 선수 기준으로 현재 등록된 선수는 경기도 424명, 서울 410명으로 약 70% 이상 선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며 “강원도 내 등록 선수가 49명 정도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새 스케이트장이 수도권에 지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김용수 서울시체육회 직장운동부 빙상팀 감독은 “선수들의 입장에서 보면 경기장이 가까운 곳에 지어지는 게 좋다”며 “이동거리와 시간이 늘어날수록 훈련과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학생 선수들은 현실적으로 스케이트장에 상주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했다.

전 빙상국가대표 지도자 출신인 빙상연맹 관계자는 “대한민국 빙상 도약을 위해서는 국제스케이트장은 공항과의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고, 경기장 건설 이후 활용도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서울에 있지만 외곽에 있어서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수 인구가 줄어든다. 도심지와 먼 곳이 선정되면 향후 100년을 내다봤을 때 빙상의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국제스케이트장에 국비 2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대한민국 빙상계의 경쟁력을 높일 기회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때문에 이번 여론조사 결과처럼, 새 국제스케이트장은 선수층 육성 및 기회 제공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또 선수층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만큼, 교통 접근성이 가장 중요하며, 국제 스케이트장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도 공항이 가까울수록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빙상 경기가 진행 중인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 /조선DB

◇“적자 운영 막으려면 인구 유동성이 높아야”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는 경제성과 지속가능성도 중요한 화두로 꼽힌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위해 건립된 강릉스피드스케이트장이 그 예다. 1264억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했지만, 올림픽 이후 정기 가동이 중단된 데다, 운영비는 매년 8억원 가까이 투입된다. 적자 운영을 막기 위해선 인구 유동성이 고려돼야 한다는 게 빙상계의 중론이다. 국제대회를 개최하거나, 대관 사업을 실시할 수 있는 입지여야 하고, 선수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접근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런 장점을 내세우고 있는 곳은 김포시와 양주시, 춘천시 등이다. 이들 지자체는 각기 다른 맥락에서 최적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포시는 국내 선수 훈련뿐 아니라 전국과 해외에서 접근하기 좋은 교통과 지리적 위치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7곳의 후보지 중 인천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 등 두 개의 공항이 가장 가까운 도시라는 것이다. 또 서울지하철 5호선이 김포로 연장될 예정인 데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D노선에 이어 2호선, 9호선 연장까지 논의 중인 상황으로, 광역교통 거점으로 발전하고 있다.

김포시는 서울, 인천, 고양을 접한 대도시 광역권이라는 지리적 위치와 인구유동이 활발한 경기장 부지라는 점도 내세운다.

유치 열기도 뜨겁다. SNS캠페인에 이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를 주제로 AI 그림 콘테스트도 열었다. 김포시 관계자는 “김포는 국내외 선수단과 관객 등이 항공, 철도 노선을 이용해 접근하기 좋고, 동계스포츠 시설을 확충할 충분한 가용부지를 보유했다는 장점이 있다”며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를 위한 최적의 입지 조건과 비전을 갖춘 후보지”라고 말했다.

양주시는 신청지 중 태릉국제스케이트장과 가장 가까워 국내선수 훈련에 최적의 동선임을 강조한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이 50분대, 인근 경기 북부 지자체는 30분 내외로 이동 가능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든다.

춘천시는 1969년부터 3년 연속 전국 동계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등 과거 대한민국 빙상의 뿌리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송암스포츠 내 경기장 부지를 내세워 수도권 근접성이 높다고 홍보하고 있다.

한편, 대한체육회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대체 시설 유치를 위한 부지선정위원회를 이달 말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위원회를 통해 올 하반기 부지선정 완료를 목표로 심사 일정과 평가 기준, 실사 방안 등 구체적 계획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