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경남 김해 상동야구장에서 만난 프로야구 롯데 김태형 신임 감독은 “3년 내 우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신현종 기자

29년 만에 맛보는 짜릿한 우승. LG선수단과 팬들은 ‘절실함’이 차곡차곡 쌓여 우승에 대한 염원을 현실로 이뤄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이 어디 롯데와 그 팬들만 할까. 롯데의 우승 시계는 ‘안경 쓴 두 번째 에이스’ 염종석(50·현 동의과학대 감독)이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1992년에 머물러 있다. 우승에 대한 절실함은 오히려 LG보다 더 길고, 더 강하다.

롯데는 2023시즌 초반 상위권을 달리다 거짓말처럼 추락하더니 결국 7위로 시즌을 마쳤다. 결국 시즌 후 실패로 끝난 성민규 단장 4년 체제를 마감하고, 두산 재임기간 8년 동안 7차례나 팀을 한국시리즈에 끌어올려 2015,2016,2019년 세 차례 정상에 오른 김태형(56) 감독에게 우승 청부사 역할을 맡겼다.

김 감독은 24일 취임한 다음날부터 곧바로 김해 상동야구장에서 한달 동안 펼쳐진 마무리 훈련을 통해 선수들을 지켜봤다.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직접 느끼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취임 당시 “3년 안에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했던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까. 최근 김해 상동야구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지금 롯데 전력을 냉정하게 따지면 중간 정도”라면서도 “야구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3년내 우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훈련하는 거 보니 투수진도 어느 정도 괜찮고, 야수도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는 단계예요. 선수들 모두 열정적이고 훈련도 열심히 해요. 하지만 뭔가 필요한 순간 치고 나가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습니다. 팀이 우승까지 생각하는 단계로 올라가려면 일단 수비가 강해야 합니다. 롯데는 올해 기록상 팀 실책은 리그 3위(최소 기준)지만, 결정적인 실수로 한 순간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많았죠.”

김 감독은 올해 시즌 초반 너무 힘을 많이 소모한 것도 실패 원인 중 하나라고 봤다. “해설위원으로 올해 경기를 봤는데 초반에 승리에 집착해 너무 무리하더라고요. 2,3점 뒤지는데도 필승 조를 투입해서 좋은 경기를 하긴 했지만 너무 많이 등판시키니 결국 시즌 중반 지쳐서 무너져버렸어요. 선취점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1회부터 번트 대는 모습도 많았고요.”

그래픽=양진경

롯데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팀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 구심점이 없다는 야구계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현장과 프런트의 갈등도 번번이 불거졌다. 김 감독은 “감독은 선장이고, 리더 역할을 베테랑 선수들이 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참들이 후배들이 납득하게끔 행동해야 한다. 과거엔 고참이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면 혼자 라커룸에 들어가 쉬고 그런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나는 그런 거 절대 용납 못 한다. 선수단은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야구계에 이슈가 되고 있는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에 대해선 “선수단과 프런트가 할 일은 한계가 명확하다.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선을 넘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며 “최근 선수 출신 단장들이 많은데, 그들이 야구 안다고 현장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프런트야구가 아니다”라고 했다.

롯데는 지난 21일 2024시즌을 이끌 코칭스태프를 발표했다. 김민호·고영민·김주찬 등 두산에서 김태형 감독과 함께 했던 코치들이 대거 합류했고, 이들과는 달리 ‘미스터 올스타’ 김용희(68)를 퓨처스(2군) 감독으로, 2019년을 끝으로 구단을 떠난 주형광 코치가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됐다. 자신이 믿는 사람을 기용하고자 하는 감독과 전통을 재확립하고 싶어 하는 구단이 서로의 뜻을 존중해 받아들인 결과다. 김 감독은 “롯데 레전드인 김용희 감독님은 다시 돌아온다며 정말 좋아하셨다.. 다른 팀에 비해 덜 조직화된 퓨처스와 재활군을 잘 맡아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경남 김해 상동야구장에서 롯데 김태형 감독이 본지와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김태형 감독은 롯데의 21대 감독이다. 이전 사령탑 중 강병철(77) 감독 만이 두 번 우승을 맛봤다. 20명의 감독 중 13명이 임기를 못 채우고 중도 하차했다. 그렇기에 한국시리즈 전문가인 김태형 감독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롯데 팬들은 열정적입니다. 서울에선 팬이라도 가볍게 인사하거나 모른 척 하는데, 부산에선 무조건 다 인사하고 사진 촬영하자고 몰려들어요. 밥 먹으러 가면 서비스도 엄청나게 주시네요. 하나하나 다 마음의 빚입니다. 다른 팀 맡았을 때도 이런 열정적인 팬들 때문에 롯데 감독 한 번 해보는 게 정말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막상 맡으니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가을 야구 가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다음은 팀 자체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하는 방향성을 잡는 겁니다.그건 당연히 기본에 충실한 거죠. 그리고 선수들의 사고방식. 선수들 스스로 리더가 되어 함께 방향을 잡아가야 합니다. 오늘 졌는데 핸드폰 들고 ‘내일 잘하면 되지’하고 웃는 게 아니라, 그냥 졌으니 너무 속상해하는 분위기가 스스로 생기는 게 중요해요.”

김 감독은 눈빛만으로도 선수단을 휘어잡는다고 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롯데에선 그 카리스마를 어느 정도 보여줬을까. 그는 “아직은 내 얘기를 다른 팀 동료로부터 많이 들어서인지 말을 잘 듣는다”면서도 ‘만약 내가 날을 세워 어떤 결단을 내릴 때는 다른 감독들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때는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봐도 된다”고 엄포를 놨다.

롯데는 25일 마무리캠프가 끝난다.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까지 비활동기간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보통 어린 선수들이 올해 잘했으니 겨우내 웨이트하고 캐치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도 안 되죠. 다른 팀은 가만 있나요? 젊은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의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려면 야구로 몸을 만들어야 해요. 레슨장 많으니 펑고도 받고 티볼도 쳐야죠. 그렇게 준비해야 캠프에서 살아남을 겁니다.”