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 한국 프로야구 최하위에 그친 한화가 올해 시범경기에선 달라진 모습이다. 27일 기준 2위라는 낯선 상위권을 당당히 지키는 중. 시속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가진 2년 차 투수 문동주(20·위), ‘젊은 거포’ 노시환(23)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화 이글스·연합뉴스

‘보살’ 팬들에게 희열의 순간이 올까. ‘보살’은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팬들을 지칭하는 별명. 저조한 성적에도 열성적 응원을 한다 해서 붙었다. 그런 ‘보살’ 팬들이 뒷받침하지만 한화는 올해 치욕의 기록에 동참하기 일보 직전이다. 최근 3년 연속 최하위.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4년 연속 꼴찌는 2001~2004년 롯데뿐이다. 올 시즌이 끝나면 그 ‘불명예 전당’에 이름을 올릴지 판가름난다. 롯데와 공동으로 보유한 최다 최하위(9번) 기록도 올해마저 꼴찌를 하면 단독 1위가 된다. 한화는 얼마 전 끝난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10구단 중 유일하게 대표팀 선수를 배출하지 못한 구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 시범경기에선 양상이 다르다. 27일까지 12경기 8승 3패 1무로 2위. 전에도 시범경기에서는 펄펄 날고 실제 시즌에선 죽을 쒀 “매해 봄마다 속는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이번엔 진짜 다르다”는 각오가 보인다. 2021년에도 시범경기 1위였지만 정규시즌은 10위로 마친 바 있다. 그럼에도 올해는 하위권을 맴돌며 차곡차곡 수집해온 유망주가 일제히 터질 것이란 기대가 커진다.

◇강속구 뿌리는 문·김 듀오

한화는 2022시즌 직구 평균 구속이 가장 낮은 팀이었다. 올 시즌에는 이 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파이어볼러 문동주(20)와 김서현(19)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2022년 1차 지명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문동주는 프로 2년 차인 올해 선발투수로 낙점됐다. 시범경기에 두 차례 선발 등판해 각각 3이닝 1실점, 4이닝 1실점했다. 특히 지난 25일 롯데전에선 1회부터 최고 시속 155㎞ 직구를 던지며 4이닝 동안 볼넷 없이 삼진 7개를 잡아냈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나이가 어린데도 직구,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등 4개 구종을 던지고 싶은 대로 던진다”고 했다.

서울고 출신 김서현은 2023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입단했다. 입단 계약금은 5억원. 역동적인 폼으로 빠른 공을 던져 차세대 마무리투수로 꼽힌다. 이번 시범경기에 4번 구원 등판해 4이닝 1실점(평균자책점 2.25)을 기록했다. 27일 롯데전 7회에 마운드에 오른 그는 선두 타자 유강남을 3구 삼진으로 잡아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날 시속 152㎞ 투심 패스트볼과 시속 153㎞ 직구를 던졌고, 14일 키움전에선 직구 구속이 시속 155㎞까지 나왔다. 그 밖에 팀 린스컴과 투구 자세가 비슷해 화제를 모은 윤산흠(24), 프로 3년 차 남지민(22)도 시속 150㎞ 넘는 공을 던지는 젊은 투수다.

◇다이너마이트 타선 부활 노린다

한화 타선은 한때 모기업(한국화약) 덕분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고 불리곤 했다. 팀 타선이 부진하자 이 별명은 쏙 들어갔다. 그렇지만 올해 한화 강타자들이 도화선에 다시 불을 댕길 기세다. 노시환은 2019년 드래프트 전체 3번으로 한화에 지명된 내야수다. 팀 레전드 김태균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재작년 홈런 18개를 쳤다가 작년 6개로 주춤했던 그는 올 시범경기 11경기에서 홈런 4개, 2루타 2개를 때리며 장타력을 과시했다. 삼진을 각오하고 장타를 늘리려고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당겼는데, 일단 시범경기에선 안타 14개 중 6개가 장타다. 27일 삼성과의 경기에선 5타수 3안타(1홈런) 맹타를 휘둘렀다.

FA(자유계약선수) 채은성과 새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도 기대를 모은다. 6년 90억원에 한화와 계약한 채은성은 타선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으로 꼽힌다. 오그레디는 지난 25일 노시환과 백투백 홈런을 합작하는 등 시범경기에서 홈런 3개를 쳤다. 33타수 4안타로 타율이 낮아 ‘공갈포’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수베로 감독은 “타석에서 타이밍을 맞추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아웃이 되더라도 타구 질은 굉장히 좋다”며 긍정적으로 봤다.

◇삼성·한화, 시범경기 1·2위

한화는 27일 시범경기에서 삼성을 8대2로 눌렀다. 8연승 중이던 삼성을 멈춰 세우며 3연승을 달렸다. 선발 남지민이 3과 3분의 1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고 박준영, 정우람, 장지수 등 구원 투수 7명이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타선은 장단 12안타를 때렸고 4-2로 앞선 8회 안타 4개와 볼넷, 상대 실책을 묶어 4점을 뽑았다. 한화는 28일 마지막 경기에서 삼성을 이기면 시범경기를 1위로 마칠 수 있다.

박진만 감독이 부임한 삼성은 시범경기에서 선두에 올라 있다. ‘만년 유망주’ 이성규가 12경기에서 홈런 5개를 쳐 데뷔 첫 시범경기 홈런왕을 정조준했다. 반면 이승엽 신임 감독이 이끄는 두산은 4승 6패 2무로 7위. 매년 시범경기에서 유독 강해 ‘봄데’라는 별명이 붙은 롯데가 올해는 최하위(3승 8패 1무)로 처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