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RCEP(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메가 FTA 확산으로 세계 농산물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신규 발효 FTA를 통해 우리 농식품의 시장 진출 기회가 오히려 확대되기도 했다. 우리 농축산업계는 세계인이 선호하는 농식품 맛과 품질,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때마침 다양해진 글로벌 K컬처(K-Culture) 수요에 힘입어 지난해 농림축산식품 수출은 사상 최고 실적인 90억3000만달러(약 12조5000억원)를 달성했다. 조선일보는 메가 FTA 속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수출 품목 및 업체의 성공 사례와 농식품 산업의 신성장 동력 창출 노력 등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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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알알이 탐스럽게 맺힌 포도는 예로부터 풍요를 상징한다.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에서도 포도는 기분 좋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2023년 농식품·스마트팜·농기자재·펫푸드·동물용 의약품 등을 포함하는 케이-푸드 플러스(K-Food+) 수출액이 약 121억4000만 달러(약 16조원)로 역대 최고액을 달성했다. 이 중 압도적인 수출 증가율 1위는 단연 포도였다. 1년 새 무려 34.6%나 증가해 약 4610만달러를 기록했다. 그중 샤인머스캣이 전체 포도 수출의 약 90%를 차지했다. 샤인머스캣은 애초 일본에서 개발됐지만, 한국 샤인머스캣이 가격 경쟁력과 우수한 품질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품질 차별화와 맞춤형 소포장 등으로 수출 증대

2023년 국가별 샤인머스캣 수출 추이를 보면 대만이 1067만달러를 기록해 전년(216만달러)보다 393.3%나 뛰었다. 중국산의 대만 수출이 금지된 상황에서 한국산 샤인머스캣이 일본산을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으로 따돌리며 인기몰이 중이다. 농약 안정성 기준 준수 및 철저한 품질 관리로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은 903만달러로 수출액에서 대만 뒤를 이었다. 전년(759만달러) 대비 19% 상승한 금액이다. 맞춤형 작은 송이(600g 이하) 수출 확대 및 ‘프리미엄 인식’ 확산으로 한국산 샤인머스캣 소비가 증가했다. 소포장화에 따른 단가 하락으로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돼 향후 지속적인 수출 증가가 예상된다.’품질 차별화’로 중국산 샤인머스캣이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에 대량 유통되는 위험 요소까지 극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 ▲수출국 맞춤형 600g 이하 소포장 개발→수출 확대 ▲미국·캐나다 등 시장 다변화 ▲레드클라렛 등 신품종 개발 ▲장기 저장 기술 보급도 수출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경북 상주 샤이왕영농조합법인…토양 관리 및 저온저장고 등 경쟁력 강화

지난 2020년 설립된 샤이왕영농조합법인(경북 상주시 화동면·이하 샤이왕)은 내수 대비 수출 비중이 40%(금액 기준) 정도다. 지난해 ▲중국 27t ▲미국 15t ▲대만 10t ▲베트남·두바이·홍콩 등 기타 국가에 13t을 수출했다. 중국은 한때 포도 최대 수출국으로 꼽혔으나, 경기 침체와 자국 생산으로 점점 물량이 줄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이왕이 중국에 가장 많이 수출한 것은 고품질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샤이왕의 포도는 해발 300m 이상 고랭지에서 재배돼 깊은 향과 아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적정 착과량을 유지하며, 무엇보다 토양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신희용 샤이왕 사무국장은 “농사는 기후 등 변수가 많은데, 토양이 좋아지면 많은 부분을 변수에서 상수로 바꿀 수 있다. 즉, 꾸준한 고품질 재배가 가능해진다”며 “샤이왕 토양은 일반 농가 대비 유기물 함량이 2~3배 정도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샤이왕은 지난해 5월 농림축산식품부 사업인 ‘저온유통체계 구축사업’에 선정돼 497㎡ 규모의 샤인머스캣 전용 저온저장고를 건립했다. 저온저장고가 없으면 수확과 동시에 출하가 이루어져 알맞게 가격 방어를 할 수 없다. 저온저장고에서는 10월 수확 후 이듬해 3월까지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국내는 물론 동남아 지역도 연말부터 음력 새해까지 시장이 커지는데, 출하 시기 조절로 시장 가격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

샤이왕 포도는 해발 300m이상 고랭지에서 재배돼 깊은 향과 아삭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엄격한 품질 기준을 적용해 선별 작업을 진행한다. 사진은 신희용 샤이왕 사무국장. /샤이왕영농조합법인 제공

◇레드클라렛 등 적색계 품종으로 새로운 가능성 열어

신 사무국장은 “포도 시장 흐름은 크게 과거 흑색계(거봉·캠벨)→현재 청색계(샤인머스캣)→미래 적색계로 보고 있다. 특히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동남아 시장에서는 샤인머스캣 같은 청포도보다 적포도에 더 끌릴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샤이왕에서도 지난해 베트남·대만으로 대표 적색계 품종인 마이하트를 수출했다. 경북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프리미엄급 적색 포도 신품종 레드클라렛·글로리스타도 재배 중인데, 올해 첫 수출길에 오를 예정이다.

경북농업기술원은 샤인머스캣 등 수입포도 품종을 대체하고, 종자 주권 확보와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2014년부터 인공교배와 특성 조사·연구에 나섰다. 레드클라렛과 글로리스타는 모두 알이 굵고 당도가 높으며 청량한 식감을 자랑한다.

제작지원 : 2024년 FTA 분야 교육홍보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