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아직도 쉐인 유먼을 추억하는 부산 팬들이 많다. 구멍 난 로테이션을 메우기 위해 영입된 후 2년 연속(2012~13) 13승을 올렸다. 다양한 변화구와 안정적인 제구가 일품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건 거구(195cm, 100kg)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 때문만이 아니다. 팀과 하나되는 일화를 여럿 남긴 탓이다.

2013년 4월 어느 날이다. ‘봄데’는 어디 가고, 팀이 4연패로 시무룩할 때다. 유먼이 클럽하우스에 커다란 박스를 풀어놓는다. 자비로 제작한 티셔츠 200벌이었다. “이거 입고 함께 힘내서 훈련하자.” 선수와 스태프에게 일일이 나눠준다. 한글로 ‘롯데 파이팅!’이라고 쓴 옷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앞쪽이다. 난데없는 문구가 새겨졌다. ‘찜닭 힘!!’ 제작자의 의도는 이랬다. “평소 내가 기운이 없을 때 찜닭 먹고 힘을 낸다. 우리 선수들도 나처럼 힘을 내라는 뜻이다.”

그의 찜닭 사랑은 유명하다. 사직 구장 근처의 단골집을 자주 찾았다. 매콤한 맛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 최고라며 엄지 척이다. 13승 비결도 여기서 찾는다. 이글스로 옮긴 뒤에도 대전 맛집을 찾아 전전했다는 후문이다.

어디 유먼 뿐이겠나. 이제는 K푸드 아닌가.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식을 즐긴다. 드루 루친스키는 멸치국수와 비빔국수 킬러였다. 크리스티앙 베탄코트는 냉면의 깊이를 깨달았다. 제이미 로맥은 김치찌개에 말아먹기, 폰트는 추신수에게 배운 짜장면이 등판 전 루틴이었다. 복귀한 에디슨 러셀은 (한국) 라면이 반갑다며 군침을 삼킨다.

반면 고생한 경우도 있다. 인천 주민 앙헬 산체스의 케이스다. 첫 해 음식을 가리는 바람에 몸무게가 10㎏ 가까이 빠졌다. 접근성 최하위의 불고기나 양념갈비도 못 먹었다. 그러니 공에 힘이 실릴 리 있나. 성적도 함께 떨어졌다.

팀에 비상이 걸렸고, 먹거리 찾기에 동분서주했다. 결국 제육볶음이 해결책이었다. 캠프 때는 참깨 맛 라면에 꽂혔다. 문학으로 돌아와서는 면 종류를 섭렵했다. 짜장면, 우동, 쫄면, 모든 라면의 애호가가 됐다.

베어스가 호미페와 이별을 택했다. 대체자는 LA인근 애너하임 출신이다. 에인절스로 ML에 데뷔했다. 앨버트 푸홀스의 더블 캐스팅을 맡았다. 내ㆍ외야가 모두 되는 유틸리티형이다. 올해 30세의 좌타자 호세 로하스다. 몸값 100만 달러에 기대치가 나타난다.

보도자료는 이렇게 묘사한다. “안정적 타격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중장거리 타구 생산에 능하다. 또한 변화구 헛스윙 비율이 평균보다 낮으며 타구 분포가 다양한 스프레이 히터 유형이다. 연간 115경기 이상을 꾸준히 나선 내구성을 갖췄으며 2루와 3루, 좌우 코너 외야 수비를 두루 소화해 활용폭을 넓힐 수 있는 자원이다.”

팀 합류는 1월 말이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이뤄졌다. 본진은 먼저 훈련을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 3명이 나중에 숙소에 도착했다. 하필 식사 시간이다. 옷 갈아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감독, 코치, 동료들과 “How do you do”를 나눴다.

초면에 할 말이 있겠나. “얼른 식사들 해.” 이승엽 감독은 한편으로 걱정스런 표정이다.

“근데 식사는 어떻게 하지?” (이 감독)

“일단 똑같이 먹구요. 부족하면 현지식을 조달할 계획입니다.” (통역 직원)

“잘 좀 챙겨줘라. 제일 중요하다.” (이 감독)

하지만 괜한 근심이다. 적어도 로하스의 경우는 그렇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한식을 알아서 척척 담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도 스스럼이 없다. 우선 국물부터 손이 간다. 뭘 좀 아는 눈치다. 이날 메뉴는 북엇국이었다. 한 술 뜨더니 눈빛이 달라진다.

이 장면을 담은 BEARS TV는 ‘진실의 미간’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이후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숟가락이 바빠진다. 연거푸, 온리, 국물만 드링킹이다. 마치 오랜 비행에 지친 속을 해장하는 아재의 모습이다.

이튿날 훈련장이다. 야수조 점심 시간이 됐다. 쌀밥에 각종 반찬을 챙겨 자리에 앉는다. 이날도 (외국인에게는) 난이도 최상의 식단이다. 푸짐하고 맑은 콩나물국이 나왔다. 하지만 뉴 페이스는 거칠 게 없다. 앉자마자 정확하게 국 대접부터 공략이다.

후루룩. 건더기 뺀 국물만 한 술. 그리고 이어지는 연타 공격이다. 역시나 우투좌타 스타일을 고집한다. 왼손에 든 숟가락 가득 콩나물 건더기를 입안에 털어 넣는다. 우걱우걱. 난생 처음일 식감에도 아랑곳없다. 그릇에 빠질 듯한 몰입감이다.

다른 나라 사람은 낯선 음식이 몇 가지 있다. 도토리묵, 참외, 깻잎, 골뱅이 등이다. 콩나물도 그 중 하나다. 유사품(?) 숙주와는 또다른 매력이다. 하지만 이 외인은 완전 별종이다. 합류 첫 날 북엇국, 이튿날 콩나물까지. 너끈한 도장깨기다.

일단 적응이 먼저다. 타격, 수비, 주루는 그 다음이다. 역대 외국인 선수가 그걸 입증했다. ‘식사가 제일 중요하다.’ 이승엽 감독의 지론도 다르지 않다. 덕분에 한시름은 덜었다. 호미페의 공백 메우기는 1단계를 넘어선 느낌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