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권수가 지난 9일 사직야구장에서 국민의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인 그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싶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롯데는 지난 2일까지 9연승을 달렸다. 15년 만이었다. 그 뒤로도 리그 1·2위를 다툴 정도로 기세가 뜨겁다. 그 상승세 중심에는 낯선 이름이 있다. 이대호(은퇴)도 손아섭(NC 이적)도 아니다. 새로 떠오른 전천후 공격수 안권수(安權守·30)다. 현재 롯데의 유일한 ‘3할 타자’이자 뜨거운 ‘클러치히터(clutch hitter·득점 기회가 생겼을 때 안타를 치는 타자)’. 17일 기준 타율 0.303(99타수 30안타), 득점권 타율 0.435로 롯데 타선을 이끌고 있다. 도루(6개)에서도 팀 내 1위. 그는 “득점권 타율 성적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꼽았다.

◇할아버지 나라에서 뛰고 싶던 소년

안권수는 재일교포 3세다. 일본 사이타마현 출신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진 일본체육회 춘계 전국수영대회 자유형 50m에서 2위에 오른 수영 유망주였다. 그러다 6학년 때부터 비교적 늦게 야구방망이를 잡았다. “수영을 열심히 했던 것도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야구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부모님 약속 때문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집 근처에서 본 도쿄돔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수영 선수 시절 길러진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안권수는 승승장구했다. 고교 시절 고시엔(일본 최고 권위 고교 야구 전국 대회)에서도 활약하고, 야구 명문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그러나 일본 프로야구 문턱은 높았다. 그는 일본 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고 일본 독립 리그를 전전했다. 그러다 2020년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외파 트라이아웃 당시 부상을 입어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두산이 그 잠재력을 높이 사 마지막에 그를 호명했다. 전체 지명자 100명 중 99순위. 일본에서 한국으로 벅찬 첫발을 내디뎠다.

롯데 안권수./롯데 자이언츠

◇재일교포도 한국인... 태극 마크 꿈꾼다

두산에서 3년간 조금씩 발전하던 그는 지난해 말 ‘방출’됐다. 타율 0.297이란 호성적이었는데 그랬다. 2018년 5월 개정된 병역법 시행령 때문이었다. 1993년생인 안권수는 병역법 시행령 제128조에 따라 3년을 초과해 국내에 체류한 경우 재외국민 2세(국외 출생자) 자격이 취소되고 국외 이주자로 전환되어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국내에서 영리 활동과 체류 기간에 제한을 받게 됐다.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면 올해 안에 군대를 가야 한다는 뜻이다. 30대에 이제 막 가능성을 보여준 타자를 2년가량 기다려줄 팀은 없다. 롯데는 일단 1년 ‘시한부 선수’일 가능성이 높은 그를 과감히 받아줬다. 연봉 8000만원이란 ‘헐값’이었기에 가능했을 이적이었다.

안권수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기대하고 있다. 대표로 뽑혀 금메달을 목에 걸면 병역 특례를 받아 ‘시한부’ 꼬리표를 뗄 수 있다. 최근 실력도 일취월장,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을 만 25세 이하 또는 4년 차 이하 선수들로 짜기로 했다. 안권수는 나이는 많지만 프로 4년 차. 대표 선수 자격을 갖췄다. KBO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예비 명단 198명엔 안권수도 있었다.

안권수는 ‘병역’ 얘기만 나오면 조심스러워했다. 서툰 한국말 때문에 괜한 오해가 빚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병역 문제와 상관없이 태극 마크를 달아보고 싶다는 열망은 항상 있었어요. 일본에 살면서 계속 한국 국적을 간직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9월에 열리는)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발탁 중 무얼 고르겠느냐’는 짓궂은 질문엔 고민 없이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이라고 말했다. 설령 롯데가 정상에 올라도 그는 곧바로 글러브를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롯데의 안권수(왼쪽). /최문영 스포츠조선 기자

야구에 비유하자면 그의 선수 인생은 어디쯤 와 있을까. “(패배 위기에 몰린) 9회말 2아웃이죠. 연장전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야구 정말 계속 하고 싶거든요.”

부산=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