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9회 말이다. 스코어는 4-3이다. 겨우 1점 앞선 원정팀은 뒤가 따갑다. 벌써 조짐이 심상치 않다. 1사 후 9번 오선우를 못 막았다. 볼넷이다. 1루에는 발 빠른 대주자 최정용이 교체된다. 골치 좀 아프게 생겼다. (19일 광주, KIA-LG)

다음은 1번 최원준이다. 이미 안타 2개를 기록 중이다. 일단 카운트가 쫓기면 안 된다. 스트라이크가 필요하다. 초구는 빠른 볼(154㎞)을 존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걸 노리고 있었다. 정확한 타이밍으로 배트가 나온다. 강렬한 배럴 타구가 1루수 옆을 뚫고 나간다.

우익수 옆 안타다. 1루 주자는 3루까지 충분하다. 1사 1, 3루. 외야 플라이 혹은 내야 땅볼도 괜찮다. 웬만한 타구 하나면 점수와 바꿀 수 있다. 이제는 알 수 없는 게임이 된 것이다. 챔피언스 필드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원정팀 벤치가 분주하다. 투수 코치를 급히 마운드로 올린다. 잠시 숨 돌릴 틈을 주기 위해서다. 포수도 나름대로 일이 많다. 일일이 수비 사인을 내야 한다. 1루 주자가 뛰면, 어디로 공을 던지겠다. 그런 설정도 야수들에게 미리 알린다.

운명의 타석이다. 2번 김도영이 잔뜩 매서운 표정으로 들어온다. 초구 헛스윙. 그리고 2구째다. 안쪽 빠른 볼(153㎞)에 간결한 컨택이 이뤄졌다. 나쁘지 않은 타구다. 원 바운드로 투수 키를 훌쩍 넘는다. 안타 코스다. 관중석에서 기대감에 들뜬 환호가 터진다.

그런데 아뿔싸. 누군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2루수다. 베이스 뒤에서 날렵하게 공을 낚아챈다. 그리고 현란한 스텝이 시작된다. 2루 찍고, 점프하며 1루로 쏜다. 아웃 2개가 한꺼번에 올라간다. 게임을 끝내는 병살 플레이다.

평소라면 중견수 앞으로 빠질 수 있는 타구다. 하지만 수비 위치의 승리였다. 1루 주자의 도루와 병살 플레이를 대비하기 위한 시프트였다. 2루수가 베이스 쪽으로 몇 걸음 이동해서 자리 잡고 있었다. 덕분에 아무 일 없이 처리가 가능했다.

물론 위치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조금만 버벅거려도 일을 그르친다. 한 명만 살려줘도 승리가 날아간다. 민첩하지만 견고한 움직임, 빠르고 정확한 배송. 거의 완벽한 원맨쇼가 이뤄낸 작품이다.

순간 절망의 탄식이 홈팀 응원석을 뒤덮는다. 반대로 원정팀 덕아웃에서는 아찔한 환호성이 터진다. 가장 큰 액션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염경엽 감독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그리고 큰 함성을 내뱉는다. 어쩌면 우승 포즈 같은 모습이다.

왜 아니겠나. 마무리 투수를 8회에 투입했다. 1점을 지키라고 아웃 6개를 맡긴 셈이다. 일견 무리수처럼 보이는 극약 처방이다. 만약 실패했다면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온갖 비판에도 시달렸을 것이다. 그걸 막아준 수비였다.

물론 당사지인 고우석도 한시름 덜었다. 요즘 가뜩이나 주목받고 있다. 몇 차례 부진 탓이다. 원망하는 팬들도 제법 생긴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 뒷말도 많다. 슬라이더가 어쩌니, 항명이 어쩌니. 그런 구설수에도 시달린다. 만약 이번 승리도 날렸으면…. 아마 한동안 밤잠을 설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정적 수혜자는 따로 있다. 선발 투수 이지강이다. 2019년 드래프트(9라운드 지명) 출신이다. 입단 동기들이 쟁쟁하다. 이정용, 정우영, 문보경 등이다. 1군에서 확실히 자리잡고, 스타덤에도 올랐다.

그에 비해 한참 늦다. 우선 군 문제부터 해결했다. 신병교육대(15사단) 조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 복귀한 것이 지난 시즌이다. 보직은 불펜이다. 주로 추격조였으니, 이렇다할 개인 기록은 남기기 어려웠다. 올 시즌 간간이 선발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이날 경기에서 첫 승리를 안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가장 껄끄러운 타이거즈를 상대로 한 호투였다. 입단 5년, 22게임만의 감격이다. 만약 신민재의 수비가 없었다면, 기약 없이 미뤄질 뻔한 소중한 1승이다.

종료 직후 가장 격렬하게 반응한 것도 문보경이다. 신민재에게 달려와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하게 기뻐했다. 아마도 동기생의 첫 승을 지켜준 데 대한 고마움이었으리라. 연타석 홈런과 선발 승리 투수, 그리고 끝내기 병살 수비까지. 향후 트윈스를 이끌고 갈 젊은 피가 반짝인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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